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깊은 여행, 내밀한 미발표 전작 기록
시인 김태형이 직접 찍고 쓴 40편 산문과 58컷 사진

 

침묵으로 돌아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자 방랑하는 시인 김태형이 두 번의 깊은 인도 여행을 한 뒤 써내려간 산문과 사진을 전작으로 묶었다. 인도에 한 번 다녀오면 그곳에 놓인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인에게 인도는 “갈 수 없는 곳을 의미하는 대명사”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 인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떠난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랑도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인은 여행에서 만난 낯선 ‘나’를 남겨두기 위해 문장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인도는 일본인 사진가 후지와라 신야의 전설적인 여행기 『인도 방랑』, 베스트셀러인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등을 통해 신비롭게 알려졌고, 또 문인 강석경, 함성호, 차창룡을 통해 독특한 아름다움, 성속의 경계가 흐릿한 나라로 소개되었다. 인도 여행기가 끊임없이 작가, 시인을 매료하는 것은 어떤 문학적인 시선이 맞닿은 아름다움의 절정이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에 병든 자』에 실린 58컷의 사진에는 여행자의 숨결과 시선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인도의 곳곳을 포착한 사진들은 어둠과 흔들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고자 사진을 찍는 시인은 그 흔들림을 통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보여준다. 사진 속의 어둠과 흔들림은, 불안하고 고독하지만 살아 있음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시인의 내면을 투영한다.  
또한 『아름다움에 병든 자』는 출간 전 원고의 완성도를 인정받아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우수출판콘텐츠로 꼽히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보았다면 분명 신에게 가까이 간 거야”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詩적인 여행길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얻기 위해서일 테다. 시인은 시종일관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태어나는지,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슬픔을 느끼는지, 영원한 아름다움은 과연 존재하는지, 시인은 이 여행을 통해 묻고 또 묻는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걸음을 옮긴 흔적과 거기에서 발견한 풍경들이 이 책을 메우고 있다. 

 

무엇을 찾아서 이렇게 잔인할 정도로 뜨거운 폭염의 나라에 왔던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신이 아니었을까. 신이 만든 것들은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건너서야 신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멀고도 먼 이국에서 내 안의 어떤 유전자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기억 하나를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222쪽

 

시인은 사랑을 위해 타지마할을 지으려 했던 한 사내의 꿈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영원을 꿈꾼 자는 누구나 아름다움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거기서 시인은 한발 더 나아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존재의 긍정 속으로. 그 답을 구하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시인이 발견한 또 다른 언어는 바로 ‘나’를 뜻하는 “자기”라는 말이다.
인도에서 시인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앞에서 돈을 받는 사기꾼에게 액수가 큰 지폐를 내밀기도 하고, 마치 인도에 사는 사람처럼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아보기도 하고, 구걸하는 걸인들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해 차라리 사기를 당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낯선 풍경 속에 던져진 자신의 모습이 더 낯설어, “가장 먼저 내 앞에 다가오는 낯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여행은 비록 한순간일지라도 자기가 살아온 강제된 질서를 벗어나서 온전히 자기를 마주하게 한다. 나와 전혀 다른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18쪽
 
인도는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소설가 김연수의 글처럼 “성자의 나라, 혹은 폭력의 나라,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나라, 혹은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만큼 더러운 나라”로 그 모순된 풍경이 확고하게 떠오르는 장소다. 선악과 미추가 뒤섞여 있는 모순 속에 던져진 여행자는 그제야 거대한 질서가 지워버린 온전한 ‘자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꿈꾸는 시인
글과 사진으로 환기하는 아름다움

 

인도를 여행한 뒤 쓴 산문이지만 이 책을 인도 여행기라고만 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도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뿐 아니라 이 기록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멀리 돌아온 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해서 인도는 ‘지금 여기’에 고인 공기를 환기하는, 익숙한 무언가의 다른 편을 보게 해주는 매개가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만날 때가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 새로움은 나의 삶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찾는 것이 여행일지 모른다. 내 문장에 한때 그늘져 있던 것들.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단 한 번도 그런 떨림조차 내 손끝에서 파문이 되지 못하는 것들. 물결만이 저만치 건너편으로 떠밀려 가듯 내가 언젠가 놓쳐버리고야 말았던 것들. 나는 그 길을 따라갔다.
―21쪽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 떠난 여행, 갈 수는 있어도 돌아올 수는 없는 장소를 꿈꾸는 방랑자,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지워버리려는 완전한 무無를 향한 열망. 이것들은 모두 “세계의 끝”을 찾아 떠난 시인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부르다 보면 제각각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추천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그런지 인도라면, 서로 모순되는 이미지만 떠오른다. 성자의 나라, 혹은 폭력의 나라.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나라, 혹은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만큼 더러운 나라. 어떤 색의 안경을 끼느냐에 따라서 풍경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인도는 다른 곳으로 다가온다. 김태형의 인도는, 그가 찍은 사진이 그렇듯이, 감각이 최고조에 이른 시적 인도다. 사소한 풍경도 놓치지 않은 그의 문장은 타지마할의 하얀 빛처럼 날카롭다.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