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지 않은 부부는 없다”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모든 부부들에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가 한국이다. 지난 5월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부부의 자화상’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중년부부(결혼생활 20년 이상)의 이혼율이 27.3%로, 4년차 이하 신혼부부(25%)를 앞섰다. 이렇게 앞선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최근 ‘이혼 극복 솔루션’을 내건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연예인 부부의 일상을 다룬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어느 때보다 ‘부부로 잘 사는 법’에 대한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용택 시인은 전업주부인 아내와 올해로 26년차 부부다. 그는 2008년, 38년간 몸담은 교사직에서 퇴임한 이후 숱한 강연을 해왔다. 특히 학부모와 교사, 주부 들을 대상으로 할 때면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은 이들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들 중 83통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부부는 실낱같은 외줄을 타며 생의 끝까지 가서 바닥을 치고 살아 돌아온, 인생의 승리자들”이라고, “벼랑의 끝을 오가”면서도 “다시 일어나 생살을 채우며 일상을 회복”하기에, “위대하지 않은 부부는 없다”라고 말이다.
  미국에 유학 간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떠나 있는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그것은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건너온 부부의 속 깊은 대화다. 떨어져 있으면서 느끼는 서로의 소중함, 자녀 교육과 노부모에 대한 생각 등, 중년 부부라면 공감할 이야기들이다. 그 속에서 이 시대 부부와 가정이 나아갈 길에 실마리를 얻을 것이다.


 

“선생님, 저랑 같이 살면 안 돼요?”
부부의 역사, 자녀 교육에서 고부간 사연까지

 

  김용택‧이은영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의 동생 친구였던 이은영이 문상을 갔다가 처음 만났다. 단지 “안녕하세요” 한마디 나눴을 뿐인데 그를 잊을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그의 시골집을 다시 찾았고, 그 인연이 오늘에 이르렀다. 부부의 편지에 그 시절 추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당신의 일생을 걸, 산 아래 강을 향해 앉은 집으로 당신은 왔지요. 낯선 강이요, 낯선 사람들이었지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그 땅이 당신의 땅이 될 줄을 그때 어찌 알았을까요. 모를 게 인생이지요.
―129쪽, 「그 세월」에서

 

햇살이 맑던 겨울 어느 날 당신을 찾아갔지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완행버스를 타고 갔지요. (…) 너무 말라서 볼이 움푹 팬, 담배를 많이 피워 입술이 파랗던, (…) 당신을 찾아갔지요. (…)
“선생님, 저랑 같이 살면 안 돼요?” “너랑 나랑?” “네.” “은영아, 제정신이냐? 내가 나이가 몇인 줄 알아?” “네, 서른여덟요.” “너는?” “스물넷요.” “정신 차려라. 부모님을 생각해야지. 동생들 생각도 하고. 밤이 깊었다. 가서 어머니하고 자고 내일 가거라.”
그래도, 당신이 말은 그렇게 해도 약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131~132쪽, 「그랬지요」에서

 

  가난한 시인의 집, “이불보를 빨아 널면 하늘이 다 가려지는 작고 작은 마을”에서 살림을 시작했지만 아내는 “세상과 우주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인 남편이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 이젠 서로가 “오래된” 사람인데도, 몇 달간 떨어져 편지를 쓰게 되면서 그리운 마음이 생긴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해한다. 늘 곁에 있어 서로의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그걸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고백한다.
  이 책의 편지들은 자녀에 대한 염려와 기대도 오롯이 담고 있다. 군 입대하는 아들 민세에 대한 애틋함, 일상을 함께하면서 발견하는 믿음직함이 엿보이는가 하면, 미국에서 힘겹게 공부해 대학에 들어간 딸 민해에 대한 마음, 그 속의 갈등과 화해 과정까지 세세하게 그려진다. 아내는 이제 엄마의 잘못도 거침없이 지적하는 아들딸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면 부모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면서 그건 “생각하면 목이 메는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한편, 글을 쓰고 읽는 부모의 영향으로 가족 모두가 책을 가까이하며 사회 문제와 가치관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은 학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녀 문제만큼이나 부모와의 관계도 솔직히 보여준다. 평생을 농사짓고 살아온 어머니(시어머니)와의 사연, 그 속내가 마음을 울린다.

 

끝도 없는 사이가 고부간입니다. 특히 큰며느리하고는 더 그렇습니다. (…) 나도 나이를 먹고 아이들이 또 저렇게 자라고 보니 어머니 마음이 다 보였습니다. (…) 때로 속이 상하기도 하고, 가끔씩 질투가 나기도 하고, 나는 뭔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은 잠깐이었습니다. (…) 처음에는 당신이 어려워서, 또 사람으로서 양심에 가책이 돼서 어머니 말씀을 잘 들은 적도 있습니다. (…) 진짜 어머니가 미웠었는데, (…) 편지를 쓰다 보니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민세 에미야,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왜 없겄냐. 그래도 나는 니가 있으니까 됐다.” 나도 그렇습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다 늙으신 어머니가 우리 곁에 있어서, (…) 나도 됐습니다. 우리도 저렇게 늙어갈 것이고, (…) 그렇게 늙어가야 한다는 것을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찌 알겠어요.
―159~163쪽, 「살면서 무릎이 꺾일 때」에서

 

 

“당신은 나를 가장 많이 바꿔놓은 사람”
끊임없는 소통으로 삶이라는 시를 쓰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하지만 그의 삶이 자연처럼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다. 가난했던 젊은 날, 시골 작은 골방에서 창호지 문으로 새어 든 달빛 아래 책을 읽고 시를 썼다. “외로움이 깊었”으며 “생각은 끝이 없고 잠은 오지 않았”던 청춘을 보냈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이룬 뿌리라 믿고 있다. 결혼 뒤에도 가난함은 오래 이어졌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살았던 탓에 지금도 빚이라면 펄쩍 뛴다는 것을 아내만은 알고 있다. 1995년 무렵, 밀린 외상 책값을 다 갚던 날 부부가 끌어안고 만세를 부르던 기억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처럼 아내도 그를 ‘성공한 사람’이라 인정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거나 유명한 시인이기만 했다면 그 성공은 무의미했을 거라고 말한다. 김용택은 평소 아내에게 “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 말해왔다는 걸, 아내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일상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시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공허한 외침이었다면, 나는 당신이 부끄러웠을 겁니다.” 그리고 강조한다. “당신은 당신의 시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당신이 성공한 이유입니다.”
  이들 부부의 편지에는 소소한 일상과 거기서 뻗어 나온 생각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계절과 자연의 변화, 시골 사람들의 아픈 현실, 나라 안팎 정치와 사회 면면, 존경하는 분들과 새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 세상을 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그러면서도, 떨어져 있어 더 깊이 나누고 토론할 수 없음에 아쉬워한다.
  이 책은 ‘부부간 소통법’의 살아 있는 예, 그 자체다. 때로는 시인인 남편보다 더 시적인 글로 감동을 주고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놀라움을 안기는 주부 아내가 있다. 망설임 없이 마음을 터놓고 북돋아주는 부부와 자녀의 모습이 있다. 어떤 실용서나 강좌보다 우리에게 깊이 와 닿는 지침서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