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서울시교육청 중고등추천도서

 

피에르 신부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선정한다. 그리고 이 설문조사에서 8년 동안 무려 일곱 차례나 1위에 오른 인물이 있다. 올해로 아흔 살을 맞는 노사제 피에르 신부.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기경이나 교황도 아닌 그냥 보통의 성직자에 불과한 그에게 사람들은 왜 그토록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걸까? 이번에 <마음산책>에서 펴내는 피에르 신부의 자전적 기록인《단순한 기쁨》(원제:Memoire d'un croyant)에 그 답이 담겨 있다.

《단순한 기쁨》은 현재 전세계 44개국 350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Emmaus)>의 창시자인 피에르 신부의 자전적 기록이자, ‘노사제가 우리들에게 털어놓는 고백성사’이다. 어느날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이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물어온다. 피에르 신부는 이 물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으며, 삶의 의미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대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책머리에’에서 밝히고 있다.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피에르 신부는 90평생의 실천적인 덕목들을 일러준다.

《단순한 기쁨》에서 피에르 신부는 솔직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얘기함과 동시에, ‘더불어 사는 기쁨’ ‘나눔의 철학’ ‘실천하는 사랑’ 등, 이 시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핵심적인 메시지들을 그 이야기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그의 인생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기쁨’은 결코 멀리 있거나 거창한 것이 아님을, 목이 마를 때 물 한모금 속에서도 무한한 기쁨을 맛보게 되듯이, 이웃과 더불어 베풀고 나누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타인이 바로 내 삶의 ‘기쁨’이라는 단순한 진리와 깨달음을 얻기에 이른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제로 경험하거나 보고 들은 재미있고 감동적인 일화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어, 그의 삶과 메시지는 우리 곁에 한층 친근하게 다가선다. 1부 <상처입은 독수리들>에서는 삶에서 상처입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어떻게 해서 자신이 부조리를 등지고 신비를 선택했으며, 절망을 등지고 희망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확신>에서는 지식으론 알 수 없는 하느님과 복음서 속에 드러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3부 <만남을 향하여>에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모색과 비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신부가 되었나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그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그 많은 유산과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서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가 수도사가 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신앙이 돈독한 집안환경도 환경이지만 그의 마음 밑자락에 깔려 있던 종교인으로서의 성정과 두 번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열네 살, 성실한 보이스카웃 단원이었던 그에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인 <명상하는 해리>는 무엇보다 유년시절 피에르 신부의 면면을 적절히 말해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열네 살짜리 남자아이들이 이 이름을 내게 골라준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앞으로 나는 집을 짓기 위해 평생을 바쳐 싸우게 될 터인데, 해리는 집을 짓는 동물이고, 명상은 나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니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마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들른 <카르세리 수도원>에서 ‘한 수도사로부터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에 대해 듣고 난 뒤’ 결심을 굳힌다. 그는 그때부터 ‘맨발로 지내며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고, 매일 밤 자정에 깨어나 한 시간 가량 시편을 암송하고 다시 한 시간 동안 어둠 속에서 기도드리는’ 수도사로서의 생활에 전념하며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남다른 이력, 레지스탕스와 국회의원

 

피에르 신부의 이력은 남다르다. 그중에서도 사제라는 신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투사였다는 점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믿고 내 가족, 내 나라, 내 민족을 넘어서 인류는 한 형제라고 생각한 그를 떠올려볼 때,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싸움을 그냥 지나쳤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답지 못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1941년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 시작한 피에르 신부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면서 내 삶과 신앙에 새로운 한 장이 열리게 된다. 솔직히 말하건대 그 선택에는 정치적 동기라곤 없었다.’ 쫓기는 유대인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그는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고, 헌 신발을 신은 유대인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고는 맨발로 눈길을 걸어 돌아오고, 동료의 밀고로 독일군에게 체포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등,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시작으로 그는 지금까지 궁글려왔던 자신의 사유와 말을 차근차근 행동과 일치시켜나가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독특한 이력인 국회의원 활동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이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 부조리와 불합리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정치적인 힘에 호소했다. ‘나는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아주 단순한 사실 한 가지를 터득했다. 정치인들의 할 일은 근본적으로 누구에게서 돈은 얻어내어 재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엠마우스, 더불어 사는 기쁨

 

전쟁 후 국회의원 활동으로 뇌이-플레장스에 머물던 피에르 신부는 어느날 자살을 기도한 사람과 얘기를 나누게 된다. 신부는 섣부른 위로와 도움 대신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집짓는 일을 도와달라고 청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되찾은 그는 후에 이렇게 말한다.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더라면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두 ‘상처입은 독수리들’이라는 생각 아래 피에르 신부는 자신이 살던 집을 개조해 그곳에 집 없는 사람들과 부랑자들, 그리고 그 당시 넘쳐나던 전쟁고아들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그 공동체를 ‘엠마우스’라고 명명한다. 현재 44개국 350여 곳으로 확산되어 있는 ‘엠마우스’는 단순한 자선단체가 아니다. 그곳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노동해서 번다. 둘째, 우리는 모든 걸 나눠가진다. 셋째, 멸시받고 소외된 주변인들인 우리는 베푸는 사람이 되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한다.

 

즉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곳을 찾은 구성원들은 조건 없이 도움만을 받기보다는 땀흘려 노동을 함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하고,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다시 사회로 환원할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도 마음을 담아 나누고 구원을 베풀 수 있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한 여러분이 그런 일을 못할 게 뭐 있습니까.”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 피에르 신부

 

공동체 형제들과 ‘엠마우스’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여전히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던 피에르 신부는, 1954년 방송국과 텔레비전을 찾아가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실상을 호소했고, 이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얘기는 1989년에 세자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겨울 54(un Hiver 54)>에서 자세하게 다뤄졌다.

 

그는 외부적인 사안뿐만 아니라, 자기자신 혹은 교회와 성직자가 범한 오류도 과감히 질타하는가 하면, 법을 어기고서라도 집 없는 자들에게 집을 지어준다. 그러나 그가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논쟁을 만드는 것은 싸움을 좋아해서도, 어떤 대가를 바라서도 아니다. 그가 약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세상의 저열함에 진정으로 분개하고, 온갖 부정과 부패와 불의와 불평등에 무감각해져 있는 우리들의 근시안을 깨우쳐주려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몸소 실천으로 옮겼기에 그의 메시지들이 아무리 원론적이고, 평범한 것들일지라도 결코 공허하거나 평범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한다. ‘유일한 신성모독은 사랑에 대한 모독뿐이다.’

 

 

삶의 ‘해답’이 아닌 ‘공식’을 알려주는 책

 

“이 책에서 피에르 신부는 예상대로(?) 믿음, 기도, 용서,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을 어쩌면 이렇게도 산뜻하고 친근하게 하는지. (……) 그는 한 인간으로서 삶의 핵심에 대해서도 말한다.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들―자유, 행복, 사랑, 그리고 희망, 이런 것을 얻기 위해 평생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를 깊은 목소리로 전해준다. 삶의 ‘해답’이 아니라 ‘공식’을 깨닫게 해주는데, 이 공식들을 내 삶에 대입해보고는 나도 잘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피에르 신부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행동파’이기 때문이다.”

―한비야(오지 여행가·긴급구호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