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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2 (10:59) from 211.217.233.58' of 211.217.233.58' Article Number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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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여, 제발 사장을 꿈꿔라"


■여성사장 방담

출판계에 여성사장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2~3년 들어 대거 등장한 여성 사장들은 주목받는 책을 줄줄이 내놓으며 ‘2세대 전성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종전 ‘1세대 여사장’들이 ‘몇몇 특별한 소수’로 자리매김해왔다면, ‘2세대 여사장’들은 인문서에서 경제경영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판 분야에서 수적으로도 ‘여사장 대중화’시대를 열어제치고 있다.

사계절 강맑실(46), 김영사 박은주(44), 푸른숲 김혜경(50) 대표 등 1세대 여사장들은 자본을 바탕으로 출판사를 인수하거나, 일하던 출판사에서 편집장을 거쳐 사장으로 올라섰다. 이들 1세대가 이미 갖춰진 출판 시스템을 기반으로 ‘스케일 큰’ 기업가형 출판을 이끌었다면, 2세대 여사장들은 대부분 편집과 기획의 경험을 무기로 “맨땅에 헤딩하듯” 새롭게 출판사를 차린 경우다. 2세대들은 백화제방 식으로 중소 규모 출판사들을 키워가고 있는데, 무엇보다 현장 편집자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종전 “영업자 출신은 흥하고 편집자 출신은 망한다”는 창업 관련 속설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푸른역사 박혜숙(42) , 마음산책 정은숙(41), 이마고 김미숙(39) 대표 등 ‘2세대 여사장’ 3명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출판계 현안, 흐름과 자기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꽃을 피웠다.


편집자·기획자로 일하다가 출판사를 만들었는데, 당시의 고민과 심경은?

박=저는 평생 편집자로 살 줄 알았어요. 사실은 ‘편집 주간’을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시켜주는 데가 없더라고요(웃음). 마지막 결정권자(사장)가 되는 건 정말 두려웠어요. 독립(2000년) 전에 푸른숲출판사 자회사로 있었는데요, 자본을 밀어주면 맘껏 해볼 수는 있겠다 싶었죠. 독립하겠다니까 다들 말리더라고요.

정=저는 진짜 편집자로 있고 싶어서 독립했어요. 출판 16년차가 되던 해(2000년)였는데요, 현장 편집자를 평생 하려면 경영자가 되어야 가능하죠. 소규모로나마 시작하면 가능하겠다 싶었죠.

김=저는 2001년에 출판사를 차렸는데요, 모든 게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런 일이었어요. 기존 출판사의 흥망성쇠를 다 보았으니, 두려웠죠. 아이엠에프 직후엔 잘나가던 출판사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졌거든요. 그때만 해도 편집자 출신은 망한다고들 했으니까요.


여성으로서 사장을 한다는 것의 어려움과 유리함

박=사장이면 사장이지 여사장이라는 자의식은 없습니다!

김=어려움이라면 경영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거죠. 경영마인드 부족이 어찌 보면 강점이죠. 알면 못한대요, 모르니까 하지. 박=맞아요.

정=편집 일의 특성상 여성의 우위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어요. 종합적인 사고와 섬세함·창의성 등이 필요하니까요.


최근 2~3년의 출판 흐름

박=출판사 브랜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죠. 독자들이 무서워요. 그 욕구들을 책으로 구현할지 걱정이죠.

김=독자 편지를 보면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 요구·기획을 해오는 경우가 꽤 있어요. 특정 출판사에 대한 매니아층이 형성돼 있는 것 같고요.

정=새 흐름 가운데 하나가 교양서라 해도 정보서에 가까운 책, 장르를 넘나드는 책이 반응이 좋다는 거예요. 지금 독자들 성향이, 가령 80년대엔 책이라고도 보지 않았을 책이 읽혀요. 이제는, ‘책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라고 해버리면 그 책에 갇히게 되는 것 같아요.

박=우리는 90년대 후반 베스트셀러 출판사들의 흥망을 목격한 세대입니다. 예전엔 10만부, 만부 단위였죠, 3천부 얘기하는 사람 없었어요. 이제는 부수에 대한 개념 달라졌어요.

김=독자들이 인터넷서점 들어가 직접 고르니, 3천부짜리 기획이 가능해졌지요. 우리 같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소규모 출판사들이 생겨날 수 있게 된 것이죠.


책을 만든다는 것

정=이 질문 중요해요. 책에 대한 기획은 내가 읽었던 책, 나의 감각, 내가 만나는 사람들, 독자들에게서 나와요. 내가 세상 읽기를 게을리하면 책도 답보합니다.
박=나는 역사서 전문이니, 당대의 의식들을 역사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하면 할수록 정확하고 제대로 된 것, 그리고 진실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져요.
김=3천부가 나가면 3천명이 읽었다는 건데, 운동장에 모아 보세요, 얼마나 많은 수인지, 감동이 오죠.

박=출판을 하면서 가장 두려운 게, 어느 순간 기능인으로 멈춰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거였어요.

김=새로워지고 있는 독자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정은숙 사장은 출판·문학·학계의 모니터 회원들에게 물어본다고 했는데, 나는 다르게 봐요. 독자들은 출판가 사람들과는 다르거든요. 책상머리에서 확신을 하면 반 이상은 틀려요. 그래서 편집자들에게 늘 ‘확신하지 마라, 독자는 다른 데 있다’고 강조해요.

정=나는 늘 편집자들에게 확신을 가지라고 해요. 물론 독자들은 편집자의 구상대로가 아니라 다르게 읽더라고요. 하지만 책을 만드는 동안은 가상 독자를 한 명 두고, 철저하게 확신을 해야죠.


흔히 출판을‘문화의 기초산업’이라고 하는데?

박=출판의 역할은 문화적으로 선도하는 데 있다고 봐요. 매니아층도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책을 던져줌으로써 쉼없이 견인해가야지, 그렇잖으면 시장을 따라다니게 돼요.

정=영상시대라고들 하지만, 책이 가장 중요해요. 책에서 대부분 기획거리가 나온다는 걸 영상물 생산자, 영상세대들도 잘 알고 있어요.

김=출판 현장에서 정작 문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 같은 것보다는 새로운 양질의 편집자들이 재생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죠. 편집자에게 중요한 것은 독해력과 문장력인데, 갓 대학을 졸업한 후배들이 현저하게 떨어져요.


사장을 꿈꾸는 여자 후배들에게

박=제발 사장을 꿈꾸라고 하고 싶어요.(김:저도요.)

정=편집자들이 기획거리, 자본까지 마련해놓고 창업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중요한 것은 ‘자기애’라고 이야기해요. 승진 탈락 같은 ‘부정적인’ 지점이 아니라 아주 ‘긍정적인’ 힘, 오래도록 출판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라고 말이죠.


정리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2003.1. 1.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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