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출간된 ‘고양이 이야기의 고전’
50년 넘게 사랑받아온 명사 고양이를 만나다


여기, 지혜로운 철학자를 꿈꾸며 두 명의 가정부를 거느리고 살았던 고양이가 있다. 미국 작가 메이 사튼(1912~1995)이 함께 살았던 고양이, 톰 존스. 『신사 고양이』는 메이 사튼이 톰 존스를 주인공으로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57년 이후 톰 존스는 미국에서 유명인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한때 메이 사튼의 부탁으로 톰 존스를 맡아 키웠다는 점이 흥미를 더한다.


작가가 1978년 개정판 서문에서 밝힌 대로, 신사 고양이 톰 존스는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문학 속에서 불멸의 삶을 살고 있다. ‘고양이 이야기의 고전’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가 드디어 한국의 독자들을 만난다. 이 책의 원서는 2002년에 새로운 일러스트를 곁들여 특별 한정본으로 출간된 것으로, 선물용 책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신사 고양이’라는 상을 늘 염두에 두고 홀로 생활하던 수고양이(털북숭이 인간)는 몇 해 동안 떠돌다 지쳐 야생 생활을 접기로 결심한다. 그는 몇 차례의 모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한 집에 정착하는데, 그곳이 바로 ‘무뚝뚝한 목소리’(메이 사튼)와 ‘다정한 목소리’(주디 매틀랙)가 함께 사는 집이다. 신사 고양이는 그녀들에게서 (헨리 필딩의 소설 『톰 존스』의 주인공에서 따온) ‘톰 존스’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그녀들 덕분에 ‘평화의 고양이’로 거듭나, ‘고양이의 자긍심과 독립과 자유를 보장받으면서 올바른 방법으로 인간들의 사랑을 받는’ 털북숭이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소설은 고양이가 인간의 반려자가 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이자, 인간이 고양이와 더불어 사는 기쁨과 고생을 담은 이야기다. 짧고 쉽게 읽히지만 기품과 매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과연 ‘고양이 이야기의 고전’으로 꼽힐 만하다.



톰 존스가 말하는 ‘신사 고양이의 자격’ 그리고 ‘반려인간의 자격’
인간 위주의 시각과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신사 고양이’ 톰 존스의 이야기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준다. 고양이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작가답게, 고양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을 섬세하고도 위트 있게 풀어낸다.


특히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사 고양이의 십계명>은, 고양이 특유의 독립적인 성향과 다소 예민하고 도도하게 보이는 행동의 ‘근거’를 짚어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자, 신사 고양이라면 음식 앞에 덮어놓고 앉지 않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서두르지 않고 멀리서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멀리서 냄새를 맡고 적어도 1미터 앞에서는 등급을 매겨야 한다. ‘좋음’, ‘괜찮음’, ‘보통’, ‘형편없음’. ‘좋음’으로 판단되면 웅크리듯 몸을 낮추고 꼬리를 말며 아주 천천히 접근한 뒤 한입을 먹는다. ‘괜찮음’이면, 웅크리듯 몸을 낮추지만 꼬리는 뒤로 감추고 바닥을 따라서 몸을 쭉 뻗는다. 그저 ‘보통’이면, 서서 먹는다. ‘형편없음’이면, 음식 위에 흙을 덮는 척해야 한다.
―44∼45쪽에서


고양이를 대할 때 인간이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귀띔한다.


신사 고양이도 턱 밑을 부드럽게 긁어주면 썩 좋아할 때가 있다. 솜씨 좋게 턱을 만져주면, 신사 고양이도 그 뒤로는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몸을 맡기고 그 사람의 무릎에서 잠깐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아기처럼 거꾸로 안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며, 어르는 소리를 듣는 것도, 수선화나 장미 냄새 나는 가슴에 눌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47쪽에서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가정부’라 일컬으며 그들의 ‘주인’을 자처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가정부들을 단호하게 다루는 것도 큰일”이라고 한다든가, “가정부들에게 가끔 휴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럴 때면 가정부들이 없는 동안 털북숭이 인간을 잘 돌볼 대리인을 받아들이는 것도 인정했다”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그 당당함이 사뭇 귀엽게 느껴진다.


이 책은 고양이를 비롯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지침서이며,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인간 위주의 시각과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사랑과 관계에 관한 서정적인 이야기


저자 메이 사튼은 이 책을 “할머니들이 손자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기를” 바라고 썼다고 말한다. 고양이 애호가들은 물론, 온 가족이 즐기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이야기는 부드럽게 읽히며 서정적이다. 또한 고양이 톰 존스를 그 자체로 아끼고 사랑하는 두 사람과, 그 안에서 안식을 찾는 톰 존스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잔잔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이 이야기가 단순히 애완동물과 인간 사이의 지침을 넘어,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미덕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두 가정부는 톰 존스의 반지르르한 호랑이 무늬 털 때문에 톰 존스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흰 앞가슴이나 흰 발 때문에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멋진 초록색 눈 때문도 아니었다. 흰 꼬리초리 때문도 아니었다. 아니, 아니었다. 두 사람은 톰 존스가 톰 존스이기 때문에 톰 존스를 사랑했다.
―97쪽에서


신사 고양이가 마지막에 다다른 결론, 즉 ‘열한 번째 계명’의 핵심은 ‘사랑’이다. 톰 존스는 우리에게 일깨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공감하는 것, 즉 진심 어린 이해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털북숭이 인간’은, 고양이의 자긍심과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면서 올바른 방법으로 인간들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다. 그리고 ‘털북숭이 인간’은 한 사람을,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는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고양이며, 살아 있는 한 그 사랑하는 사람과 머물기로 마음먹은 고양이다. 이런 일은, 고양이가 어느 부분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듯, 인간이 어느 부분 스스로를 고양이라고 생각해야 일어날 수 있다. (…) 톰 존스는 꽤 지칠 만큼 오래 생각한 끝에, 열한 번째 계명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사 고양이는 인간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을 때 털북숭이 ‘인간’이 된다.
―142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