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캐나다에서 암과 싸워나가는 한 생명의 희망보고서


『슬픔이 희망에게』는 한 가족이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길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큰아들 이 뇌종양 진단을 받은 후 지금까지 환자와 그 가족이 병과 싸워온 뼈아픈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개인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만을 강조해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꼭 전해야 하는 이야기들만을 모아 자신의 슬픔과 눈물 속에서 단단하게 벼려내고 있다.


‘나는(우리는) 이러한 고통과 불행을 이렇게 극복했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러니 이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등단 후 같은 직장에서 만나 젊은 한시절을 함께 보냈으며, 지금도 저자와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소설가 신경숙은 곁에서 가깝게 보아온 김혜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혜정은 원래 그러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걸 혼자서 껴안고 끙끙대는 사람이었다. 다 해결이 된 다음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발문> 중에서>)


저자 자신도 스스로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용량의 슬픔을 견디어내는 슬픔집’이 발달한 사람, ‘남의 눈에 화를 내거나 덤벼야 할 일조차 발달된 내 슬픔집만 믿고 고스란히 참아내는 조금 답답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김혜정은 섣불리 표현하거나 나서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그가 이처럼 뜨겁게 말문을 여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에 담긴 마흔다섯 편의 글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그녀의 절박한 선택이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 나이에 뇌종양에 걸린 자신의 아이를 통해 그 ‘아이의 고통을 깊이 껴안으며 인간이 지녀야 할 진정한 품위가 무엇인지’를 통찰하고 있는 그녀의 글은 궁극적으로 한 사회와 그 곳에 속한 사람들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올바른 것인지, 생명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사유하고 반성하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행위를 ‘1인 시위’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1인 시위’에는 느닷없이 닥쳐온 큰 불행으로 ‘몇 년 후를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 비관주의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그리고 철저한 쾌락주의자’로 저자를 변하게 만든 것들과 그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2.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이들에게 띄우는 마흔다섯 개의 간곡한 메시지



“이민자의 신분으로 낯선 땅에서 아픈 아이를 치료해가면서 쓰여진 혜정의 글은 우리나라의 모든 시스템과 아프지 않은 나를 반성케 했다. 늘 반복되는 것 같은 이 남루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데 그를 통해 타자를 발견하고 배려하는 일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아이의 고통을 깊이 껴안으며 인간이 지녀야 할 진정한 품위가 무엇인지를 간곡하게 말하고 있는 혜정의 글을 읽은 날이면 감정이 복받쳐서 새벽잠을 설치며 방안을 서성거리곤 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신경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안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발문> 중에서)

저자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상황 앞에서 휘청거린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겪지만 차츰 상황을 직시하고, 슬픔을 다독이고, 절망을 추슬러 희망의 근거로 삼아나가는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바탕에는 타인의 고통감지 지수가 비교적 높은, 그래서 이민자에게도 똑같은 혜택이 주어지는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이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었고, 이러한 것들이 난치 혹은 불치병으로 인생의 길이 달라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림으로써 그러한 혜택을 베풀거나 누리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고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평등하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닥치지 않으면 쉽게 외면하거나 그저 한번 ‘눈물짓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환자와 그 가족은 소수자로서 소외되거나 방치되기 쉽고 그 고통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다루어진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3. 그녀의 슬픔은 단단하다―자신의 슬픔으로 타인의 눈물 닦아주기  


아들 ‘휘’의 투병과 그 기록인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잊기 쉬운 몇 가지 것들에 대해 항상 깨어 있기를 당부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존엄성을 지켜나가고, 타인의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타인을 배려하며, 잃기 전에 일상의 소중함을 항상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에서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을 소상히 밝힌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덕목들(인간존중, 합리성, 평등)이 좀더 수월하게 고통과 불행을 헤쳐나갈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은 모든 검사와 치료비가 의료보험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공짜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치료비 걱정에 마음껏 슬퍼할 수 없고, 그래서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설 힘을 주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슬퍼할 권리와 함께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휘는 뇌종양 진단을 받은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서는 꿈도 꿔보지 못할 치료와 배려를 받았고, 받고 있다. 정확한 검사와 함께 제때에 맞춰 검사와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병원 의료진들, 치료 후 장애가 생겨도 환자가 속했던 이전의 세계에서 격리시킴으로써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서 현실에 잘 적응하고 새로운 새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스템(설휘의 경우 점자선생님과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예전에 공부했던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환자는 물론 환자가족에게도 베풀어지는 세심한 배려(통원치료시 병원차량 이용과 가정의 형편을 살펴 비싼 약값 지원), 빛나는 표정으로 즐겁게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모든 환자 앞에 평등한 의료시스템과 환자의 진료기록을 의사끼리, 병원끼리 공유함으로써 검사의 중복을 피하는 합리성, 그리고 퇴원 후 그때그때 환자의 상태에 맞춰진 복지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커다란 과제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원봉사자들로 대변되는 일반인들의 열린 의식이며, 각종 후원단체들로 대변되는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이다.



4. 김혜정과 홍설휘


저자 김혜정은 1985년 대학 재학중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환절기>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한 소설가이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황순원 선생과 전광용 선생은 ‘전체적인 짜임새’를 높이 평가했으며 ‘앞으로 작품을 쓸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후 저자는 <사람과 사람> <뉴스비전 동서남북> <한국의 미> <한국의 재발견> <TV문화기행> 등 다수의 방송 다큐멘터리 원고를 쓰는 방송작가로 일했으며, 2000년 공부를 위해 가족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나 현재 그곳에서 큰아들 설휘와 함께 병과 싸우고 있다.

설휘는 뇌의 시신경 가까운 곳에 자리한 종양으로 인해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으며 나머지한쪽 눈의 시야는 4분의 1로 좁혀졌다. 뇌 속에 레자브와를 설치해서 행한 항암치료가 실패한 후 종양제거 수술을 거쳐(그 수술로 휘는 몸 한쪽에 마비가 왔다) 10퍼센트의 종양을 남겨둔 채 방사선치료를 받았고 현재 그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