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가 수상한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은 일본의 저명한 문필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오야 소이치(1900~1970)의 업적을 기리고자 매년 논픽션 분야에서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문학상이다(오야 소이치는 엄정한 눈높이로 다독하는 장서가로도 유명하다. 수집한 방대한 양의 단행본 및 잡지 자료를 모은 ‘오야 소이치 문고’ 시리즈가 있다). 별세한 1970년부터 수상작을 선정해 올해로 37회를 맞이한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은 재단법인 일본문학진흥회가 주최하고 《분게슌주文藝春秋》가 운영한다. 현 심사위원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國男 등이 맡고 있으며 역대 수상자로는 일본 최정상급의 논픽션 작가 사와키 고타로, 이시카와 요시미, 하기와라 아키라 등이 있다. 일본인들의 이민사, 재일동포 북송 산업의 비극 등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나 문제의식이 필요한 분야에 조명을 비추는 굵직한 작품이 주로 선정되어 왔다.



‘포스트 시오노 나나미’, 요네하라 마리의 첫번째 번역책 『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미우리 문학상>, <고단샤 에세이상>, <분카무라 두마고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에세이스트로 명성을 떨친 러-일 통역가 요네하라 마리의 작품이 처음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여성의 한 사람인 요네하라는 공산당 간부인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에 거주했던 어린 시절의 문화적 교육적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해왔다. 2005년 건강 악화로 은퇴하기 전까지 러시아 주요인사가 방일할 때마다 수행 통역하는 일류 동시통역사로 활동했던 그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을 담아 다문화를 포용하고 감수성이 돋보이는 에세이와 소설을 집필해왔다. 『프라하의 소녀시대(원제: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는 개인의 추억과 동유럽 현대사를 직조해 소설적 감수성이 엿보이는 논픽션으로, 요네하라 마리라는 작가를 이해하고 국내에 소개하고자 선정한 첫번째 책이다.



1960년대의 프라하, 유년의 기억을 찾아서


프라하로부터 일본으로 돌아온 요네하라는 프라하의 친구들과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그 연결고리는 차츰 헐거워졌다. 일본의 교육제도와 인간관계에 적응하느라 지쳐갔고 또 현실의 비중이 점차 커져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추억의 옥석을 가리면서 옛 친구들의 모습과 그들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해졌다. 민주화라는 물결이 동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요네하라는 수행 통역을 하기로 했던 러시아 주요 인사의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자 옛 친구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단서는 친구들이 이별의 메시지와 주소를 적어준 ‘추억의 노트’뿐. 그리하여 1995년 11월, 프라하 - 부쿠레슈티 - 신 베오그라드를 가로지르는 2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철의 장벽 너머 동구권 소녀들의 성장의 기록


1960~64년까지 저자가 다닌 프라하 소재 소비에트 학교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나 외교관,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가 수학하는 국제 학교였다. 소련의 영향력하에 있던 시절, 체코의 소비에트 학교라는 공간적 배경에서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리차가 본 그리스의 창공’


리차의 부모님이 조국 그리스를 뒤로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으니, 리차와 오빠인 미체스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미체스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고 리차는 한때 부모님이 몸을 숨겼던 루마니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 모두가 프라하로 이주해 왔다. 그런데도 리차는 한번도 봤을 리 없는 그리스 하늘을, “그건 말야, 정말 쨍하고 깨질 듯이 파래라며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말하면서 긴 눈썹으로 테 두른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러곤 마치 지금 그리스의 창공이 눈부시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이었다.


“단 한 점의 구름도 없는 새파란 하늘이, 또 새파란 바다에 비쳐서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거야. 파도는 방금 빨아 넌 냅킨처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정말이지 마리한테도 보여주고 싶어.”


도대체 몇 번이나 이 말을 들었을까. 그때마다 늘 잔뜩 찌푸린 회색 구름이 드리워진 프라하의 하늘 아래서, 어쩌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르는 조국을 그리는 심정을 생각하곤 했다.
- 본문 12쪽


리차는 그리스 군사정권의 탄압에서 벗어나 동유럽 곳곳을 전전하다가 체코슬로바키아로 망명한 공산주의자의 딸로,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성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한 아이였다. <레닌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계몽영화를 보면서는 “마리, 레닌은 꽤나 잘살았나봐”라고 꿰뚫어볼 정도로 냉철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리차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명문 대학인 카렐 대학에 입학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지만, 믿기 힘들 정도로 공부를 못하고 언제나 낙제의 위기를 맞던 친구였는데 그 소문을 믿을 수 있을까?


헤어질 때 적어준 주소지에도 리차의 흔적은 없다. 요네하라는 현 소비에트 학교의 교장이 일러준 그리스인 민단民團을 통해 리차의 소식을 묻기로 한다. 리차의 본명을 알게 된 곳은 카렐 대학 입학생 명단. 리차는 몇 번이나 재시험과 추가시험을 보고 두 번의 낙제를 겪으면서도 의대생으로 무사히 졸업해 독일에서 이주민들을 돌보는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


아냐 어머니가 바로 거기에 있는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니 곧 응답이 있었다. 루마니아어로 뭐라 하시더니 내게 수화기를 내미셨다.
“미르차가 직접 말하고 싶다고 하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미르차의 목소리는 인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마리, 우리 부모님이 말하는 거, 그대로 믿으면 안 돼. 부모님 없는 데서 꼭 할 말이 있어. 오늘 저녁 시간 돼?”
- 본문 137쪽


외교관이었던 아냐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공산당을 대표해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공산주의 운동 이론지)의 편집위원으로 프라하에 오게 됐다. 인도 델리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자란 아냐는 남다른 언어감각으로 소련 본국 아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러시아어를 잘했고 이야기 솜씨도 빼어난, 사랑스러운 몽상가 타입이었다. 다만 심심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흠이었다. 어린 시절의 마리로서는 일종의 병이라고밖에, 절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짓말들이었다.


성인이 된 아냐는 영국 유학중 사귄 영국 남자와 결혼해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조국 루마니아에 대한 마음이 깊어, 절대로 루마니아를 떠나지 않겠다던 아냐였지만, 이제는 자신을 90퍼센트의 영국인으로 믿는 국제인으로 성장한 것. 아니, 루마니아인이었던 과거의 모습은 버리고 최선을 다해 서구문명에 적응했다. 귀족 대접을 받으며 성장한 특권층이었음에도 루마니아인으로서의 자신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중상류층으로 지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아냐를 보며 요네하라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씁쓸함을 느낀다.



‘하얀 도시의 야스나’


“… 이 도시의 현재 이름인 베오그라드는 슬라브 민족의 일파인 세르보크로아트어로 ‘하얀 도시’라는 이름입니다만,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의외로 터키인입니다.”여기까지 단숨에 말하자 야스민카는 우리들의 반응을 확인하듯 교실 전체를 둘러보았다. 홀딱 반할 정도로 침착하다. 목소리는 결코 크지 않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또박또박하게 듣는 이의 의식 속으로 파고든다. 떨기는커녕 차분한 몸짓과 그 당당함이라니. 너무 힘주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말할 내용뿐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지까지도 계산해가며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174쪽


야스민카가 본명인 야스나는 ‘명쾌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칭 그대로였다. 모든 과목에 천재성을 보이는 총명한 친구로 유치한 장난에 초연하고 아이답지 않게 객관적이었다. 아버지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우스타시에 대항한 파르티잔 출신이었다. 야스나가 일본 중세의 호쿠사이 판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마리와 야스나는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1년간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지냈다.


야스나를 찾는 일은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구 유고슬라비아가 민족분쟁으로 분열되면서 보스니아에서는 끊임없이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요네하라는 야스나가 어느 민족인지 알지 못했다. 분란의 와중에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야스나는 무슬림이었다.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야스나였지만 이 때문에 함께 투쟁해온 친구들과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야스나의 아버지는 탈출을 거부한 채, 언제 폭격당할지 알 수 없는 사라예보의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추리소설에 버금가는 구성의 다큐멘터리


30여 년이 흐른 후, 소식이 끊긴 친구들을 찾아 격동의 동유럽을 방문한 저자의 여정은 그 자체가 미스터리나 추리소설처럼 흥미롭다.

“두려운 작품, 스피드 있게 한순간에 인간 데생을 하면서도, 행간에서 인물들의 영혼까지 느끼게 해준다. 질투를 일으킬 만큼 대단한 표현력이다.”
-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심사평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사건 혹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긴밀한 구성, 소설에 버금가는 풍부한 표현력과 반어법의 사용 등을 통해 저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의 친구들뿐 아니라 친구들의 가족, 부모님 세대의 역사까지 폭넓게 언급함으로써 리차, 아냐, 야스나의 이야기는 더이상 개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게 된다.


“개인사나 현대사를 기록한 책들은 존재한다. 이 두 가지를 훌륭하게 접목한 책이 드물 뿐이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보기 드물게 아주 우수한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 문예평론가 사이토 미나코(『취미는 독서』의 저자)


이들의 운명 배후에는 1968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탄압으로 짓밟힌 ‘프라하의 봄’,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선언이 발단이 된 유고 다민족 전쟁이 있다. 역사와 민족이라는 화두,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화법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지만 심연을 울리는 파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가 개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상당히 날카롭다. 저자는 “소비에트 학교 아이들은 모두 자국에 대한 애정과 동경을 가지고 있는데, 빈곤과 혼란 상태에 빠진 나라의 아이들일수록 애국심이 강했다”고 평하고 있다. 기쁨에 들떠 귀국했지만 동란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 조국에 실망해 다시 외국으로 떠난 아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당면 과제 속에서 열심히 발버둥치는 모습은 20세기 후반 동유럽의 격동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편 사회주의를 들여다보는 일은 현재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민주주의에 대한 재해석을 낳기도 한다.


소비에트 학교 선생님들은 제자의 재능을 발견하면 과장될 정도로 법석을 피우는 버릇이 있다. 너무 좋아서 그 기쁨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동료와 반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음악 담당 이바노브나 선생님과 일리치 선생님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도 당장에 이 기쁨이 전염되어 그런 재능 있는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으로부터 행복해하곤 했다.


다른 이의 재능에 이렇게 사리사욕 없이 축복해주는 넓은 마음, 사람 좋은 성향은 러시아인 특유의 국민성이 아닐까 하고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4반세기나 지나서다. 러시아어 통역으로 많은 망명 음악가와 무용가를 접했는데 그들은 내게 이런 얘기로 망향의 한을 풀어놓았다. “서구로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이것만큼은 러시아가 뛰어났다고 절실하게 느낀 게 있어요. 그건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죠. 서구에선 재능이 자기 개인에 속하는 것이지만, 러시아에선 모든 이의 재산이랍니다. 그러니 이곳에선 재능 있는 자를 시기해서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까 안달이죠. 러시아에선 재능 있는 자는 무조건 사랑받고 모두가 받쳐주는데…….”
- 본문 179~180쪽


이념적 우위를 벗어던진 따뜻한 시선은 이데올로기라는 껍질을 벗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응시한 결과이다. 애정과 객관성의 줄다리기는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주제의식을 유머와 희망으로 껴안으며 설득력을 더한다.


파랑, 하양, 빨강. 그러고 보니 이는 자유, 평등, 박애의 색깔이 아닌가. 이것이 인류의 지고한 표어가 되기까지, 또 인류가 이를 지향하게 된 이후에도 수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인간은 언제쯤이나 사고방식 하나로 서로를 죽이려는 것을 그만두려는지 많이 걱정스럽다.
-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