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평생 글을 써 온, 현역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삶과 글과 예술에 대하여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해인 1993년 1월, 일본의 대표 문예지 <군조>에 오에가 일본 문학의 또 다른 거장 후루이 요시키치와 나눈 대담 「소설·죽음과 재생」이 실렸다. 이 대담을 시작으로 두 작가는 2015년까지 무려 20여 년간 <군조>와 문예지 <신초>를 오가며 문학과 삶에 관하여 총 다섯 번의 대담을 이어갔고 이를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20여 년의 오랜 시간이 무색할 만큼 이들이 문학을 대하는 자세는 한결같으면서도, 삶과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깊어갔다. 둘은 문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과 노년에 관해 솔직하게 대화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었다.
세계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는 1958년 단편소설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젊은 나이에 주목받는 작가로 발돋움했고 전후의 암울한 사회상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다 아들 오에 히카리가 뇌 장애를 안고 태어난 일을 계기로 사소설에 가족의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고통 받고 폭력 앞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작품 속에 그려냈다. 이렇게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작품 세계는 공생과 구원이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주제까지 나아간다.
그는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직접 일본의 천황제,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탈핵 운동에 앞장서면서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큰 어른’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오에 겐자부로의 말을 거뜬하게 받는 사람은 오에와 같은 세대로 두 살 터울인 후루이 요시키치다.
후루이는 일본 ‘내향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일본 최고의 소설가 겸 번역가로 손꼽히는 작가이다. 개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면서 기성 일본어의 문맥을 깨는 독자적인 문맥을 구사한다는 평을 듣는 그는 아쿠타가와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등 일본 최고의 문학상을 다수 받았으며 작가만이 아니라 독문학자로서 문학에 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두 거장의,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생생한 대화를 마음산책 열한 번째 ‘말 시리즈’ 『오에 겐자부로의 말』에서 만날 수 있다.


살아 있다는 것, 쓴다는 것
두 거장이 노년에 발견한 소중한 가치


오에: 최근에 세 번이나 그렇게 넘어졌기 때문에 제 노년에 대한 단적인 인식은 자주 넘어지는 인간이 되었다. 게다가 완벽하게 넘어지는 것에 가깝다 하는 것입니다.


후루이: 이런 이야기를 해두면 이런 늙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젊은 사람들도 다소는 알아주겠지요.
─ 261쪽


1940년대 전쟁 통에 유년 시절을 보냈고, 전후 사회의 격랑을 통과하면서 이제 노년을 맞이한 두 거장. 시대의 곡절만큼이나 둘의 대화는 그 폭과 깊이가 남다르면서도 마치 오랜 친구가 만나 회포를 풀 듯 친근한 합(合)을 보여준다. 같은 문학군에 속한 적은 없지만 동 세대 작가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평생 글을 쓰기 위해 분투했던 두 거장의 고민과 화두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작가로서 서로에게 보내는 존경과 격려가 대화 사이에 깊이 배어 있어서 대담의 품격을 높인다.
두 작가는 첫 번째 장 「명쾌하며 난해한 말」에서 문학의 언어가 지닌 ‘명쾌하며 난해한’ 성질을 논한다. 두 번째 장 「100년의 단편소설을 읽다」에서는 100여 년에 걸쳐 <신초>에 실렸던 단편소설 중 35편을 뽑아 비평하면서 일본 문학의 역사와 흐름을 논한다. 세 번째 장 「시를 읽다, 시간을 바라보다」에서는 후루이의 저작인 『시로 가는 오솔길』을 가지고 문학의 번역에 관해 논한다. 네 번째 장 「말의 우주에서 헤매고, 카오스를 건너다」에는 오에와 후루이가 작가로서 노년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토로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지막 장인 「문학의 전승」에서는 세계문학의 고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문학의 전승에 관해 논하고 작가로서 전망을 이야기한다.
오에는 특히 노년에 관해 말할 때 약해진 몸 때문에 그에 맞추어 만년의 독서 방침을 정했다고 하면서도 더 쓸 수만 있다면 끝내 시를 쓰고 싶다는, 작가로서 마지막 소망을 고백한다. 노년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문학 덕분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낼 거라 자신하기도 한다.
후루이는 노년이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속박 안에 있기 때문에 노년만이 지닌 명료성이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 화답한다. 이렇듯 두 작가 모두 만년에 이르렀지만 계속 일하고 싶다고 하면서 삶에 대한 커다란 열정을 드러낸다. 마지막에 다가갈수록 오히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또렷해지고 더욱 살아 있음을 느끼는 노년의 역설은 독자들의 삶에 큰 울림을 전할 것이다.


후루이: 일을 계속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늙고 나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견디는 일은 꽤 힘듭니다.


오에: 저는 일을 하지 않는 상태로 있는 용기와 끈기가 없습니다. 어렸을 때나 청년 때 이래로 뭔가를 하는 지속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지속력이 없는 것이 저의 근본적인 결함입니다.
─ 182쪽


쓰고 또 쓰는 숙명에 관하여
오에 겐자부로가 고백하는 작가로서의 삶과 태도


스물세 살에 등단해 60여 년을 작가로 살아온 오에 겐자부로는 작가로서 자신이 마주했던 문학적 화두를 하나씩 꺼내 이야기한다. 먼저 문체에 관하여 그는 젊을 때 쓰던 문체가 어느 순간 자신의 생활과 역행하는 것을 깨달아 의식적으로 문체를 바꾸었고, 이로 인해 작가로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아들 오에 히카리가 태어난 후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아들의 목소리, 타자의 목소리를 사소설로 표현하면서 문체상의 정체기에서 벗어났음을 고백한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의 개별성과 보편성에 관한 논의도 빼놓을 수 없다. ‘개별적인 혼은 없고 공통의 혼이 있어서 그것이 예술가를 통해 울린다’ 하는 오에의 말에 화답하여 후루이는 ‘작가는 그릇으로서 수동적인 악기가 된다’ 하고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둘은 작가로서 더 나은 작품을 위해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숙명에 관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은 ‘명쾌한 말’을 위해 계속 글을 쓰지만, 그 끝에 닿을 수 없다는 망연함을 토로한다. 이렇듯 만만치 않은 문학의 화두를 두 거장은 관록과 노련한 통찰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용하는 문학작품들의 방대함도 대담에 깊이를 더한다. 로베르트 무질, 카프카, T. S. 엘리엇, 윌리엄 블레이크, 나보코프 등 세계문학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논의를 더욱 구체적으로 이어간다. 세계문학뿐만 아니라 「100년의 단편 소설을 읽다」장에서는 국내에도 익숙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같은 작가들을 일본 문학의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비평한다. 가무라 이소타, 마키노 신이치, 우치다 햣켄, 오자키 가즈오 등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일본의 작가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말』은 독자들이 일본 문학, 나아가 세계문학 속에 자리한 두 평생 직업 작가를 통해 글쓰기와 삶 그리고 문학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기회가 될 것이다.


오에: 저는 예전에 나보코프의 『재능』이라는 소설에서, 상상했던 작자는 없어지지만 창조된 인물은 남아 있다는 낙관적인 대사를 인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좀 더 엄격하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작중인물도 작자도 머지않아 없어진다는 게 실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문학 독자는 살아 있다’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제 독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날 책을 읽는 사람이 있고, 과거에 읽은 책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으며, 장래에도 책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 거라며 문학 독자의 존재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