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의 작가 사노 요코가 아들 몰래 기록한 글
‘엄마’ 사노 요코의 새롭고 따뜻한 면모


전 세계에서 4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밀리언셀러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를 남편으로 두었던 사노 요코. 『자식이 뭐라고』는 작가가 아들 몰래 틈틈이 써둔 독특한 육아 기록이다. 사노 요코는 아들 히로세 겐의 유치원 시절부터 매섭게 반항하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글로 남겼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사노 요코의 일상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짓궂은 아들 관찰기’다.
“배에서 나올 때부터 고역, 기르는 건 더 큰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노 요코는 가장 사랑한 존재를 따스하게 바라본다. 거침없이 독설을 하고, 암에 걸려서도 굴뚝처럼 담배를 피워대고, 돈과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는 신념을 내세우는 전작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에  ‘독거 작가’ 사노 요코의 까칠한 투덜거림이 담겼다면, 『자식이 뭐라고』에서는 그녀의 전혀 다른 얼굴, ‘엄마’ 사노 요코를 만날 수 있다. 그녀가 아들의 머리맡에서 다정하게 속삭인 옛날이야기들은 웃음과 감동을 준다. 육아의 고충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쓴 『자식이 뭐라고』는 사노 요코의 독특한 아들 존중 방식이 묻어난다.
아들 겐은 사노 요코의 여러 책에 자주 등장한다. 이 글들을 무척 싫어한 사춘기의 아들은 엄마에게 화를 내며 자신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사노 요코는 이를 승낙한다. 사노 요코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그녀가 남긴 원고를 살펴보다가 “큰맘 먹고” 2015년에 『자식이 뭐라고』를 출간했다. 엄마 못지않은 당찬 성격을 가진 겐은 “이 이야기는 사노 요코가 일방적으로 쓴 나에 대한 기록이다”라고 덧붙이며 애정 섞인 불만을 빼놓지 않는다.



“뭐, 괜찮겠지. 어쨌거나 활력이 넘치니까”
아들의 짝사랑에서 처음 술 취한 날까지 관찰력


“엄마, 얘기해줘.” “무슨 얘기?” “옛날 옛적에.” “옛날 옛적에는 전부 했는걸.” “그래도 옛날 옛적에 해줘.” “옛날 옛적에, 시미즈의 할머니가 말이야.” “응? 우리 할머니?” “맞아, 시미즈의 할머니가 어린애였을 때.”
“우와, 할머니 어린애였어?”
-23쪽


『자식이 뭐라고』에는 겐이 아이일 때부터 사춘기에 접어들 때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들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자신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사노 요코가 특유의 재치로 꼽은 아들 성장의 명장면이 이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천방지축 겐은 쑥쑥 큰다.
겐은 누가 봐도 착한 아이는 아니다. 괴성에 가까운 언어로 원숭이처럼 소리를 질러대고, 이쪽저쪽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항상 매달려 있다. 학교에서 하루에도 다섯 번은 지적을 받고, 검도장에서 얻어맞고 실신하기도 한다. 학교 선생님이 눈을 감으며 “넌 대체 왜 그러니?”라고 중얼거리면 겐은 그걸 흉내 낸다.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고, 같은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절친동맹’을 맺고 평생 배신하지 않기를 약속한다. 한 시간 넘게 신나게 달려가서 몰래 사온 술을 마시고, 반항기에 접어들어 엄마를 지독하게 노려보고……. 사노 요코는 자라나는 아들의 가능한 많은 모습을 봐두려고 했고,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남겼다.


아들은 주먹 쥔 손으로 눈을 북북 문질렀다. 중학생 남자아이가 운다. 어쩌면 부모 앞에서 우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잘 봐두지 않으면 손해일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 운전하며 아들을 곁눈질했다.
-85쪽



“와, 그런 거야? 난 네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특별한 방식


그녀가 만약 지금 이 이야기의 뒷부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하다. 과장과 허풍을 한층 더 교묘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더욱 많은 낯선 아줌마들이 내가 모르는 나와 친척처럼 되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원고지를 팔랑팔랑 넘겼다. 모든 행에 과장과 허풍이 어른거린다. 거봐, 역시. 이런 게 싫다니까.
-「후기를 대신하며」에서


아들 겐은 현재 일본에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며, 사노 요코와 호흡을 맞추어 다양한 그림책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사는 게 뭐라고』『죽는 게 뭐라고』에 종종 등장해서 내뱉는 겐의 독설은 사노 요코에 버금간다. 의기양양하게 죽음을 고대하는 엄마에게 “요즘 죽을 의욕이 가득하네?” 하고 대꾸하는 아들. (이때 겐은 엄마의 장례식 때 할 말을 미리 생각해둔다.) 침대 반경 50미터 안에서 생활하며 “행복하다!”고 외치는 사노 요코에게 “누구라도 엄마처럼 지내면 행복하겠지”라며 빈정거리는 겐. 그러다 보니 사노 요코과 아들은 자주 부딪히며 싸운다.


내 아들이 정이 많은 아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다정하지 않은 아이라면, 그건 내 다정함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내가 다정한 인간이라고 자신할 수 없어진다.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아들을 사랑하지만 내 사랑이 충분하고 적절한지 확신할 수 없다.
-112~113쪽


사노 요코는 암보다 우울증이 더 괴로웠다며 “나는 아들이 없었다면 진작 죽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살한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땐 아들이 내 생명을 구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겐은 엄마의 유품에서 짧은 메모가 아닌 상당한 매수의 원고지에 적은 자신의 이야기 『자식이 뭐라고』를 찾고는,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했을 것”이라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러고는 “이 글에 비치는 과장과 허풍이 그녀 안에서는 모두 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 발 양보한다.
겐은 그의 방식으로, 사노 요코는 그녀의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사노 요코가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책을 읽는 동안 슬픔과 기쁨, 행복과 좌절이 와 닿는다. 원고지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 장면 장면에 사노 요코의 마음이 담겨 있다.


“엄마, 그거 알아? 아까 ○○가 베란다에서 계속 바깥쪽 보던 거. 오랫동안 보던데, ○○는 무슨 생각 했을까?” 원숭이처럼 소리를 질러댔던 아들은 그녀를 쭉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아들을 한 인간으로서 신뢰하고 싶어졌다.
-114쪽


사노 요코는 어린 아들을 당당한 인격체로 인정하며 겐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그 마음에 가만히 다가간다. 사노 요코는 ‘원숭이’ 아들로 하여금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남을 원망하는 일마저도 실컷 해보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응원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의 원제가 ‘내 아들은 원숭이였다私の息子はサルだった’임을 생각하면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원숭이로 지칭한 작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이기호는 “엄마로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불안하게 보냈으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했을까”라고 하며 사노 요코가 책에 적지 않은 마음을 살핀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 사노 요코.
『자식이 뭐라고』에서 독설을 내뱉는 ‘쿨한’ 작가의 따뜻한 면모, 뭉클함으로, 애틋함으로, 공감으로 바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작가가 가장 사랑한 존재에 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추천사


나는 어린 남자아이들이 ‘원숭이’ 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내아이들이란 한국이나, 일본이나, 저 먼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나, 하루 종일 어딘가에 매달려 있거나 이쪽과 저쪽 사이를 방방 뛰어다니거나,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로, 괴성으로, 이야기하는 존재들이 맞다. 이런, 우리가 원숭이를 낳았다니! 우리가 원숭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니! 어쩌면 우리는 그 사실이 불안해, 그토록 그들을 막아서고 쫓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엄마 사노 요코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원숭이로 하여금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남을 원망하는 일이나 짓궂은 일마저도 실컷 해보기를 바라고, 또 실제로 그것을 응원하며 긴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엄마 사노 요코는 그 시간들을 얼마나 불안하게 보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책하고 의심했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시간들은 따로 문장으로 적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실컷 해본 원숭이만이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도 실컷 궁금해할 수 있다고 사노 요코 특유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러니, 이제야 나도 알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원숭이들이었구나, 무언가를 실컷 해보지도 못했기에, 누군가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원숭이들. 엄마 사노 요코가 그런 우리들을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 그것이 바로 ‘자식이 뭐라고’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