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공간
마음산책 도서
저자: 루이나이웨이 역자: 전수정 |
발행일: 2003-01-05 |
우리 집은 어디인가 1
세계 최강 9단 커플, 장과 루이의 인생극장!
2002년 12월 28일, 세계바둑계에는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다. <맥심배 9단전> 결승전에서 ‘부부가 맞대결’을 펼치는 초유의 사건이 펼쳐진 것이다. (맥심배는 3번기 진행으로, 2국은 2003년 1월 중순경, 3국은 2003년 2월 중순경에 있다.) 이 화제의 주인공들은 바로 세계 최강 바둑커풀인 ‘반상의 철녀’ 루이나이웨이 9단과 남편 장주주 9단.
루이나이웨이는 2000년에 이미 한 차례 한국 바둑계를 뒤흔들어놓은 바 있다. 제43회 국수전에서 이창호와 조훈현을 꺾고 ‘외국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수의 자리에 오른 사건이다. 이때의 사건을 사람들은 ‘밀레니엄 센세이션’이라 불렀다. 그리고 2년 후 이번에는 세계 최초의 부부 대국으로 다시 한번 바둑계를 진동시키려는 것이다.
누가 더 강하냐는 질문에 항상 서로를 가리키면서도, 시합에서는 절대 봐주는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이들 커플의 격돌을 놓고 바둑팬들과 관계자들은 시합 전부터 각자 우승자를 점치며 큰 기대와 관심으로 시합을 주시하고 있다.
세인들의 장주주와 루이나이웨이에 대한 관심은 그 바둑인생의 굴곡에도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국가대표로 활동하던 두 명의 바둑기사가 돌연 중국을 떠나 여자기사는 일본으로, 남자기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바둑집시’로 떠돌다 1999년 한국에 정착했다’는 이 대강의 스토리만으로도 단박에 몇 개의 궁금증이 유발된다.
‘중국의 바둑기사가 무슨 연유로 또 어떤 경로로 현재 한국기원의 정식기사로 활동하고 있는가?’ ‘이들은 왜 중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을 떠돌아야 했을까?’ ‘이들에게 바둑은 과연 무엇인가?’
장주주와 루이나이웨이의 자전적 기록,『우리 집은 어디인가』는 이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며, 바둑을 향해 난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의 화두 ‘우리 집은 어디인가’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장과 루이의 삶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바둑에는 복기가 있다. 이때 바둑기사는 자신이 둔 바둑을 다시 두면서 대국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바둑집시’에서 한국의 정식기사가 되기까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 『우리 집은 어디인가』는 루이나이웨이와 장주주에게 있어 복기에 해당된다. 바둑은 물론이고 인생 자체에 대한 복기인 것이다. 바둑과 그들의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그들의 굴곡 많은 뜨거운 바둑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 굽이굽이에 감춰진 삶의 진실들과 서늘하게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한 가지 일에 인생을 건다는 것의 의미, 오로지 한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곡진함과 만나는 순간 우리의 인생 또한 다시 한번 복기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바둑을 통해 수행하듯 많은 것을 버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취하는 그들의 경건하고 겸손한 삶의 모습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사는 우리들, 온갖 욕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집은 어디인가』1·2권이 출간되기까지
루이나이웨이를 처음 만난 건 2002년 3월 9일. 한 대형서점의 웹진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다. “바둑에 매달리고 바둑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바둑과 저는 하나예요. 딴 거 생각 안합니다. 해본 적이 없어요”라는 식으로 시종 소박하고 어눌하면서도 명료하게 대답하는 진정성에 끌려 그녀의 인생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됐다. 30대 여성이 조국에서 쫓겨나다시피 일본과 미국을 떠돌다 한국에 정착한 점, 2000년에 그 유명한 이창호와 조훈현을 누르고 국수에 오른 점, 그리고 세계 유일의 부부 9단이라는 점 등이 책 출간 욕망을 부추겼다.
기획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녀로부터 책 한 권을 건네받았다. 중국에서 1년여 전에 출간된 『천애기객天涯棋客』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루이나이웨이와 장주주가 공동으로 쓴 자적적인 기록이었다. 이 책에서 루이나이웨이가 쓴 부분을 간추려 재구성하고 추가로 원고를 청탁하기로 했다.
그러나 번역 후에 우리는 장주주의 흥미로운 바둑인생에 빨려들어갔고, 애초에 루이나이웨이 한 사람에 맞춰져 있던 출간 계획에 전면적인 수정을 했다.
1종 2권의 책으로 나누고 1권은 루이나이웨이가 저자가 되고, 2권은 장주주가 저자가 되는 구성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4부로 구성된 1권에는 루이나이웨이의 최근 한국생활, 중국에서의 바둑입문 과정과 선수생활, 일본에서의 유학생활, 결혼 후 미국생활과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수록되었고, 3부로 구성된 2권에는 장주주의 중국에서의 바둑입문 과정과 선수생활, 미국에서의 바둑보급 활동, 루이나이웨이와 함께한 한국생활이 수록되었다.
『우리 집은 어디인가』1권
― 외유내강의 바둑전사 루이나이웨이 9단의 바둑인생
현재 한국에서는 공격적인 바둑이 한창 유행이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바둑판 위에서 의 치열한 싸움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여기에는 싸움바둑으로 유명한 조훈현, 이세돌과 함께 루이나이웨이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을 통틀어 루이나이웨이에 대적할 여자기사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웬만한 남자기사들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2000년 국수전에서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에게 이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여자로서 9단에 오른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남자기사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루이나이웨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낸 최초의 여자 바둑기사다.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수 있을까? 답은 바로 바둑에 대한 열정에 있었다.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다. 조국인 중국에서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바둑을 둘 수 없게 되자 미련없이 일본으로 떠났고, 일본에서도 바둑을 둘 수 없게 되자 바둑을 둘 수 있는 곳을 찾아 10년 동안 떠돌면서도 한번도 바둑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은 강인함 속에는 바둑에 대한 열정이 항상 절절 끓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은 바로 그녀 자신이 살아갈 힘을 길어올리는 곳이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집은 어디인가』 1권에는 상하이에서 일본, 미국을 거쳐 서울까지 이어진 루이나이웨이의 바둑인생이 담겨 있다.
1963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루이나이웨이는 문화혁명 당시 자식의 장래를 걱정한 부모님의 권유로 1973년에 처음 바둑을 시작했다.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도시에 남을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1974년 찡안취 체육클럽의 바둑훈련반을 거쳐 1977년에 소년체육학교에 들어간 루이는 고도의 집중력, 인내, 복잡오묘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선명한 승부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바둑의 매력에 빠져들어갔다. 소극적인 성격으로 늘 열등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바둑 속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발견했다. 당시 대학입시가 부활되어 대학입시가 부활됨에 따라 잠시 갈등했지만 1978년 상하이시 대표팀에 들어감으로써 프로바둑기사로의 길을 걷기로 결심을 굳혔다. 1980년에 드디어 국가대표팀에 들어간 루이는 중국 바둑계의 고수들과 함께 여러 시합들을 거치며 실력을 쌓아갔다.
여전히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3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훈련지에서 돌아오는 등 종종 엉뚱하고 대범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중국 바둑대회 개인전에서 4년 동안 게속해서 2등에만 머물게 되자 한 차례의 슬럼프가 찾아왔지만 노력으로 극복한 루이나이웨이는 1986년에 열린 제2회 중일 슈퍼대항전 결승에서 일본의 남자기사인 이마무라를 맞아 특유의 힘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바둑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듬해인 1987년 중일대항전은 그녀 스스로도 ‘싼샤(三峽)에서의 좌초’라고 말할 만큼 그녀의 바둑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다. 대회 진행 중에 규율을 어기고 일본 남자기사의 방에서 연습바둑을 둔 일로 지도부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게 된다. 여자기사로서의 명예는 물론 시합 출전의 기회마저 차단당하자 대표팀을 떠날 것을 고려하게 된다. 규율 자체를 어기긴 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었고 단지 바둑을 둔 것뿐인데, 이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부당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더이상 중국에서 바둑을 두기 어렵다고 생각하자 대표팀을 떠나기로 결심한 루이는 마지막 승단시합에서 9단으로 승단함으로써 승단에 마침표를 찍는다. 장주주와의 사랑을 뒤로하고 상하이로 돌아온 루이는 일본유학을 추진한 끝에 1990년 일본으로 떠난다. 장주주도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일본에서라면 바둑을 마음껏 둘 수 있을 거라는 루이의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 루이의 뛰어난 바둑실력 알고 있는 일본 바둑계는 만약 루이를 받아들인다면 루이의 독식으로 일본 여자바둑계가 퇴보할 것을 염려했고, 또 중국기원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루이는 정식시합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소망이라면 단지 바둑을 두는 것과 주주와 함께 있고 싶다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닌데 왜 이룰 수 없는지 절망적인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바둑의 기성(棋聖)이라 불리는 우칭위안(吳淸源) 선생의 관문제자가 되어 바둑을 배우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한 루이는 1993년 장주주와 결혼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 잉창치배 대회 기간 중에 잠시 만나 선포하듯 식을 올린 이들의 결혼은 마치 ‘비정한 출정식’ 같았다고 전해진다.
여전히 바둑에의 길이 열리지 않자 이들은 미국행을 선택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이들 부부는 바둑에 대한 갈망으로 바둑을 둘 수 있는 ‘우리 집’을 찾아헤맨다. 그들의 이름 앞에는 ‘바둑집시’가 항상 붙어다녔다. 다행히 한국의 차민수 기사의 도움과 한국기원의 과감한 결단으로 마침내 10년간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1999년 4월 한국의 객원기사로 첫 발을 내디딘 장과 루이는 현재 집과 기원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며 한국에서의 새로운 바둑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오로지 바둑을 둘 수 있는 ‘우리 집’을 찾아 떠돌았던 지난한 여정이 담겨 있는 이 책에는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강인하고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