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스테이크』재출간, 끈질긴 책의 생명력


에프라임 키숀 『개를 위한 스테이크』가 재출간됐다. 2001년 국내 출간과 더불어 저자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더욱 크게 받았던 이 책은, 2005년 작가의 사망과 더불어 책 또한 절판되는 운명을 겪었으나 <마음산책>의 재출간을 통해 다시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2006년, <마음산책>에서 재출간하는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최경은 교수가 다시 번역을 맡아 오역을 바로잡았으며, 페이소스 짙은 유머를 섬세하게 전달하기 위해 문체 또한 담백하게 손질했다. 프리드리히 콜사트의 삽화 또한 컬러링 작업 없이 원화에 가깝게 실어, 텍스트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1965년 삼중당 문고로 발간되었다가 30년 만에 재출간된 존 스타인벡의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이나, 1987년 초판 발행 이후, 네 번에 걸쳐 재출간된 『미국의 송어낚시』 등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진가를 지닌 책들은 ‘절판’이라는 곡절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그 생명력을 이어나간다. 독자들은 한 권의 책이 세월을 두고 여러 출판사에서 재발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책의 운명’과 더불어 ‘유통 상품으로서의 책’의 성격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웃다 보면 인생을 음미하게 되고, 인생을 음미하다 보면 웃게 된다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잘나신’ 아내, 어리숙한 장남 라피, 고집불통 둘째아들 아미르, 말괄량이 막내딸 레나나와 말썽 많은 식구들 뒷바라지에 말 안 듣는 개까지 수습해야 하는 가장인 ‘나’가 만들어내는 요절복통 ‘홈드라마’다.


밤늦도록 잠을 자지 않아 애를 먹이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들, 극장에서 끊임없이 종알거리며 질문을 해대는 딸, 잔소리 심하고 심부름 시키기 좋아하는 아내……. 익숙하기에 더욱 풀기 어려운 가족의 일상다반사를 『개를 위한 스테이크』의 가장인 ‘나’는 어떻게 풀어나갈까? ‘나’는 때로는 한계에 가까운 인내심으로, 때로는 날렵한 기지로, 또 때로는 근엄한 가장도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아슬아슬한 위기를 헤쳐나간다.


이 책에 실린 서른아홉 편의 짧은 소설들은 에프라임 키숀이 실제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해서 쓴 것이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헝가리, 구소련 등지의 강제 수용소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어두웠던 작가의 이력은 따끔한 풍자와 유쾌한 웃음을 통해 그늘 없이 승화되었다. 에프라임 키숀은 ‘웃음과 지혜의 민족’이라 불리며, <탈무드>를 유산으로 갖고 있는 유대인의 후손답게, 유머의 카타르시스와 삶의 지혜를 재치 있게 접목해냈다.



개를 위한 스테이크? 사실은… 우리 가족을 위한 스테이크


매주 토요일, 단골 레스토랑은 늘 그들 식구 앞에 거대한 스테이크를 내놓는다. 이 맛있는 스테이크를 다 먹을 수는 없고, 남기기는 아까운데, 품위를 지키면서 싸갈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그렇게 해서 떠올린 묘안은 만만한 개를 핑계대는 것. “남은 음식을 싸주실 수 있나요? 우리 개한테 주려고요.” 그 결과, 웨이터가 가지고 나온 것은 거대한 뼈와 간, 내장이 함께 든 스테이크 찌꺼기. 그 다음 주에는 “우리 집 개를 위해 남아 있는 스테이크를 포장해주시겠어요? 하지만 다른 건 넣지 마십시오” 라고 다시 시도해보지만, 이번에는 신문지로 덕지덕지 포장한 스테이크가 돌아온다.


우여곡절 끝에 비닐봉지에 스테이크를 싸가는 데 성공하지만, 식구들은 이제 스테이크를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하게 되고, 사정을 알 리 없는 웨이터는 잊지 않고 매주 ‘개를 위한 스테이크’를 포장해준다. 이제 ‘스테이크 찌꺼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가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른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이상 그 레스토랑에 가지 않는 것. 이와 같은 의외의 반전은 당겼다 놓은 고무줄의 탄성처럼 순간적인 놀라움과 상쾌한 뒷맛을 선사한다.



『개를 위한 스테이크』에 등장하는 가족 소개


나 - 바깥에선 성공한 작가지만, 집에서는 만만한 남편이자 세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는 고달픈 아빠. ‘잘나신’ 아내의 요구에 따라 「족보 있는 개를 찾아서」머나먼 여정에 나서지만, 결국 「아무도 길들일 수 없는 개」를 주워서 돌아온다. 개를 훈련시키는 일에도 전혀 소질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잘나신 아내 - 동물 애호가. 때로는 길에서 주워온 새끼 고양이나, 집 안에 들어온 생쥐를 남편보다 우선시하기도 한다. 「계란 반숙은 이제 그만」에서는 집을 수리하다가 아예 집을 부숴버리고 마는 과단성을, 「퍼즐이 된 거대한 그림」「빨래 말리기 소동」에서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뛰어난 순발력을 보여준다.

장남 라피 - 의젓한 척하지만, 집안 문제에 별 도움이 안되는 장남. 「개를 위한 스테이크」 「남자친구가 필요해」에서 어이없는 아이디어로 분위기만 썰렁하게 만든다. 「봉지 속의 라피」에서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상품으로 오인되어 포장될 만큼 대책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 아들 아미르 - 아무도 못말리는 고집쟁이. 『개를 위한 스테이크』의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있지도 않은 「가로 줄무늬 추잉검」을 내놓으라고 떼쓰고,「유치원에 가기 싫은 이유」도 없으면서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때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게 맞나요?” 같은 고차원적 질문을 던져서 아빠를 좌절에 빠뜨리기도 한다.

막내딸 레나나 - 이 다음에 커서 극장에서 ‘줄넘기’를 공연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다. 난생 처음 연극을 보게 된 날,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서 관객들의 눈총을 한몸에 받는다. 「엄마 좀 바꿔줘」에서는 국제 전화인 것도 상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못 말리는 수다쟁이.

프란치 - 집안 아무 곳에다 용변 보는 습관을 끝내 고치지 못했지만, 가족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행복한 개. 「개를 위한 스테이크」에서 그릴로 구운 스테이크 외에는 아무것도 먹으려 들지 않는 식성 까다로운 개로 소개된다. 실제로는? 스테이크만 빼고 뭐든 잘 먹는다.



화사한 유머의 빛으로 흑백의 일상이 깨어난다


뒤죽박죽 우리의 일상, 실은 이렇게 우스웠나. 예측불허의 사건 사고로 머리끝까지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 에프라임 키숀을 읽어 보라. 앙다물었던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지다 이내 책장에 코를 파묻고 키득거리게 된다. 어쩌면 벌써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자신에게 일어났던 황당한 일들을 키숀의 말투로 들려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만고만한 하루가 기막힌 이야깃거리가 되고, 평범한 가족이 불후의 캐릭터가 된다. 에프라임 키숀은 흑백의 일상에 화사한 유머의 빛을 뿌리는 진정 사랑스러운 이야기꾼이다.

- 이적 (뮤지션,『지문사냥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