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 시인 베이다오가 사랑한 시 101편
탁하고 괴로운 세상, 청춘에게 시를 권한다는 것

 

베이다오北島는 수식어가 여럿 필요하다. ‘북쪽의 섬’이라는 뜻의 필명을 가진 시인, 건설 현장에서 쇠를 두드리던 철공 노동자, 지하 간행물 형태로 창간했던 시 잡지 <오늘今天>을 통해 중국 현대시사에 새로운 시의 기치를 세운 시대의 기수, 톈안먼 광장에 대자보로 혹은 학생들의 음성으로 널리 읽혔던 시구 “비열함은 비열한 사람의 통행증,/ 고상함은 고상한 사람의 묘비명”의 주인공, ‘국가에서 해고당한 사람’으로 온 세계를 방랑한, 여전히 이국에 머물고 있는 ‘동양의 나그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작가. 그리고 초등학생 아들에게 아들이 읽었으면 싶은 시를 손수 골라주는 아버지. 그가 바로 베이다오다.
이 책은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 베이다오가 아들에게 주는 101편의 시를 엮은 시선집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시 낭송대회에 참가해 읊게 될 시의 조악함에 놀란 시인은 그날 결심한 뒤 이삼 년간 노력하여 세계 시 70편과 중국 시 31편을 직접 고르고 번역하였다. 예이츠, 프로스트 등 널리 알려진 영미권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의 저항가요, 타고르의 명상시, 비서구권의 서정시까지, 음악성, 감성, 고전성을 고려하여 선별한 이 다양한 시들은 “아픈 역사를 살아온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네는 지혜와 희망의 편지”(나희덕 시인의 추천사 중에서)로서 뜻깊다. “간결한 언어로 진실을 꿰뚫는 시들과 리듬감 있게 말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시들을 읽다 보면 그가 물려주고 싶은 자산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역사의 상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에 짓눌린 중국의 청춘뿐만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세태어가 자조처럼 번지고 불행에 익숙해져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 시들을 권하는 노시인의 마음이 이심전심 전해온다.

 

삶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행운에 빗대어 시를 논하자면 시는 마치 횃불에 불을 당기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시의 빛이 돌연 사람을 깨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베이다오, 「서문을 대신하며」에서

 

 

블레이크, 타고르, 릴케, 레르몬토프, 페소아, 로르카, 보르헤스, 네루다, 그리고 밥 딜런까지
정확한 번역으로 읽는 세계 명시선

 

베이다오가 선별한 101편의 시는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로 시작해 중국의 요절 시인 하이즈海子로 끝을 맺는다. 익숙하게 접했던 영미권 시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나 가나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국가의 이른바 ‘국민 시인’이라 할 이들의 명시편들을 한데 엮었다. 이에 이 시선집은 정확성을 기하고자 중국어권 시를 제외한 시편들은 언어권별로 해당 언어 전문 번역가가 번역하였다.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등 해당 언어 전문 번역가는 다수의 원문 판본 가운데 가장 신뢰성 있는 판본을 택했고 중국어 번역본과의 대조를 통해 오류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베이다오가 고른 세계 명시들의 의미를 최대한 정확한 원문을 옮기는 것으로 답한 이 시선집으로 말미암아 베이다오가 선별한 기준이기도 했던 시의 음악성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시란 핏속에 침투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정확하고 유려한 시편을 육성으로 함께할 수 있다.

 

즐거움 없는 나날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 단지 견디는 것이었다. 즐겁지 아니하면/ 제아무리 산다 한들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고, 마시고, 미소 짓는 것을 고민하지 말라./ 그대가 만족한다면, 웅덩이 물에 비친/ 해의 잔영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소한 것들에 주어진 기쁨을 위해/ 그 어떤 운명이든/ 하루도 거부하지 않는 이의 행복이여!
-페르난두 페소아, 「즐거움 없는 나날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 전문 

 

한편 중국에서는 이 시편들의 낭송 앱까지 만들어져 아이들과 부모로부터 열띤 참여를 보였다고 한다. 시를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 본연의 음성으로 함께 읽고 새길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된 것이다.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고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
삶에 불을 당기는 지혜와 희망과 위안의 시편들

 

2010년 ‘창원KC 국제시문학상’의 수상자로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베이다오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날로 번영해가는 물질주의 아래 종래 겪어보지 못한 혼돈과 곤혹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시詩의 영혼이 소멸해 산송장이 된 까닭이라고. 또 묻는다. 우리가 후대에 남겨줄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의 중요성을 다시금 역설한다.

 

창조성과 상상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로서의 시가는 모든 계통적인 지식과 언어행위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역사상의 모든 결론들에 대해서도 질문합니다. 만물에 대한 그 어떤 권위적 명명에 대해서도 질문합니다. (…) 이 한바탕의 투쟁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확정적입니다. 바로 시詩가 우리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 ‘창원KC 국제시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후대에 남기고픈 자산에 대해 베이다오는 단호하다. 마오쩌둥 어록만을 외우던 자신들의 세대가 견뎌냈던 정신적, 문화적인 공황을 후대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까닭일 터다. 이는 상처를 입고 아픔을 겪었던 어른들이 아이들만은 그 질곡으로부터 구해내고 싶은 절절한 마음이다. 하여 표제 시이자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중국의 영원한 청년 시인 하이즈의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는 시 자체로 의미가 깊다.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장작을 패거나 세상을 돌아다니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집, 따듯한 봄날 꽃이 핍니다// 내일부터는 모든 친척들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들에게 나의 행복을 알리고/ 그 행복의 번뜩임이 내게 알려준 것들을/ 모든 이에게 알리겠습니다/ 모든 강줄기 모든 산봉우리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낯선 이들의 축복도 빌겠습니다/ 당신의 앞날이 찬란하길 바라고/ 당신에게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부부가 되길 바라며/ 당신이 이 티끌세상에서 행복하길 바랍니다/ 나는 그저 따듯한 꽃 피는 봄날 바다를 마주하길 바랍니다
-하이즈,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전문

 

고단하고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금 아이들에게, 한때 아이였던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시편들이 여기 있다. 탁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고금의 이러한 노래들이 있어서, 귀 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보아서 지혜와 위안의 양식으로 삼았음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시들과 함께 지금을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탁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그 아득한 배음背音에는 고금古今의 이러한 노래들이 있어서, 귀 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보아서 지혜와 위안의 양식으로 삼았음을 새삼 생각합니다. 우주와 진리의 맥박에 관한 크고 고운 교과서라 할 만합니다.
-장석남 시인의 추천사 중에서

 

 

추천사

 

오랜만에 시의 성찬 앞에 나는 앉아 있습니다. 따뜻한 아궁이 앞에서 고요한 불을 뒤적이듯이 시를 뒤적입니다. 불이 그렇듯 시의 따스한 온기와 빛과 그들의 스러짐과 깨어남을 느낍니다. 불빛 속에서 나는 그 시들과 어깨동무라도 한 듯합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우주를 맴도는 원무圓舞를 추는 듯한 흥겨움에 젖습니다. 시란 과연 이런 것이었지. 그랬지……. 눈에 익은 시들과 함께 처음 만나는 시들도 하나같이 베이다오가 고백하듯이 나의 마음속 ‘횃불에 불을 당기는 것 같은’ 전율로 변합니다. 탁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그 아득한 배음背音에는 고금古今의 이러한 노래들이 있어서, 귀 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보아서 지혜와 위안의 양식으로 삼았음을 새삼 생각합니다. 우주와 진리의 맥박에 관한 크고 고운 교과서라 할 만합니다. 가방에 한 권의 시집을 넣어야 할 때 나는 이 책을 넣을까 합니다.
장석남 시인

 

베이다오를 몇 번 만난 적 있다.  ‘북쪽의 섬北島’이라는 필명처럼, 톈안먼 사건 이후 그는 오랜 기간 타지를 떠돌며 외롭게 시를 써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눈동자는 고요하면서도 흔들리는 것 같았고, 굳게 닫힌 입술은 수많은 시를 머금은 것 같았다. 그는 「대답」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이 세상에 올 때, / 종이와 밧줄과 그림자만 가져왔다”고. 그가 젊은 세대를 위해 시를 골라 펴냈다니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중국과 세계 곳곳의 시들을 아우르고 있는 이 시집은 아픈 역사를 살아온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네는 지혜와 희망의 편지다. 간결한 언어로 진실을 꿰뚫는 시들과 리듬감 있게 말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시들을 읽다 보면 그가 물려주고 싶은 자산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내릴 만큼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지만, 그를 키운 것은 소박하게 반짝이는 이 시편들이었을 것이다. “시는 마치 횃불에 불을 당기는 것과 같다”는 베이다오의 말처럼, 삶에 불을 당기는 이 한 편 한 편이 미래의 시인들을 또한 낳게 될 것이다. 
나희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