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여행자 요네하라 마리의 다정한 귀환
여동생이 기록한 ‘내 언니 마리’의 모든 것


러시아․일본 정상 외교 회담의 전문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자 작가와 비평가로 왕성하게 활동한, 요네하라 마리(1950~2006). 마음산책은 2006년 11월 첫 번째 번역서인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2013년 10월 그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책인 『유머의 공식』까지 열여섯 번째 번역서를 출간하는 것으로 요네하라 마리 전작을 완간한 바 있다.
1960년대 어린 시절 공산당원인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로 이주해 국제학교에서 이異문화를 경험하고 도쿄외국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뒤,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지목한 일급 동시통역사로 활동한 일본 여성. <요미우리 문학상>과 <고단샤 에세이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필력과 특유의 관찰력을 인정받은 작가. 언어, 역사, 문화인류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으로 호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그녀는 하루 일곱 권의 책을 읽어치우는 인문주의자다. 동서양을 넘나든 다문화 경계인, 자유인으로서 체득한 국제적인 감각과 사유를 바탕으로 다수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경쾌한 문체, 거침없는 ‘독설’이 빚어내는 재미로 무장한 요네하라 마리 월드는 국내에까지도 이미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이러한 요네하라 마리에게는 하나뿐인 여동생이 있다. 마리보다 세 살 아래인 이노우에 유리.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셰프이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고 이노우에 히사시의 부인이다. 『언니 마리』는 요네하라 마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여동생 이노우에 유리가 언니를 추억하며 써내려간 솔직하고도 유쾌한 기록이다. 요네하라 가문의 비화부터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마리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여동생의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마리의 진짜 얼굴이 생생하다.


사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리가 쓴 말, 작품이 널리 읽혀 다른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고 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씀으로써 마리가 말하는 말의 힘(히사시 씨는 ‘앞으로 꼬꾸라지듯 맥진한다’라고 표현했지만)의 비밀을 푸는 실마리로 삼아보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겠지만 언니는 어려서부터 정말 특출하게 개성적이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같이 지낸지라 사실 그다지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10대 후반부터는 언니가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위로부터 “저 사람 재밌네, 좀 희한한 사람이 있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나봐도, “응? 이 정도면 마리가 훨씬 재밌고 희한한걸” 하고 여기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제 틀 안에서는 개성적이요 재미있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 틀을 깨고 나와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리에게는 틀이란 게 없었다. 그 요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언니는 타고난 에너지로 정신을 자유롭게 활짝 열어젖히고 살았다. 그 결과로 약간의 곤란함도 즐거움도 함께 받아들였다. 덕분에 주위에도 불똥이 튀는 일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리워진다.
-「맺는말」에서



우리가 몰랐던 마리의 진면목, 새로운 마리를 알아가는 기쁨
요네하라 마리의 글 뒷이야기와 소장 사진 다수 포함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글을 썼으며 대담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요네하라 마리. 우리는 재기 넘치는 발명가이자 건축가를 꿈꾼 공상가, 춤을 사랑한 무용수, 한때 시인이 되고자 했던 자유롭고 담대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요네하라 마리를 알고 있다. 그러나 동생이 기억하는 언니는 좀 다르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 시절을 이방인으로서 함께한 경험과 가마쿠라에서 인간 수컷 없이 털북숭이들과 살았던 마리의 말년을 모두 지켜본 이로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마리에 대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강단 있는 에세이를 쓰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해설가로서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언니는 겁쟁이였다.
‘겁쟁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 모르겠다. 언니는 결코 주뼛대는 아이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학교에 다닐 때도 다른 사람 앞에서 언니가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학예회에서도 제 흥에 겨운 발레를 지겹도록 춰대던 아이였다. 도쿄에서도 프라하에서도 놀 때는 스스럼없이 나서서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적극적인 성격이다. 단지 새로운 것, 미지의 체험에 대해서는 뒷걸음쳤다. 마리가 ‘후가후가 할배’라고 불렀던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도깨비에 겁을 냈고, 식구들이 다 같이 지붕 위에 올라가 다마가와 불꽃놀이를 볼 때도 마리는 겁에 질려 매번 사다리 중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결국 불꽃놀이 구경을 포기했었다.
-40쪽에서


어릴 적엔 『창가의 토토』의 토토보다 이상했으며 요네하라 가문의 먹보 전설을 잇는 대식가였고(그리하여 미팅에서 차이기도 했으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학을 간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언제나 직접 지은 시를 동봉했으며 부모님의 환경적 영향 아래 터득한 러시아어 실력으로 대학을 진학한 것에 자존심 상해했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가까이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요네하라 마리의 소소한 역사가 펼쳐진다.


언니는 사람들하고 말하다가도 갑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버리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은 평생 고치지 못했다. 가족 앞에서는 괜찮지만 타인과 함께 있을 때면 상대방의 기분을 해칠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 시간 마리는 대체 어디에 다녀왔을까 싶기도 했다. 상상의 세계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지 가끔 미소 짓기도 한다. 혹은 상상 속에서 뭔가로 변신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42~43쪽에서


이 책은 요네하라 마리가 초창기에 썼던 글부터 최근작까지 마리의 다양한 글들을 풍부하게 인용함으로써 특유의 개성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이면을 동생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더불어 처음 공개되는 사진자료도 다수 포함되어 요네하라 마리의 지적 행보와 함께 개인사를 더 알고 싶어할 독자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맛의 추억으로 식구를 기억한다는 것
언니 못지않은 유머 감각을 지닌 동생의 솔직한 이야기들 


이노우에 유리가 요네하라 마리에 관한 추억을 집필한 이 책에는 셰프의 장점을 십분 살린 듯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프라하의 흑빵, 소시지, 계란소면, 방학 캠프의 숲에서 딴 버섯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요리, 러시아의 통조림 ‘여행자의 아침식사’와 한번 맛본 후 그토록 찾아 헤맸던 터키 과자 ‘할바’에 이르기까지, 언니와 ‘식구’로서 공유한 군침 도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언니 못지않은 입담으로 무장한 동생 이노우에 유리의 필력은 거칠 것이 없다. 언니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한 대목에서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반론을 제기한다. ‘설화舌禍 미인’이었다는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자매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미식견문록』에서 미지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빗대어 대표적인 러시아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을 꼬집은 마리가 정작 자신은 미지의 음식에 용감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튀김요리를 좋아한 마리가 방송국 촬영팀 통역으로 합류해 시베리아에 갔을 때 찍혔던 사진 속, 숙소의 화장실에서 튀김을 만들고 있는 마리의 표정에 대한 동생의 애정 어린 고백은 찡하기도 하다.


마리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골몰하면 이런 표정이 된다. 어떤 생각에 잠길 때, 뭔가를 하고 있을 때면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그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얼굴일 때의 마리가 정말 좋다.
-114쪽에서


요네하라 마리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다. 요네하라 마리는 “절대 절대 외치지만, 인간사에 절대라는 것은 절대로 없어”라고 말했으나 동생 이노우에 유리의 책 속에서 마리는 ‘절대’ 죽지 않았다.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살아 있다. 『언니 마리』는 요네하라 마리의 다정한 귀환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