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레시피, 이야기를 먹는다
코즈모폴리탄 ‘셰프의 딸’이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한국 생활 십구 년 차,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하며 각종 매체에 다양한 음식 ․ 생활 문화를 소개해온 나카가와 히데코. 그가 선현경 작가와 함께 요리 교실 사람들 이야기를 펴냈다. 전작 『셰프의 딸』에서 자신의 이력을 소개한 그는 신작 『맛보다 이야기』에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음식 경험을 풀어낸다. 어린 시절,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생활하며 이국의 음식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찾아낸 그는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동독과 서독, 스페인, 한국에서 보내며 요리와 음식이 이어주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매료되었다. 연희동 작은 단독주택에 정착해 요리 교실을 운영하면서, 음식이 단순히 ‘먹을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문화’임을 깊이 깨달았다. 그의 요리 교실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만들기, 식사하기, 정리하기까지 식사와 관련한 모든 과정을 학생들과 함께한다. 한편, 요리 교실 학생으로 “요리를 배운 뒤부터는 두려움이 없어졌다”라며 요리 교실의 수제자임을 자부하는 선현경은 남편 이우일과 딸 은서의 에피소드까지 간간이 소개하며 이야기에 맛을 더한다. 이삼십 대 여성부터 사십 대 중년 남성, 오십 대 주부까지, 직장인부터 학원 원장, 북 디자이너, 소설가, 빵집 사장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맛있는 식탁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혼자 먹는 밥도 맛있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파티를 즐기는 것과 같다. 요리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문화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 한마디와 함께한다.
“먼저, 건배!” 
— 78쪽에서


 

 

맛으로 통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같은 음식,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

 

연희동 골목 구석에 위치한 구르메 레브쿠헨에는 각지에서 요리를 배우겠다며 사람들이 모여 든다.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는 궁금한 마음에 묻는다. “요리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것도 아닌데, 서울에서도 이렇게 교통이 불편한 요리 교실까지 왜 오는 거예요?” 그 대답의 공통점은 요리를 특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온다는 것. 삼십 대 비혼 여성들로 이루어진 수업에서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깔깔거린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활기 넘치는 대화가 저녁 시간 내내 이어진다. 칼질부터 서툴러 쭈뼛대는 사십 대 중년 아저씨들이 참석한 요리 교실은 순식간에 요리 ‘주점’으로 탈바꿈한다. 일본식 이자카야를 구현해야겠다고 기어이 고집하는 이들을 보며 저자는 애써 위안해본다.

 

집에서도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이렇게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는 요리 교실에 다닐 정도이니 집에 돌아가서도 주방에서 솜씨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 201쪽에서

 

오십 대 주부들이 많은 반에서는 선생님보다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수업 사이사이 시댁 식구 이야기나 남편, 자식 이야기로 한숨을 내쉬어보는 이들, 봄나물 하나 무칠 때도 나물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양념이 달라진다고 서로 노하우를 주고받는다. 요리 교실에서는 누구든 개성 있는 요리사가 되어 솜씨를 내보인다. 감사 표시로 보낸 레몬 파운드케이크에 반해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학원 원장 선생님, 대를 이어 동네 빵집을 운영하며 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수업을 듣는 사장님, 뉴욕에서 맛난 음식은 맛볼 만큼 보았다고 자부하는 까칠한 사진작가, 시간을 쪼개 모여 소설 쓰듯 레시피를 정갈하게 정리하며 저녁 식사를 만드는 소설가들, 요리하는 것에서 자신의 직업과의 공통점을 찾는 북 디자이너,……. 언뜻 요리와 무관해 보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공통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나카가와 히데코의 레시피를 자기 식대로 소화하며 자신의 삶으로 만든다. 같은 음식이라도 날마다 다른 식탁이다.

 

‘더는 먹기 싫어.’ 요리 교실에서 계속 만드는 파에야 같은 메뉴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질린 적은 없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에 따라, 식탁을 둘러싸고 나누는 대화 내용에 따라 같은 요리라도 맛이 달라진다. 
— 31쪽에서


 

 

지루한 생활에 일화는 없다
요리로 만드는 생활 감각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나카가와 히데코는 어려서부터 식食이 곧 문화임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 “감각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길러지는 것”이다. 그가 요리 교실을 통해 학생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도 “요리에 필요한 감각이 자연스레 몸에” 배는 경험이다.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감각은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잡지 등의 매체에서 가사 일에 완벽한 여성들을 소개하며, 자기 일로 바쁜 사람들이 퇴근 후에도 솥에 밥을 안치고 손바느질로 앞치마를 만들고 제철 과일이 나오면 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심는 요즘의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굳이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은 일들”을 눈 딱 감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요리를 생활로 받아들이려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활은 고지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구르메 레브쿠헨에 오는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도 음식 만들기, 먹기, 정리하기 등 일련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유기농 재료를 마련하는 데 급급해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신선한 재료를 쓴다는 기본적인 원칙만 지키면 된다. 저자가 중요시하는 것은 음식을 정확히 조리하는 과정보다 조리를 하며 느끼는 설렘, 맛있는 음식을 맛볼 때 느끼는 놀라움, 이 설렘과 놀라움을 나눌 수 있는 즐거운 대화다. 구르메 레브쿠헨 학생들의 식탁에는 열무 된장국 대신 루콜라 된장국이, 루콜라 피자 대신 열무 잎 피자가 올라온다.
요리의 생활화를 꿈꾸는 저자의 모습은 어찌 보면 프로답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이제 ‘세미프로 요리사’가 되었다고 인정해주신다. 그는 다른 이들과 식생활을 즐기는 요리인으로서의 모습이 자신의 천직이었으면, 당당히 프로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겸손하게 고백한다.

 

‘세미프로’라도 요리인은 요리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리를 요리로 엮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 9쪽에서

 

확실히 요리의 세계에서 ‘죽기 살기로’ 노력하고 있지는 않다. (…) 지금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진정한 요리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살고 있고, 죽기 전 꼭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나는 요리가 천직이에요. 아마추어도 세미프로도 아닌 프로니까요.”
그렇다. 인생은 길다. 
— 278쪽에서

 


 

 추천사

 

어느 날 아내가 알려주었다. “일본 아줌마가 요리를 가르쳐주고 만든 요리와 함께 술까지 마신대!” 나는 군침이 확 돌아 주변 아저씨들을 꼬셔서 히데코 선생님의 요리 교실에 참가했다. 규동에서부터 파에야까지, 히데코 선생님은 부엌을 날아다니며 이 느려터진 아저씨들을 친절하게 인도했다. 요리를 하는 중간중간 몰래 훔쳐도 먹고 냉장고도 뒤지며 장난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게다가 완성된 요리와 함께 준비해간 술을 진!짜!로! 마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흐뭇할 수가! (나중에 술이 모자라 선생님 남편께서 아끼는 술까지 마셔버린 것은 좀 미안하긴 했지만. 헤헤.) 덕분에 이제 나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즐겁다.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있노라면 꼭 내 마음을 떼어준 것 같으니까.
현태준 만화가. 뽈랄라싸롱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