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철학으로 읽는 문학적 삶의 성찰
니체‧카잔차키스‧서머싯 모옴‧쿤데라의 문학 세계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는 니체의 철학을 작품에 담아낸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을 읽는 ‘로쟈의 세계 문학 강의’다. ‘곁다리 인문학자’ ‘인터넷 서평꾼’으로 몸을 낮춰 자처하는 저자 이현우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철학에서 역사‧과학‧문학까지 거의 모든 책을 읽어주는 ‘믿을 만한 문학 선생’ 로쟈가 소개하는 새로운 독법. 수없이 쏟아지는 세계 문학 사이에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는 독특한 문학 가이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시작으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 『면도날』 그리고 쿤데라의 『정체성』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고전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작가들의 대표작을 로쟈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와 함께 명쾌하게 읽을 수 있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라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로쟈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택한 카잔차키스, 모옴, 쿤데라의 작품 읽기는 독특한 구성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니체의 핵심 개념인 ‘초인’ ‘영원회귀’ ‘운명애’를 비롯해서 철학의 기초를 꼼꼼하게 다지고, 니체에게 감명 받아 자신의 삶을 뜨겁게 성찰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섬세하게 돌아본다. 문학뿐 아니라 문학론까지, 철학뿐 아니라 사유하는 법까지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를 통해 폭넓게 경험하는 책.


강의가 문학 작품과 고전에 관심을 둔 일반 대중을 상대로 진행되기에 아주 전문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평이한 수준에 그치는 것도 제가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건 그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다리’야말로 이 책에서 다룬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는 ‘가이드’의 역할이기도 하지요.
-「책머리에」에서


로쟈는 니체 스스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기본에 충실하게 읽고 작가 한 명 한 명의 삶과 사유가 집약된 책을 짚어나간다. 젊은 시절 니체와 베르그송을 열독했고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 자유인 카잔차키스부터 니체의 예술가 철학과 쇼펜하우어의 허무주의를 품은,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관찰한 서머싯 모옴의 냉철함, 니체의 영원회귀를 새롭게 해석하고 삶 가까이 불러와 탐구한 은둔자 쿤데라까지, 독자와 작가 사이의 ‘다리’ 역할을 자청하는 로쟈의 진진한 문학 강의가 시작된다. 이 책은 실제 강의를 풀어쓰고 완전 개작한 텍스트다.



자유를 위한 끝없는 투쟁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읽기


니체가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 ‘운명애’라고 했습니다. ‘영원회귀’는 필연입니다. 필연을 의지의 행위로 바꿔놓는 것이 운명에 대한 사랑이지요. 니체가 말하는 운명은 주권적인 존재인 초인의 의지입니다. 이 의지는 운명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같은 것이 돌아오지만 이를 내가 원한다는 것. (…) 자유의 투사가 그려낸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모순적 열정이 만개한 작품입니다. 쓰는 것과 산다는 것 사이의 모순, 삶을 산다는 것과 성찰한다는 것 사이의 모순,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 사이의 모순, 이런 겁니다.
-48쪽


20대 중반, 베르그송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훌쩍 떠난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는 낮이면 전형적인 지성의 소유자 베르그송의 강의를 듣고 밤에는 합리적 이성의 반대 극점에 있는 니체를 읽으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완성해나갔다. 니체의 인생관 ‘너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라’에 깊이 심취한 카잔차키스는 전 세계를 다니며 삶을 모색했고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제약받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기록하고자 고심했다.


카잔차키스는 삶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글로 쓰려고 하지요.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펜대 운전사’이자 먹물, 책벌레입니다. 카잔차키스는 책벌레지만 조르바적 책벌레입니다. 조르바의 제자이기 때문에 여느 책벌레와는 수준이 다릅니다. 언뜻 보면 조르바 편 같습니다. 하지만 조르바가 볼 때는 여전히 책벌레지요. 그것이 작품에서 ‘나’이고 카잔차키스입니다.
-47쪽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에서는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중 자유의 화신을 그린 『그리스인 조르바』와 마지막 순간까지도 운명을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긍정의 대상으로 삼은 새로운 예수의 모습을 그린 『최후의 유혹』을 살펴본다.


예수는 자유인의 전형이자 초인입니다. 물질을 정신력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인간입니다. 니체의 운명애 역시 영원회귀를 ‘내가 원한다’로 바꾸는 겁니다. 말 그대로 성체 변환입니다. 빵이 그리스도의 살이 되는 것,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되는 것, 변화하는 겁니다. 그때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며 성체화됩니다.
카잔차키스에게는 자유가 투쟁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투쟁 자체이기 때문에 예수가 끊임없이 악의 유혹을 받으며 심지어 굴복까지 한다는 상황이 필수적입니다.
-76쪽


조르바와 예수는 카잔차키스가 제시하는 ‘초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순과 충돌, 육체와 영혼 사이에서 언제나 고투했던 작가의 모습이 인물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카잔차키스는 두 작품에서 순간에 충실한 삶, 완전히 몰입한 삶을 그렸으며 이러한 살아 있는 예시를 통해 영원회귀를 표현한다. ‘이후의 시간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해답은 바로 순간에 충실한 삶이다.
로쟈는 카잔차키스가 형이상학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살아 숨 쉬는 자유의 언어로 문학을 완성한 작가임에 주목하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이상을 제시한다.



완벽한 예술을 위한 열정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 『면도날』 읽기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서머싯 모옴은 겸손한 작가입니다. 설교하지 않아요. 인생에 대한 지혜, 냉정한 통찰을 간간히 씁니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거나 장황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영국 작가들은 에티켓이 있어서 두세 줄만 딱 씁니다. 한쪽에서는 깊이가 없다고도 하겠지만 저는 예의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를 공연히 무겁게 하지 않고 부담을 주지도 않습니다. 읽는 이가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싶으면 알아서 머리를 싸매도록 적당한 선에서 힌트만 던져주고 넘어갑니다. 다만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103쪽


통속소설의 형식을 빌리지만 예술성 또한 놓치지 않음으로써 탁월하게 삶을 ‘보여주는’ 작가, 서머싯 모옴. 그는 인간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놀라운 관찰력으로 누구나 감추고 싶은 내밀한 욕망을 작품에 담았다. 로쟈는 진지하지만 가볍게, 어려운 철학을 쉽게 표현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옴의 솜씨를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니체뿐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허무주의적 세계 그리고 동양사상을 고찰하게 하는 작가의 진가를 소개한다.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에서는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예술가의 일생을 그린 『달과 6펜스』와 종교적 열정과 세속의 욕심을 탐구한 『면도날』을 통해 예술을 향한 열정뿐인 삶을 들여다보고 『인생의 베일』을 읽으며 깊숙한 곳에 숨은 인간의 욕망의 실체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 니체식 정언 명령입니다. ‘너 자신이 되어라’를 함축하기도 합니다. 삶을 하나의 완벽한 작품, 자신이 책임지고 긍정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라는 요구입니다. 운명애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을 낳을까요? 자기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운명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한, 완벽한 것으로 긍정하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희망을 말하기에는, 전례를 봤을 때 서머싯 모옴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은 작가입니다. 인물에게 깨달음을 주지만 그 깨달음조차도 자기혐오로부터 구제하지는 못합니다. 서머싯 모옴이 현실과 세계를 바라보는 냉정한 눈입니다.
-136~137쪽


삶을 즐겼던 작가인 모옴은 91세까지 장수하며 돈이 어떤 편익이나 자유를 가져다주는지 잘 알며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른 가치를, 열정에 빠진 인간, 예술가, 구도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들어 보여준다. 로쟈는 서머싯 모옴의 냉철한 시선을 따라가며 인간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보도록 권유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삶의 무게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기


쿤데라에게 정체성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자신의 신상에 관해서도 최대한 숨기고자 하고요. 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감추는 전기적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실은 이 점이 쿤데라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가 됩니다.
-161~162쪽


자신의 신상에 관해서 가능한 숨기고자 하는 은둔형 작가 밀란 쿤데라. 로쟈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감추는 전기적 사실, 숨은 이야기에서 작품 이해의 힌트를 찾으며 작품을 읽어나간다. 모든 이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먹고 싸는 존재’라는 인간의 면모 즉 육체적 세계를 중요시여기는 작가. 무거운 이야기를 가벼운 형식에 담는 구성을 기본으로 작품을 쓰며 사유와 철학을 하나의 예시인 소설적 삶에 담고자 하는 쿤데라의 문학 세계를 살펴본다.


러시아의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이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육체적 세계를 말합니다.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먹고 싸는 존재’라는 것, 이것이 라블레의 발견입니다. 쿤데라는 라블레를 전면적으로 수용합니다. 소설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보여준다면 어떤 것인가? 바로 먹고 싸는 존재라는 겁니다.
-169쪽


쿤데라의 핵심 주장은 소설이 인간의 삶과 실존에 대한 인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과 철학과 소설적 인식이 동등한 자격으로 겨룰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우월하며 때로는 더욱 놀라운 앎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양극단 사이에서 인물이 진동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삶에 대한 치열한 고찰을 권한다. 로쟈는 작가의 의도에 충실하게 따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유가 집약된 『정체성』, 농담과 웃음이 가능한 사회에 대한 고찰인 『농담』, 니체의 핵심 철학 ‘영원회귀’를 일회적 삶과 대치시켜 인생 성찰법을 말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개한다.


좋은 소설은 해답을 제시한다기보다 물음을 던집니다. 문학의 성취는 사이에서 진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문제제기만으로도 작품은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257쪽


로쟈는 니체의 철학을 바탕으로 카잔차키스, 서머싯 모옴, 쿤데라의 대표작을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읽으며 철학과 문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색법을 찾도록 독자에게 권한다. 또한 한 가지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진동하는 실제 삶을 이야기하며 문학 읽는 특별한 독서 코드를 제안한다.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는 독자의 ‘자유 독서’, 자신만의 책 지도를 만들 수 있기를 가이드하는 최적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