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문학의 3대 봉우리 너새네이얼 웨스트,
천재 작가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소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와 더불어 20세기 미국 문학의 3대 봉우리로 꼽혔던 너새네이얼 웨스트. 그의 소설 『거금 100만 달러(1934)』와 『발소 스넬의 몽상(1931)』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먼저 소개된 『미스 론리하트』『메뚜기의 하루』를 포함해 단 네 편의 소설만을 남긴 채 37세에 요절한 웨스트는 고전적 의미에서 ‘천재’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는 동시대 일류 작가들의 그늘에 가려 생전에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후 프랑스에서 작품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미문학사에서 새롭게 조명되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1930년대 암울한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그려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작가였다. 드라이저, 피츠제럴드 등 물질주의와 산업주의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와 그에 따른 병폐를 인식한 작가들은 많다. 그들은 20세기 들어 급속히 변화한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사고체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들이 작품 속에서 당대 미국 산업 체계의 물질적 착취 측면에 입각해 인물들을 형상화해냈다면, 웨스트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자체보다, 물질적 조건 이면에 가려진 삶의 본질에 더 집중했다.


『거금 100만 달러』와 『발소 스넬의 몽상』은 이러한 웨스트의 작품 세계가 각각 거침없는 풍자,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담긴 작품이다. 이 두 편의 작품으로 우리는 요절한 천재 작가의 진면모를 만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과 파시즘에 가하는 일격, 『거금 100만 달러』


『거금 100만 달러』는 꿈을 찾아 떠난 소년이 비참하게 몰락해가는 과정을 통해 폭력적인 현대 사회의 병폐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세기 미국 작가 호레이쇼 앨저Horatio Alger가 즐겨 다룬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패러디로 해석된다. 앨저 작품의 등장인물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주인공 레뮤얼 피트킨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실한 젊은이다. 그러나 그에게 펼쳐지는 운명은 전혀 다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 이를 몽땅 뽑히고, 사람을 구하다가 눈을 잃는다.


“죗값은 어떻게든 치러야 하는 법. 그나저나 돈이 얼마나 있나?”
“90달러 있습니다.”
렘이 솔직하게 말했다.
“너무 적군. 그냥 죄를 인정하는 게 낫겠어.”
(…)
“말했잖아요. 저는 죄가 없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입증할 돈이 없지 않은가.”
-126~127쪽에서


이렇듯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두드려맞는 것은 예사다. 폭력이 진보의 수단으로 여겨지던 암울한 1930년대 미국 사회에서 성공을 꿈꾸던 주인공은 손가락과 다리, 머리 가죽까지 잃고 결국 자신이 왜 그 모든 고초를 겪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총탄에 희생된다.


용기를 내고 노력하면 할수록 몰락해가는 아이러니는 분명 참혹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해설자의 존재는 외려 씁쓸한 실소를 자아낸다. ‘독자 여러분’, ‘우리의 주인공’과 같은 표현 역시 앨저의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것으로, 이는 웨스트만의 블랙유머와 만나 부조리한 사회, 자본주의의 병폐와 현대 문명에 대한 환멸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된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수십만 군중이 레뮤얼 피트킨을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이용하려는 세력에 휩쓸려 만세를 외치는 모습은, 경제공황 이후 정치사회적 불안 속에 도사린 파시즘의 위협을 우려한 웨스트의 경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 정신이 살아 있는 웨스트의 첫 작품, 『발소 스넬의 몽상』


『발소 스넬의 몽상』은 웨스트가 대학 졸업 후 한동안 파리에서 머물며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아 쓴 소설이다. 우연히 트로이 목마에 들어간 시인 발소 스넬이 그 안에 거주하는 인물들을 만나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으로, 일관된 플롯 없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미학적인 논쟁을 즐기는 가이드, 자서전 작가의 자서전을 쓰는 자서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양식의 범죄일지를 쓰는 10대 소년, 자신의 남편을 죽여달라는 곱사등이 여인 등 다양한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미학적·종교적·신화적 문제를 다룬다.


궁극적으로는 허위에 가득 찬 주지주의자에 대한 풍자와 함께, 예술이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현실과 소통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한때 나 자신이 정말로 드문 영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순진하게도 나의 은밀한 삶을 모두 다 고백하여 내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청중의 흥미를 끌려면 장황한 감정 표출을 줄이고 상상력을 동원해 그럴듯한 장관으로 포장해야 한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색다른 것을 찾아내고 똑같은 것을 피하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모른다.
-232~233쪽에서


발소 스넬은 압정으로 스스로를 찌르며 자아비판을 하는 가톨릭 신비주의자에게 “마음을 굳게 먹어요. 당신의 배꼽에서 눈을 떼요. 겨드랑이 위로 머리를 들어요. 죽음의 냄새를 맡지 말아요. 게임을 해요. 책을 너무 많이 읽지 말고, 차가운 물로 샤워라도 해요. 고기도 많이 들어요”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 역시 개성 넘치는 10대 소년의 글을 보고 자신이 늙고 도태되었다며 좌절하는 시인이다.


긴 여정 끝에서 발소 스넬은 트로이 목마가 상징하듯 외부의 영향으로 내부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파괴와 몰락이 아닌,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의무와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매력적인 파계破戒다.


그의 신체는 방랑시인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삶을 살았다. 시인 발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삶을. 이런 해방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썩어가는 과정인 죽음뿐. 죽은 뒤에 몸은 명령을 받아들인다. 해체의 매뉴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한다. 지금 그의 몸은 확실하게 사랑의 과정을 수행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가정과 의무, 사랑과 예술은 까맣게 잊혔다.

-279쪽에서


이 작품은 웨스트가 남긴 나머지 세 작품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다양한 문학적 시도와 인간 세계의 심연을 선명하게 묘파하는 시선은, ‘웨스트의 풍자적이고 환상적인 세계의 밑바탕을 이루는 그물망’(「옮긴이의 말」에서)이자 천재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웨스트 이전의 모든 작가는 유럽의 아류다”


너새네이얼 웨스트. 이 낯선 이름이 낯선 이유도 미국 사람들이 정서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그대로 수입하고! 웨스트 이전의 모든 작가는 유럽의 아류다. 웨스트는 전혀 빛을 못 보고 죽어버린다. 그들은 그가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피츠제럴드나 포크너가 보여주는 식민지적인 향수와 익숙한 달콤함이 웨스트의 풍자보다 훨씬 더 끈적거리게 그들의 취향에 들러붙었던 것이다. (…) 누구에게나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시할 용기가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이 거부하던 작가가 왜 이제 와서 3대 작가가 됐는지 궁금한 사람은 10분만 읽어도 이유를 알게 된다.

-김점선, <국민일보> 2002년 11월 7일자 칼럼 「그림으로 읽는 책-너새네니얼 웨스트의 ‘메뚜기의 하루’」에서


현대 문명의 허위에 대한 환멸, 소통되지 않는 시대의 고독과 소외, 피폐한 현실에 대한 차가운 해부, 인간의 초라한 실체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풍자의 미’(「옮긴이의 말」에서), 지금 봐도 세련되게 느껴질 만큼 시대를 앞서 간 서술 방식까지, 웨스트의 작품 세계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뛰어난 위트와 상징적인 아이러니로 읽는 이를 매료한다. 이는 김점선이 지적했듯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고뇌가 과거로 도피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시’한 결과다. 바로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용기를 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소설이 다른 소설과 분명하게 차별되는 점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거금 100만 달러』는 20세기 이후, 이 혼란의 시대의 정전이다.
-해럴드 블룸Harold Bloom(문학비평가 · 예일대학교 석좌교수)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난폭하고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는 이성보다 광기를 향해 치닫는 세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기분을 실로 멋지게 표현해냈다.

-버드 셜버그Budd Schulberg(미국 소설가 · 시나리오 작가)


정상적인 상태를 과장하기 좋아하는 웨스트의 성향은 유머와 풍자, 기괴함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따뜻한 인간미가 황량한 세상을 넘어서기 쉽지 않음을 그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보스턴 피닉스Boston Phoen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