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붉은 땅 서호주, 굉장한 곳이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
35억 년 전 생명체의 첫 탄생 시점에 다가가는 시간 여행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는 과학탐험가 문경수가 국내 최초로 NASA 우주생물학자들과 함께 서호주를 탐사한 이야기이자 탐험 입문서다. 늑대개가 우는 벌판에서 한뎃잠을 자는 것은 기본이고 차는 자꾸 모래구덩이에 빠지는 곳. 조난당해 별을 보며 방향을 가늠하고, 호주 원주민의 도움으로 간신히 사막을 빠져나오면서도 결국 초기 지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해변을 걸었던 기록. 생명에 대한 과학적 고찰에서 ‘살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돌’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가슴 뛰는 순간까지 인간과 최초 생명체의 흥미진진한 만남이 담겨 있다. 생명체가 탄생하던 순간이 고스란히 남은 서호주, 그 35억 년 전 세상으로 진정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캥거루와 에뮤, 딩고가 뛰어노는 아름다운 목초지뿐 아니라 200킬로미터 이상 이어지는 황금빛 산맥, 바닷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검붉은 지각, 흰개미 집이 끝없이 펼쳐진 뜨거운 사막, 모래바람이 부는 인도양…. 오늘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풍경이 발견되는 서호주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마션>의 최초 촬영지로 선택하기도 한 서호주는 지구에서 가장 화성과 유사한 환경을 가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같은 자연 외에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한 가지는 바로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 즉 대기 중의 산소를 만든 미생물계의 영웅 시아노박테리아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NASA의 우주생물학자들은 서호주를 방문해 이 “생명체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을 만날 기회가 생기기를 꿈에 그린다.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서호주의 광활함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생명체의 기원을 찾는 과학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까지 오롯이 담긴 한 편의 과학 다큐멘터리다. 돌 한 조각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밤하늘의 별이 이처럼 반짝일 수 있는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이루어낸 감동을 만끽한다.
저자 문경수는 몽골, 고비사막, 알래스카, 하와이, 서호주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를 부지런히 누비며 탐험의 뜨거운 감동을 많은 이에게 전하고자 노력하는 ‘과학탐험가’다. 국내 다수의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출연한 그는 NASA 우주생물학자들과 세 차례 서호주 탐사를 떠났고 그 여정을 5년에 걸쳐 집필했다. 과학자들과 은하수를 보며 모닥불 옆에서 잠을 자고, 주저앉은 차를 모래구덩이에서 함께 꺼내고, 같이 화석을 캐면서 느낀 순간을 고스란히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에 담았다.


1,000킬로미터마다 풍경이 바뀐다는 말이 실감 났다. 해멀린 풀을 기점으로 창밖 풍경이 새롭다. 나무 형태의 식물은 자취를 감췄고 발목 높이의 관목과 소실점이 보이는 지평선만 끝없이 펼쳐졌다. 간혹 봉우리가 평평한 탁상 지형도 드러나 황량함마저 미사여구로 느껴지는 풍경이지만 그 황량함 덕분에 멀리 보이는 미세한 변화에도 눈이 민감해진다.
-99쪽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희열로 바뀌는 순간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탐험기


새벽 4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오랜 정적을 깨고 딩고(늑대개)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숨죽이고 있던 다른 동물들도 어둠 저편에서 함께 울부짖는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서둘러 불을 피웠다. 불이 동물의 접근을 막아준다고는 하지만, 불을 보고 우리 위치를 파악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호주 대륙 유일의 맹수 딩고는 캥거루와 양을 잡아먹을 정도로 힘이 세다. 마지막 방어벽이라 생각하고 불을 크게 피웠다.
-25쪽


아직 개척되지 않은 서호주 북부 킴벌리 지역, 저자 문경수는 하루치 식량만 들고 무작정 떠났다. 그리고 유칼립투스만 무성한, 수백 킬로미터를 가도 차 한 대 마주치지 않는 그곳에서 조난을 당한다. 최악의 상황을 차근차근 넘기면서 지도 한 장과 해와 달, 별의 위치에 의지해 걸었다. 대낮 같이 밝은 은하수 아래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던 때 기적적으로 원주민 마을을 찾고 친절한 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사막을 벗어났다.
조난에 따른 심리적 부담이 있었지만 황량한 서호주 땅에 대한 그리움이 남았고,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당시 본업이었던 과학 기자 생활을 접은 뒤 떠나기로 결심했다. 생생한 경험담을 전하기 위해 다시 서호주로 향한다. 그동안 다큐멘터리에서만 보았던 층서학자 마틴 반 크라넨동크 박사와의 ‘우연한’ 만남은 새로운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과학자가 아닌 신분으로는 아시아인 최초로 NASA 우주생물학자들과 함께 생명체의 기원을 찾는 탐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걸 보러 지구 정반대 쪽에서 왔단 말이에요?”
카우보이모자를 쓴 NASA의 과학자들


문득 ‘무엇이 이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본다. 막판에 이탈리아에서 온 이반이 덤불을 잘라내는 모습을 앞좌석에서 바라볼 땐 뭉클함마저 들었다. 지구 초기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과학자들의 열정에 강한 인류애가 느껴진다.
-186쪽


몇 날 며칠을 이동해도 풍경이 바뀌지 않는가 하면, 길을 사이에 두고 검붉은 산맥과 새빨간 땅이 갑자기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서호주는 생명체의 비밀이 숨어 있어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심해에서 시작된 편모뿐인 생명의 실마리부터 식물보다 먼저 광합성을 한 시아노박테리아와 미생물의 생태계인 스트로마톨라이트, 바닷속 철과 산소가 반응한 흔적 호상철광층까지, 태어나 지금에 이른 지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기에 과학자들이 평생 꿈에 그리는 성지가 되었다.
조그만 생명을 만나려고 지구 정반대 쪽에서 날아온 전 세계 곳곳의 NASA 우주생물학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스타 지질학자, NASA 화성 유인 탐사 프로젝트의 낯가리는 수장, NASA 존슨우주센터의 섬세한 지리화학자, 세계에서 가장 큰 전파망원경을 만드는 천체물리학자, 드론으로 서호주를 촬영해 삼차원 지도를 만드는 지질학자, 미생물을 연구하는 최고의 셰프 고생물학자, 분위기 메이커 천체물리학자, 가상현실 과학 콘텐츠를 만드는 교육자 등등 이 책에 등장하는 우주생물학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첨단 연구를 하고 있다.
35억 년을 살아온 돌조각에게 ‘고맙다, 아름답다’고 말하던 한 과학자는 탐험의 감동을 잊지 못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서호주 사진을 찍어 탐사대원들에게 선물한다. 저자는 그들과 함께 오지 생활을 즐겁게 버티며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다. 상황극을 즐기고 유머 넘치던 이들은 화석을 만날 때면 ‘과학자’의 눈으로 돌변한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실의 과학자가 아닌,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태양계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붉은 대륙을 샅샅이 탐험하는 현장 우주생물학자들. 매력 만점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과연 우리뿐일까
오래된 지구에서 바라본 우주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이 별개인 듯 보이지만 놀라운 방식으로 얽혀 있다. 138억 년 전 빅뱅 폭발로 우주가 만들어졌고 별 먼지가 모여서 우리가 사는 행성과 몸이 탄생했다. 결국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 유전자는 지각, 암석, 바다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졌다. 멍하니 별을 보고 있자니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지구라는 행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60쪽


NASA의 우주생물학자들은 시아노박테리아와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을 연구하기 위해 서호주에 왔다. 이 미생물들의 출현으로 지구 대기에 산소가 생겼고 고등 생명체, 현생인류로의 진화가 가속되었다. 오래된 생명체를 연구하면서 우주를 바라보는 과학자들은 ‘과연 우리뿐인가’에 대해 고찰한다. 이는 지구의 역사와 환경 변화를 앎으로써 외계 행성에 사는 미생물, 나아가 지적생명체를 탐색하려는 부단한 노력이다. 또한 달로, 화성 같은 외계 행성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등의 지속적인 연구는 앞으로 바뀔 지구 모습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결국 그들은 이 모든 과정을 토대로 지구를 정확히 알기를, 언젠가 화성에 인간을 보내기를 꿈꾼다.

어쩌면 탐험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과학탐험가가 다시 떠나는 이유

국내 다큐멘터리 팀과 떠나고, 국내 연구자들과 함께 탐사를 다니고, 일반인 탐험대를 조직해서 진진한 경험을 나누는 저자는 쉴 새 없이 인천공항을 방문한다. (심지어 이 탐험가의 집은 영종도다.)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그에게 사람들은 탐험에서 돌아오면 일상이 지루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때마다 머뭇거림 없는 대답은 ‘아니요’다.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한 발견을 통해 이룬 인식의 변화야말로 탐험의 진정한 가치”라고 말하는 이 과학탐험가는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를 통해 그동안 달라진 시각의 변화를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가 10여 년 동안 탐험을 다니며 느낀 것과 차분한 일상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을 부풀게 하고 뜨거운 모험의 설렘을 안겨준다.


탐사한 지역을 왜 다시 가느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 탐험의 대상은 그대로지만 함께하는 사람과 관점에 따라 늘 새 옷을 입는다. 단순히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모험적 활동을 넘어서 인간의 본질적인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화적 행위로 탐험이 인식될 때 우린 다시 미지의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내딛게 될 것이다.
-237쪽


* 그런데 인간은 정말 화성에 가는 것일까?


“우선 2030년쯤 화성 궤도에 머물면서 우리가 만든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연해볼 겁니다. 실질적인 유인 탐사는 2040년대로 예상합니다.”
“진짜 믿어도 되겠죠.”
“물론!”
-221쪽


화성에는 이미 많은 궤도선과 탐사로봇이 자리 잡고 있어, 지도까지 완벽하게 갖추었고 언제든지, 누구든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생명체의 흔적이 진짜 발견될 것인지, 흐르는 물은 언제 찾는 것인지, 화성에 이주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선발하고 있다는데 가능한 일인지 등등 호기심은 점점 커지기만 한다. 탐험에 참가한 어느 천체물리학자가 ‘NASA 마스 2020 프로젝트’의 책임자 미치 슐트 박사에게 물었다. 정말 화성에 갈 수 있는 거냐고.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화성에 ‘정말’ 간다.



추천사


끝없이 펼쳐진 붉은 사막 위로 2,506킬로미터를 달렸다.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엔가 반경 수십 킬로미터 안에 우리 외에는 단 한 사람도 없는 곳에서 잠을 잤다. 두렵거나 외롭지 않았다. 밤하늘을 보았다. 거꾸로 서 있는 오리온자리 그리고 북반구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남십자성과 금세 친해졌다.
지구 어느 구석이나 저마다의 풍경이 있다. 금방 익숙해지고 낯섦은 사라진다. 서호주 역시 다르지 않다. 별난 곳이 아니다. 샤크 만의 해변, 카리지니의 깊은 협곡, 붉은 사막도 한나절이면 익숙해진다. 탐험이든 여행이든 ‘낯섦’을 잃어버리면 그냥 일상이 된다.
그런데 길고 험난한 여정이 낯섦으로 이어졌다. 포인트마다 35억 년 전 생명의 흔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가 있었다. 낮에는 돌과 이야기하고 밤에는 별과 이야기했다. 돌과 별 사이에 과학탐험가 문경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경수는 자신의 탐험 이야기로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감동받은 이를 이끌고 직접 경험하게 했다.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는 생명의 기원을 찾아가는 우주생물학자들의 탐사 이야기이자 탐험 입문서다. 이 책을 읽고 탐험에 나서는 용기를 얻기 바란다. 탐험가란 자연을 탐구하려는 열정으로 고무되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