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가” 제임스 설터의 시작을 알린 작품
공중전과 고독감을 섬세히 묘사한 찬란한 데뷔작


『사냥꾼들』은 『올 댓 이즈』 『가벼운 나날』 『어젯밤』 등의 작품을 내놓아 “작가의 작가” “가장 미국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 등의 찬사를 받은 제임스 설터의 데뷔작이다. 제임스 설터 하면 앞의 수식어들 못지않게 자주 그의 특별한 이력이 언급되는데, 바로 1952년 전투기 조종사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일. 『사냥꾼들』은 제임스 설터가 당시 제335전투비행대대에서 겪은 일들이 바탕이 된 소설로, 덧없고 쓸쓸한 분위기가 짙은 그의 이후 소설들의 시원인 작품이다.
첫 소설 『사냥꾼들』에서 이미 제임스 설터는 자신의 기조를 결정지었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거나 영웅적인 일화를 미화하는 데 애쓰기보다는, 한 번의 급선회만으로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뒤바뀌는 비좁은 조종석 안에서의 고독과 중압감, 미그기를 잡아 수훈을 세우는 데 허기진 조종사들의 경쟁 관계, 스러질 줄 예감하면서도 승리보다 더 숭고한 것을 좇는 주인공의 영웅적 선택 등을 다룬다. 처음부터 제임스 설터는 세월에 빛이 바랠 전쟁,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그 진창 같은 담론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즉 목표와 열정과 성취의 ‘빛바램’ 자체를 정확한 문체로 그렸다. 『사냥꾼들』이 한국을 배경으로 당시 미·소 양 진영의 첨단 기종이던 ‘F-86 세이버’와 ‘미그-15’ 전투기의 공중전을 묘사하는 데 세심한 공을 들이면서도 전쟁소설이기보다는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다룬 소설”(「옮긴이의 말」)로 읽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냥꾼들』은 제임스 설터가 군 생활 중 집필한 소설이다. 1956년 발표되어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 성공으로 제임스 설터는 이듬해 군에서 나와 전업 소설가가 되었다. 이 작품은 40여 년 뒤인 1997년 작가에 의해 개정되었는데, 한국어판은 개정판을 옮겼다. 한편 『사냥꾼들』은 초판 출간 2년 뒤인 1958년,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와그너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나 원작에서 크게 각색되었다.



쫓거나 쫓기거나, 중간 지대가 없는 삶
가늘게 바스라지기보단 장엄한 실패를 좇아


다섯 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하면 붉은 별 다섯 개와 함께 에이스 칭호가 주어진다. 서른한 살의 대위 클리브 코넬은 에이스가 되려는 일념으로 자신감에 부풀어 김포 기지로 전출되지만 좀처럼 적기를 만나지 못하거나 놓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미그기를 몇 대 격추했는지가 최고선이 되어버린 부대의 분위기 속에서, 승전보를 가져오라고 독촉하는 이밀 대령과 편대장 자리를 노리는 천부적인 사냥꾼 펠 사이에서 심리적 압박과 고립감을 겪는다.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클리브는 공훈에 눈이 멀어 독단적인 행동을 일삼고 동료를 위험에 빠뜨리는 부하 펠을 견제하려 하지만, 나날이 에이스로 추앙받는 펠의 높아진 입지만 확인할 뿐 자신은 절박감과 회의감을 더해간다. 그러던 중 부대 전체가 술렁일 일이 발생한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적군의 에이스 ‘케이시 존스’가 돌아온 것. 하늘을 공포로 물들이던 케이시 존스의 등장으로 부대는 전의를 가다듬고, 클리브 역시 기사회생의 기회를 될 케이시 존스에게 차라리 동질감을 느끼며 ‘F-86 세이버’에 올라 숭고한 선택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죽음 가까이까지 이르고 싶다는,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순결함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을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인 양 이따금 떠올리곤 했다. 그는 인간의 자기 극복과, 자기 극복이 이루어지는 숭고한 금욕의 세계를 언제나 존중했다.
-20쪽

 

『사냥꾼들』은 분명 전쟁, 그중에서도 공중전을 소재로 하지만 주로 지상의 부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열린 공간에서 적과 아군이 뚜렷이 양분된 채 치고받는 치열함은 이 작품에서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부대 내의 경쟁과 알력, 그 때문에 적이 구원자가 되는 아이러니, 관보다 좁은 조종석에 유폐돼 철저히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고독감 등을 그린다. 하지만 제임스 설터가 공들여 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영원할 줄 알았으나 시간의 더께에 빛을 바래가는 모든 것이다. 싸움에서 귀환하지 못한 동료의 빈자리가 늘어날수록, 전역을 하여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동료가 늘어날수록 클리브는 쓸쓸해지고, 줄곧 그를 지탱해주었던 ‘에이스가 되는 일’ 자체에 회의를 느낀다. 그는 영웅도 언젠가 퇴색하리란 걸 알지만, 승리와 패배라는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하는 전장 바깥의 다른 삶은 알지 못한다. 전투기를 몰고 이미 이생의 끝까지 가보았고, 완벽하고 순수한 하늘에 매료당해서. 결국 클리브는 야비하고 덧없는 성공과 일수만 채우다 명예 없이 퇴역하는 실패 사이에서 가늘게 빛나는 제3의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 또 오면 안 돼, 버트.” 클리브가 말했다. 그들은 삶과 죽음 사이, 존재의 고원에 있었다.
“왜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삶이니까.”
“어느 면에선 그렇죠.”
“모든 면에서 그래.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들레오가 말했다.
“아니야. 단박에 가는 게 중요해. 가령 하늘 저 높이 별에 닿았다가 지상으로 떨어져 스러진다면 근사하지 않겠나?”
-159~160쪽

 

“은신처가 된다고 할까. 하늘은 신과 같은 공간이에요. 홀로 하늘을 날고 있으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요.”
-184쪽



제임스 설터의 실제 이야기
비행에 관한 최상의 묘사


한국전쟁은 1950년부터 1953년에 걸쳐 일어났다. 한반도의 지형과 그곳에서 벌어진 전쟁의 양상은 당시 잘 알려진 문제였다. 제트전투기가 새롭게 전쟁에 투입되었고, 소련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종사와 전투기를 보내오자 첫 공중전이 벌어졌다. 소련 전투기에 맞선 것은 대부분 미국 전투기였다.
-9쪽, 「서문」에서

 

1925년생인 제임스 설터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 비행 훈련을 마치고 필리핀, 일본 오키나와, 하와이 등 여러 공군기지로 전속하다가 한국전쟁에 자원해 1952년 한국 땅을 밟았고, 그해 2월부터 8월까지 제335전투비행대대에서 ‘F-86 세이버’를 몰고 100여 차례 이상 출전했다. 세이버는 재빠른 미그기를 내세운 소련에 열세로 몰리던 미국이 대항마로 내놓은 야심작으로, 이 결과 한국전쟁은 제트전투기들 간의 전투가 벌어진 첫 무대가 되었다. 제트전투기라곤 하나 당시에는 레이더 성능도 낮은 데다 미사일이 개발되기 전이었다. 미그기는 그저 기관포를, 세이버기는 기관총을 탑재해, 공중전은 이를테면 하늘에서 벌어지는 육박전과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목숨이 오가는 승패는 조종사 개인의 능력에 크게 달려 있었고, 조종사는 하늘 그리고 적과 보다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일을 실제로 겪고 비행과 전투, 적에게 품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기에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비행에 관한 최상의 묘사”라며 제임스 설터를 생텍쥐페리와 나란히 언급했다.
『사냥꾼들』에서 제임스 설터는 전쟁을 완전히 빠져들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반도처럼 고립된 상황으로 보고, 그 안에서 개인의 고독감을 눈여겨본다. 내부에도 외부에도 경쟁자가 있는, 마음 둘 곳 없는 상황 속에서 계절과 시간의 무상한 흐름만이 감지되는 삶. 제임스 설터는 이 데뷔작에서부터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그 고독함을 담아내었다. 시간과 함께 삭고 부서지는 모든 것 안에서도 영롱함을 건져내는 그는, 처음부터 제임스 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