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의 신작 시 64편
“사랑과 이별, 삶이 어찌 그것들을 다 이기겠는가”

 

연애시의 정수를 보여준 『연애시집』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김용택 시인의 신작 사랑시집. 미발표작 59편을 포함하여 총 64편의 연애시가 담겼다.
김용택 시인은 『속눈썹』에서 섬진강 시인 특유의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큰 솔직한 언어로 사랑에 대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는 “이번 시집은 사랑의 길이 써준 시의 집이다. 바람 부는 들길을 지나 해질녘에 찾아든, 따뜻한 새집. 속눈썹이 떨렸던 날들…… 그 연애의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몇 해 전 한 인터뷰에서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던 김용택 시인. 그가 지난날의 사랑을, 그리고 지금의 사랑을 이렇게 시로써 기록한 것이다.
자서(自序)에서 그는 묻는다. “사랑 말고 우리가 노을 아래 엎디어 울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느냐고. 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인간 본연의 감정을 드러낸 그때 그 사랑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산그늘 내려오고 / 창밖에 새가 울면 / 나는 파르르 / 속눈썹이 떨리고 / 두 눈에 / 그대가 가득 고여 온답니다.
- 「속눈썹」 전문

 

 

사랑의 사계절을 노래하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죽어도 좋을 사랑이 오고 있어요”

 

결코 난해하지 않으며 간결한 시어,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은 깊고 뜨겁다.
“처음 본 날 웃었지요. / 먼 데서 웃었지요”(「처음 본 날」 부분)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너 없이도 가을은 오고 / 너 없이도 가을이 가는구나”(「눈물」 부분) 한탄하며 끝이 난다. 이별의 아픔에 해 지는 강화에서 목 놓아 울기도 하고, 사랑은 순간임을 알면서도 가는 연인을 끝내 놓지 않겠다 다짐도 한다. 하지만 이내 “너는 / 내 마음속 / 가장 어둔 곳을 / 살짝 치켜세운 / 속눈썹 같은 / 한 송이 꽃이었다네”(「한낮의 꿈」 부분)라며 아련한 옛사랑을 추억한다.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 농도를 더해가는 애정, 그럼에도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연인 그리고 남은 옛사랑의 추억. 다른 듯 같은 모든 사랑의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시집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세월이 흐른 지금, 옛사랑을 추억하며 현재의 사랑을 소중히 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김용택 시인의 사랑시가 특별한 것은 자연의 생태를 관찰하는 시인답게, 인생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만남도, 이별도 계절이 바뀌는 일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아픔 또한 숨기려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연에 빗대어 사랑을 노래하고, 정겨운 추억을 들추어 미소 짓게 하는 특유의 화법이 여전히 살아 있다.

 

가을빛들이 빈 들 허공에서 발광합니다. /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죽어도 좋을 사랑이 오고 있어요.
- 「발광」 전문

 

산당화, / 산당화라고도 하고 / 명자나무라고도 한답니다. / 명자는 이웃마을에 사는 내 동창이지요. / 아버지는 명자를 며느리 삼고 싶었답니다. / 검은 눈이 똥그랗던 / 고 지지배 명자, / 산당화 피니 / 붉은 댕기 나풀나풀 / 징검다리 건너던 / 그 명자가 생각나네요.
- 「명자」 전문


 

수더분한 고백과 과격한 신음소리
“인자 나는 참말로 큰일 났습니다”

 

시인 안도현은 『속눈썹』이 내는 사랑의 목소리가 “사랑의 대상을 향한 잔잔하고 수더분한 고백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자가 어쩌지 못하고 터뜨리는 과격하고 무모한 신음소리”로 구별된다고 말한다.

 

형, 나 지금 산벚꽃이 환장하고 미치게 피어나는 산 아래 서 있거든. / 형 그런데, 저렇게 꽃 피는 산 아래 앉아 밥 먹자고 하면 밥 먹고, 놀자고 하면 놀고, 자자고 하면 자고, / 핸드폰 꺼놓고 확 죽어버리자고 하면 같이 홀딱 벗고 죽어버릴 년 / 어디 없을까.”
- 「우화등선(羽化登仙)」 전문

 

이렇듯 그의 시에 “깃들어 사는 무지막지한 짐승을 좋아한다”는 안도현 시인은 독자들이 『속눈썹』을 통해 “그의 시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고 느꼈으면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불멸의 초심”(2011년 10월 1일 <경향신문> 인터뷰 중)이라는 시인 김용택. 이 가을, 『속눈썹』을 통해 삶으로도 이길 수 없는 사랑의 힘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