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시인,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산문들
“확고하게 영혼을 믿는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해보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걸 느낀다”라는 김숨 소설가의 말처럼 퓰리처상 수상 시인 메리 올리버의 특별함은 이미 2012년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완벽한 날들』로 입증된 적 있다. 자신의 신념과 생각, 영감에 관한 맑고 투명한 이야기를 담은 이 산문집을 통해 국내에 굳건한 독자층을 확보하며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메리 올리버는 소설가 김연수가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기러기」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국내에 알려졌지만, 정작 한국에 출간된 작품은 『완벽한 날들』이 처음이었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등을 받았고 여든의 나이인 지금도 여전히 현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뉴욕 타임스>는 단연코 미국 최고의 시인이라 칭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읽고 인용했음은 물론이다. 2009년 9‧11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부통령 조 바이든이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낭독한 것을 보면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메리 올리버는 『휘파람 부는 사람』에서도 변치 않은 시적 언어로 자연과 인간, 살아간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목공 작업을 통한 영혼의 집짓기에 관한 사유뿐만 아니라 거북이와 거미를 관찰함으로써 우주의 법칙을 통찰한다. 또한 셸리와 소로, 에머슨과 에드거 앨런 포, 프로스트와 휘트먼이라는 자신의 문학적 유산을 밝힌다.
그녀는 깊은 사색에서 길어 올린 산문과 운문을 통해 우주로부터 선물 받은 우리의 지고한 ‘능력’을 일깨운다. “영혼을 믿는” 시인의 고결한 문장은 지친 현대인에게 조화로운 삶에 대한 긍정과 함께 위안을 줄 것이다.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산문들의 진경을 확인할 수 있다.     


영혼을 믿는다면, 늘 눈에 보이는 산이나 손톱을 믿듯 확고하게 영혼을 믿는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광대하고 철저하게 경이로운 일인가! 그런 믿음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고 달라질 테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영혼이 존재하고 우리의 입은 그 영혼을 노래하고 우리의 마음은 그 영혼을 받아들인다. 그 순간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은 전체 세상의 반쪽이 된다!
나는 그런 시나리오로 인생의 절반쯤을 얼마나 쉽게 살아왔던가. 나는 영혼을 믿는다. 내 안에, 여러분 안에, 큰어치 안에, 둥근머리돌고래 안에 있는 영혼을. 나는 거친 돼지풀 위를 날아가는 오색방울새에게도, 그리고 돼지풀 한 포기 한 포기에도, 그 아래 흙 속의 작은 돌들에도, 흙 알갱이들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 155쪽 「겨울의 순간들」에서



자연과 삶에 대한 예찬, 조화로운 삶을 이야기하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


『휘파람 부는 사람』은 여전히 예술가의 고장 프로빈스타운에 머물며 자연을 벗 삼아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반자였던 몰리 멀론 쿡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완벽한 날들』보다 좀더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녀는 이 책에 대해 서문에서 “정확히 어떤 사건이나 시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 세상의 다양한 일에 대한 반응, 영혼의 탐색과 발견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렇다고 육신이 인간의 집에서 노래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말한다.
「백조」라는 에세이와 시에는 메리 올리버가 시를 쓸 때 지키는 원칙들과 시 「백조」의 탄생 배경, 작가의 의도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시의 친절한 안내자가 된 에세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집짓기」에서 그녀는 머리만 쓰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 시인의 울타리를 벗어나 목공 작업을 즐기고, 폐기물 처리장에서 주워 온 폐자재를 재활용하여 집까지 짓는다. 그 집은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집짓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툰 솜씨나마 목공 작업에 몰입한 그녀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시인답다. 가장 순수한 즐거움을 몸으로 노래하고 있는 까닭이다. 「거북이 자매」에서는 해변에 알을 낳으러 오는 거북이를 눈여겨본다. 그녀는 거북이에게 애정과 이해가 넘치는 “자매”의 시선을 보내지만 거북이가 모래 속 둥지에 낳아놓은 알 가운데 일부를 집에 가져가 요리해 먹는다. 그녀에게 그건 주엽나무 꽃에 든 꿀을 먹는 행위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자연인인자 시인인 메리 올리버의 초상이 여기 있다. 「기절」에서는 거미 관찰자로 등장한다. 지하실 계단 옆 초라한 거미줄의 거미 가족을 세심하게 지켜보며 자신이 “발견의 궁전의 진정한 코페르니쿠스”라고 자부한다. 최고의 자연시인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지식의 궁전은 발견의 궁전과 다르며 나는 발견의 궁전의 진정한 코페르니쿠스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그 이상이다! 나는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 131쪽 「기절」에서


마지막 장「겨울의 순간들」에서 메리 올리버는 날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서 바다나 숲으로 간다. 눈 뜨면 산책을 나가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그녀의 한결같은 일과다. 얼핏 단조롭게만 보이는 이 일상에서 메리 올리버는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희열을 시와 산문에 담는다. 자연을, 삶을 찬양하는 시인. 그렇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운명임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머나먼 하늘의 별과 우리 발치의 진흙은 한 가족이다. 어느 한 가지나 몇 가지만을 찬양하고 끝내는 건 품위나 분별 있는 일이 아니다. 소나무, 표범, 플랫강, 그리고 우리 자신, 이 모두가 함께 위험에 처해 있거나 지속 가능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
- 149쪽 「겨울의 순간들」에서



우주를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
“네 모습 그대로 살아라, 그러면서도 꿈꾸는 자가 되어라”


메리 올리버는 말한다.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건들은 지나가고, 세상은 변하고, 상처는 희미해지고, 행운은 찾아왔다가 사라졌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가 스무 살 때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기억하는 한 영원히 일어난다”고.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음으로 해서 낙원은 존재한다는 그녀의 믿음은 여전히 ‘있는 그대로, 그러면서도 꿈꾸는 생명체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우리에게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렇게 우주를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그녀가 세상에서 발견한 이 아름다움을 전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휘파람 부는 사람』은 탁월하다. “희망과 기쁨, 흥분 속에서” 우리는 그저 소중히 그녀의 선물과도 같은 산문을 “간직”하면 될 것이다.


그런 순간, 그런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저 소중히 간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려진 것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빛의 비밀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의 집에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재에서 싸구려이거나 하찮은 걸 모두 치워야 하지 않을까? 늘 희망과 기쁨, 흥분 속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 157쪽 「겨울의 순간들」에서



추천사


메리 올리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걸 느낀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밥을 먹고, 길을 걸어가고, 지하철에 오르던 무력 무감한 내게. 영혼 없이 어제와 오늘을 떠돌던 내게.
눈 결정체처럼 오묘하게 빛나는 그녀의 문장을 읽는 것은 은총이다. 그녀의 글이 무한의 눈 결정체들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은쟁반 같은 허공에 그리는 하모니이므로. 그 하모니가 절대자와 자연이 인간에게 슬쩍 귀띔해주는 지혜의 말씀과 닿아 있으므로. 너의 영혼을 믿으라는 속삭임이기도 한 새벽의 푸른 공기와 “늘 눈에 보이는 산이나 손톱을 믿듯 확고하게 영혼을 믿는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해보라!”라는 그녀의 주문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모든 존재를 향한, 이토록 높고 우아한 너그러움에 어떻게 하면 도달할 수 있을까. 경탄을 넘어, 여든이라는 그녀의 나이에 질투를 느낄 만큼 그녀의 사색과 언어는 아름답고 고결하다.
김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