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방|

2005/01/04 (10:02) from 211.218.4.161' of 211.218.4.161' Article Number : 22
Delete Modify 마음산책 Access : 5811 , Lines : 66
조화, 스밈, 조용한 열정의 비밀

출판사 탐방 | 마음산책

조화, 스밈, 조용한 열정의 비밀
(   마. 음. 산. 책.   )



우리들의 ‘소울메이트Soulmate’, 마음산책

“부럽다”는 표현부터 꺼내본다. ‘소울메이트Soulmate’라 부를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산책 가족들은 뭇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매일 아침, ‘영혼의 동반자’는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이들을 반긴다. 2000년 8월 16일에 세상에 나왔으니 출범 여섯해 째. 정은숙 대표는 오년 전 마음산책이 탄생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푸른숲 자회사로 시작을 했죠. 그곳의 은혜를 많이 입었어요. 다 지어놓은 집에 들어가 일을 했던 게 편집자 시절이었다면 이때부턴 벽돌을 어디서 가져와야 하는지부터 고민했죠.”
정 사장은 휑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산책, 이곳에 존재감을 주고 싶다”는 마음부터 생겼다고 고백한다. 아무것도 없는 벽이 영 낯설어 로고부터 열심히 붙여봤다. 한동안은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던 길에 다시 돌아와 사무실 문을 열어보곤 했다. 내일 출근을 하면 이 공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발길을 붙잡았다. 사연을 듣고 보니 ‘소울메이트’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구애를 펼쳤던 쪽은 출판사 가족들이었다.
사실 ‘정은숙’이란 이름, 곧 명편집자란 명함만으로도 마음산책은 믿을 구석이 많은 출판사였다. 그러나 정 사장은 “그간의 경력에 기대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고 밝힌다. 책 한 권을 준비할 때마다 사회 초년병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초발심을 갖고 치러야 할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ISBN 등록 시 2시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순간, 아직 배울 것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조화’,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의 협주

출범한 지 약 두 달 후 마음산책의 존재를 세간에 정식으로 알릴 기회가 생겼다. 첫 책 《굴비낚시》가 나온 것이다. 비범한 면이 많은 첫 책이었다. 저자는 당시 문단은 물론 문화계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던 소설가 김영하였다. 저자도 저자이거니와 본격 문학, 영화서가 아닌 ‘소설가의 영화에세이’로 분류된다는 데서 신선하다는 박수를 받았던 책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그분 작품을 무척 좋아하는 팬이었죠. 알고는 있었지만 김영하 씨와 함께 작업한 적은 없었어요. 기존에 알고 있던 필자라고 해서 섭외를 한 건 아닙니다. 마음산책의 첫 책, 첫 필자로서 적합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함께 작업을 한 거죠.”
정 사장은 마음산책을 통해 “21세기형 문학출판을 시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문지, 창비, 문학동네 등 걸출한 대형출판사들이 이미 문학시장을 장악한 상태라는 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독립출판사인 마음산책은 기획력을 담보하는 틈새시장부터 탐색해야 했다. 이때 문학과 영화, 사진 등에 유난히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 정 사장의 눈에 김영하란 필자가 보였다. 김씨는 당시 문단의 다크호스였고, 문학통이면서 문화예술 전반에 촉수를 들이대는 재기발랄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책으로 문학과 영화, 예술의 협주를 완성해 보려는 정 사장의 뜻을 만족시켜 줄 필자였다. 이후 마음산책은 《굴비낚시》를 필두로 두 장르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책들을 꾸준히 준비했다. 문학과 문화, 문화와 예술, 사진과 글 등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성격이 다른 분야들을 중첩시키는 작업물들이었다.
“소설이나 시를 읽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잖아요. 생각을 전환해서 문학은 보고, 사진은 읽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냥 이미지만 담긴 예술서가 아니라 읽으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책 말이죠. 책을 읽을 때 글도 마음에 남지만 한 컷 이미지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남는 경우도 많거든요.”
문학평론가 이남호 씨 말을 빌리면 “독자들의 변화된 감각을 적극 고려한 책들”이었다. 그렇다 해서 마구잡이로 이미지와 텍스트를 중첩시켜 놓는 것은 아니다. 정 사장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보관계,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한다. 글과 맞춤된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동시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책마다 필자의 집필사연에 버금가는 이미지 사연들이 숨어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스밈’의 미학, 오감으로 느끼는 책

서가를 눈으로만 대충 훑어봐도 보인다. 신경숙, 조은, 이남호, 구효서 등 유난히 귀한 국내 필진들이 마음산책과 작업했다. 이런 필자들을 섭외하는 노하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니 대답이 생각보다 소박하다. 이분들에게 마음산책에서 만든 책들을 꾸준히 보내는 것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작업들을 하고 있으니 유심히 잘 봐달라는 구애 혹은 ‘러브콜’이다. 필자들은 이 소박한 러브콜에 반응한다. 필자의 작업을 내 작업처럼 바라보고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편집부는 향후 그 필자가 어떤 작업을 내놓으면 좋을지를 필자 본인의 입장에서 연구한다. 유명 필자들과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절박했지만 한번도 징징대진 않았어요. 항상 초년병 같은 입장에서 선생님 원고를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지요. 선생님 원고에 관해서는 처녀의 마음, 초년병의 떨림으로 다가간다는 속내를 최대한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책목록을 살펴보니 소리 내는 음은 제각기 다르지만, 빛은 하나다. 정 사장은 이 빛을 ‘스밈’이라 칭한다. 독자에게 강요하거나 주장하기보단 독자 곁으로 슬며시 다가가 스미는 책들이란 말이다. 카프카는 책이란 모름지기 오래된 생각을 얼음 깨듯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 사장이 생각하는 책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주제나 깊이가 작고 얕다는 건 아닙니다. 한번에 임팩트를 주는 것보단 소박하고 고운데 매우 오랫동안 기억되는 책을 내고 싶었어요. 다음에는 마음산책에서 어떤 책을 낼까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싶었지요.”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나 스밈의 정서는 ‘마음산책’이란 이름에도 담겼다. 처음엔 독서로 산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산’이라 지었다. 당시엔 ‘마이산이냐?’ ‘명상서만 출간할 거냐?’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던 중 ‘마음산’ 뒤에 ‘책’자를 붙여봤다. “본래는 ‘마음산책’이 아닌 ‘마음산 책’이었거든요. 근데 많은 분들이 4음절을 함께 읽어주시더군요. 홈페이지 만들면서 영어로 써보니 ‘maumsan’중 ‘maum’은 ‘몸’으로도 읽힙니다. 마음이 몸이요, 몸이 마음이요 하면서 좋은 의미들이 많이 담겨 있다는 소리들을 많이 해주십니다.”
한가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거니는 행위, 즉 산책이다. 시끌벅적 소란스럽지 않은 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오감으로 자연을 흡수한다. 땅과 하늘이 인간에게 스미는 순간이다. 정 대표는 독서도 산책이라고 말한다.  책을 만들 때 독자들도 모르는 새 그것이 그들 마음에 차분히 스며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조용한 열정’, 독자의 산책을 돕는다

산책자에게 방해가 될까 조심스레 산책길을 닦아놓는 이들은 어떤 인물들일까. 정 사장은 자신을 닮은 여섯 명의 파트너를 한명씩 소개한다. 고은희 편집장 그리고 편집부 박지영, 남영숙 씨, 디자이너 이지윤 씨, 영업부 공태훈 씨, 관리부 전현희 씨다.
“최근 출간된 조은 시인의 책 《조용한 열정》이 저희를 잘 말해주는 책이에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지만 그 내면에 뜨거운 열정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멀티플렉스형 극장보단 영화 그 자체를 진중히 곱씹을 수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세상과 글을 읽기도 하지만 여백을 읽는 묘한 능력도 소유했다. 바쁠 땐 파편적인 단어만 던져줘도,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다. 또한 격렬한 토론보다 조용히 둘러앉아 서로의 생각을 나눠갖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성격도 공유했다.
구성원 간에 의견 충돌이 있어야 새로운 책도 나올 수 있지 않느냐는 말에 정 대표는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중 한 대목을 소개한다. 바람둥이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한 명은 이전의 연인과는 전혀 다른 여인을 만나는 바람둥이요, 또 한 명은 이전 연인과 비슷한 인물을 찾는 바람둥이다. 바람둥이로 치면 마음산책은 후자다. 책 한 권의 출간 작업을 끝내고 나면 그것을 펼쳐보며 또 다른 변주를 시도하는 출판작업이다.
“우린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이며, 나와 당신은 어떻게 다른가. 큰 주제는 같습니다. 대형출판사라면 당연히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여럿 들어오고, 토론 중에 충돌도 생기겠죠. 근데 지금 시점은 기존에 냈던 ‘마음산책스러운’ 책을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지난 2004년 마음산책이 세상에 내놓은 책은 총 13권이다. 예년과 비교하면 권수가 조금 준 편이다. 이유를 슬쩍 물으니 정 사장은 책을 둘러싼 다른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용한 열정’의 주인공들은 지난해 책을 만들 듯 마음산책 도서목록과 엽서, 다이어리를 만드는 데도 그들만의 열정을 발휘했다.



책 만드는 지금, 내 삶의 화양연화花樣年華

4년 동안 마음산책 이름으로 나온 책은 총 63권이다. 2005년으로 5년차 경영자가 되는 정은숙 사장은 그동안 “내가 왜 마음산책과 함께하고, 왜 책을 만드는지 구성원들과 함께 그 정신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출판은 한 사람이 미쳐서 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누군가가 열정적으로 일을 하면 옆에서 지켜보면서 동의도 해주고, 돕고 봐줘야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누군가의 열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동료가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란 말입니다.”
책 만드는 일도 인간사의 한 장면이니 힘든 순간도 있었다. “마음산책은 또 다른 나다”라고 말하는 정 대표는 속상한 순간이 왜 없었겠냐고 되묻는다. 그때마다 “지겹다, 하기 싫다”는 말보단 스스로에게 “가엽다”는 말을 하게 됐다. 일종의 측은지심이 생긴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힘들다 해도 마음산책을 버릴 순 없지요.”
새로운 해를 맞는 출판계는 불황의 늪을 걱정한다. 그러나 마음산책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오늘 안 팔리면 내일 잘 팔리겠지 생각하며 걸어온 길이다. 너무 느긋하고 소박한 심사 아니냐고? 그렇다면 “제작비가 없어 다음 책을 못 만드는 상황만 아니면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산책 가족들의 욕심(?)을 몰래 전해본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화양연화花樣年華’라 했던가. 마음산책의 고유한 아우라(Aura)는 “책 만드는 이 순간이 곧 화양연화”라고 말하는 마음산책 가족들로부터 뿜어 나온다. 자신의 얘기보단 책이 우선인 사람들. ‘조용한 열정’으로 불리는 직원들은 현재 정민 씨와 김용택 씨의 책을 준비중이라고 귀띔하며 다시 책 만드는 그 황홀한 시간으로 돌아갔다.

취재 | 김청연 기자 사진 | 박신우 기자

(출판저널 1월호 게재)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