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은 같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학문과 몸가짐, 인간의 도리에 대해 가르쳤다. 직접 불러 앉혀놓고 가르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편지 한 통 한 통마다에 곡진히 담았던 것이다. 편지로나마 자식을 위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 속 깊은 염려와 애정, 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보는 간곡함은 김용택 시인의 편지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은 2002년 봄에서 2005년 초까지 대안학교인 '한빛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들 민세에게 보낸 50통의 편지를 엮은 책이다. 책 읽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아들에게 한 편의 에세이를 보내듯 쓴 편지들이다. 처음에는 책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일이 극히 사사로울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출판을 결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4년에 걸쳐 꾸준히 쓴 편지들은 2년 만의 신작 에세이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의 걱정과 근심과 고민과 고통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김용택 시인은 명쾌한 진단을 내린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일류대학에 가기를 하나같이 소망한다. 모두 일등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모두 다 일등을 할 수는 없고, 모두 일류 대학을 갈 수는 없다."('책머리에' 중에서) 문제는 모두가 '일등'과 '일류'를 지향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올해 대학 신입생들을 위한 강연에서 '베스트 원이 아닌 온리 원이 되기를 소망하라'며 일류주의에 일침을 놓은 이어령 선생의 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공교육과 사교육, 제도교육과 대안교육 사이에서 끊임없이 휘둘리며 초조해하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김용택 시인은 진정한 '교육'과 '성장'의 의미를 묻는다. '행복이 무엇이고, 진정한 공부가 무엇이며, 삶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 (100p)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이 편지들은 민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부모와 아들딸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아들의 마음은 다르다


김용택 시인의 아들 민세는 여느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수업과 수능 시험,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는 소위 '정규 코스'를 밟지 않은 것이다. 지금 민세는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시인은 아들이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만 자라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김용택 시인은 결국 아들에게 제 갈 길을 가게 했고, 그 이면에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소박하지만 확고한 교육관이 자리하고 있다.


민세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의 지친 모습을 본 시인은 "오직 공부뿐인 이 답답한 세상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야 한다"고 단호히 결심했다. 그후 강연차 방문했던 한빛고등학교에서 너무나도 생기 있고 거침없이 학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한 여학생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시인을 사로잡은 말은 '존경'이었다. '이 학교 선생님들을 존경한다'는 말에 사람을 중시하는 학교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고 민세를 위한 학교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한빛고등학교에 진학한 민세는 입시만이 아닌 '인간공부'와 '세상공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친구집에서 지냈고, 학기중이나 방학 틈틈이 국토순례를 떠났다. 그러나 민세가 고등학교 2학년 되던 해, 재단과 마찰이 생겨 학교는 휴교를 했고, 아이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했다.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복잡하다. "교실이 아닌 너희가 길거리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 시위를 할 때 나는 괴로웠단다. 교실이 아닌,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너희의 모습이 내 눈에는 눈물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공부라는 게 꼭 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있어야 할 곳은 거리가 아니라 학교라는 것을 나는 믿는 사람이다." (116p) 한빛고 사태는 다행히도 일단락되었지만, 교육이념이 재정에 좌지우지되는 우리 교육 현실을 잘 드러내 보여준 사건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아들딸들에게 전하는 김용택 시인의 메시지


"잔소리를 안하면 어쩐지 껄적지근하고, 잔소리를 하고 나면 또 괜히 그런 소리를 했구나 하고 후회한다." (125p) 이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을 택하기도 한다. "편지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네 생각을 안한 건 아니다. 너를 생각할 때마다 뭔지 모르게 다급해지고, 너에게 무엇인가를 늘 강요하는 것 같아 편지를 끊었던 것이다." (136p)


시인의 편지에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시시콜콜한 잔소리가 담겨 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머리 색깔이 바뀐 것에 대해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132p)며 꾸짖기도 하고, "몸은 바로 되었는데, 어깨를 움츠리니 고개가 쏙 들어간 자라처럼 보인다"(144p)며 자세에 대한 주의를 주기도 한다. 한편, 윗옷을 벗고 자는 습관 때문에 감기를 달고 사는 아들에게 "잠잘 때 꼭 속옷 입고 자거라" (172P)는 세심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편지에는 "너는 그 고향의 시정 넘치는 정경과 서정을 잊지 말고 가슴에 늘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129p)라는 당부와 함께 아름다운 섬진강변의 풍경도 자주 담긴다. 「할머니는 자연이다」,「감나무에서 삶을 보다」와 같은 편지글에는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는 시인의 감성이 듬뿍 배어 있다. 이처럼 '고향'과 '자연'을 강조하는 까닭은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공부만큼 훌륭한 공부도 없다. 자연은 외우고, 셈하고, 푸는 대상이 아니다. 몸과 마음으로 그 이치와 철리를 익히면 되는 것이다" (99p)라는 시인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버지가 시인인 탓에 '일기를 쓰라', '시를 읽으라'는 조언도 자주 등장한다. "다시 말하지만 일기는 꼭 쓰도록 해라. 하루의 일을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정리하다 보면, 사물을 보는 눈이 떠지고,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65p), "한 달에 한 권이라도 꼭 시집을 읽기 바란다. 시는 삶의 핵심에서 건져올리는 가장 정화된 언어이기 때문에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들의 삶이 그 속에 다 담겨 있다" (140p)고 당부한다.


민세가 미국으로 떠난 뒤에 쓴 편지 「아들에게 주는 책」에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되 한국의 정신과 예술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다. 타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시인은 어떤 책을 챙겨주었을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계사 편력』 『서양미술사』와 같은 책들에는 '세계를 훨훨 날며 살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담겼다. 그리고 『한국사신론』 『한국문학단편선』 『새 근원수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와 같은 책들에는 '세계와 맞먹는 힘을 지닌' 고향과 고국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는 뜻이 담겼다. 하루하루를 밀도 있게 보내라는 뜻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도 빼놓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아들딸들이 참고할 내용이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