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소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
유년의 순수함을 기리며 자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마법사들』은 마음산책이 열한 번째로 출간하는 로맹 가리 책으로, 그의 소설 중에서 특히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마법사들』이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1973년 로맹 가리는 큰 분기점을 맞았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책상에 앉으면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온다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필력 ‘탓’에 평단과 독자는 한동안 그의 작품들에 “다 안다는 듯 식상한 눈길”을 던졌고, 순수한 열정을 이해받지 못한 로맹 가리는 이를 괴로워했다. 『마법사들』은 이런 로맹 가리가 절치부심하여 쓴 장편으로, “도입부 첫 문단만도 열다섯 번이나 다시 썼고, 수기 원고를 거듭 수정한 뒤 타이핑한 원고마저 가필한 곳이 너무 많아 다시 타이핑했으며, 마지막 교정지까지 수정을 거듭하며 세심하게 공을 들”인 소설이다.(「옮긴이의 말」) 결국 로맹 가리는 『마법사들』로 다시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이로써 만족하지 않고 내친김에 이듬해인 1974년부터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을 앞세워 작품만으로 공쿠르상을 타내는, 익히 알려진 커다란 스캔들로 당시 문단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사건의 전초전이자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마법사들』이다. 뒷날 로맹 가리의 전기를 쓴 도미니크 보나는 『마법사들』을 로맹 가리의 소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꼽았다.
『마법사들』이 각별히 공들인 소설임은 당시 로맹 가리의 개인사와 작품 자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1970년,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린 아내 진 세버그와 낳은 딸이 이틀 만에 죽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는데 그 뒤에도 한동안 그녀를 돌보았다. 그러다 그녀가 1972년 재혼하자 마침내 그간의 고단함을 떨쳐내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때 그가 주목한 것이 언제나 위로가 되어준 글쓰기, 그리고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었다. 요컨대 『마법사들』은 로맹 가리의 본바탕과 지향점을 보여주는 더없이 ‘로맹 가리적’인 소설로, 그의 재량이 마음껏 발휘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로맹 가리 자신뿐 아니라 아들에게 바치는 작품으로도 알려졌다.


로맹 가리는 “맹목적으로 걸작만을 추구하는, 소설의 하인”을 자처한다. 자신에게 소설은 “만병통치약”이어서 비현실을 통해 현실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뛰어난 이야기꾼” “탁월한 거짓말쟁이” “세상을 지어내는 발명가”가 되길 바랐고, 자신의 모든 걸 소설에 쏟았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내가 타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나의 소설들”이라고 말했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고백에서도 “작가는 자기 자신의 최고의 것을, 자기 상상에서 끌어낸 최고의 것을 책 속에 담고 그 나머지 ‘한 무더기의 보잘것없는 비밀’은 홀로 간직”한다고 말했다.
─「옮긴이의 말」



베네치아 광대 집안 마지막 후손의 기록
모험, 농담, 사랑이 담긴 지독한 성장담


『마법사들』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뿌리를 두었지만 마녀사냥과 흑사병에 쫓겨 러시아로 이주한 광대 집안의 마지막 후손이 먼 훗날 소설가가 되어 돌아보는 가문의 연대기이자 성장담이다. 회고의 형식을 띤 이 소설에서 주인공 포스코 자가는 풍자와 웃음으로 좋은 세상을 노래하던, 진지함과 폭압과 혁명과 박해 때문에 이제는 사라져버린 광대와 마법사의 한세상을 자신의 집안이 겪은 일들로써 추억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때는 예카테리나 2세의 통치기 전후인 1760년대. 광대의 훌륭한 자질인 순수함을 지닌 포스코 자가는 라브로보 숲에서 집에서 괴물을 낚고 나무와 대화하는 등 마음껏 상상에 젖어 살며 광대로서의 재능을 일깨우는 중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전통대로 집안의 본적지인 베네치아에서 신부를 데려오는데, 포스코 자가는 자신보다 고작 세 살 반 많지만 여러 큰일을 겪으며 살아온 어린 새어머니에게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품고서 애틋한 유년을 보낸다. 하지만 박해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정착한 이곳 러시아는 이즈음 귀족과 민중의 갈등이 첨예했고 결국 농민반란의 불길을 피하지 못한다. 두 ‘진지한’ 계급의 충돌에 말려들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모함당하고 농락당하고 인간의 잔혹함만을 목격한 자가 집안은 마침내 춥고 넓고 삭막한 러시아 땅을 떠나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이따금 가죽 가방에서 귀한 천체 안경을 꺼내어 여름 하늘이 내주는, 동양 태수처럼 호사스러운 다이아몬드와 황금 먼지를 응시하는 데 몰두했다. (…) 황소와 암소의 울음소리는 광막한 대초원에 친근하고 마음 놓이는 실체를 제공했다. 우리 하인들은 언제나 가장 먼저 잠이 들었다. 그 순박한 영혼들은 시보다는 피로에 더 민감했기 때문이다. 민중은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이때는 별똥별들의 계절이었는데, 나는 왜 별똥별들이 익은 과일과 같은 달月을 골라서 떨어질까 궁금했다. 똑바로 누운 채 나는 하늘을 헤매고 다녔다. 은하수를 거닐었고, 나무에 오르듯 큰곰자리에 기어올랐고, 곰자리에 오르다가 손바닥에 생채기가 났고, 시리우스를 자주 찾았고, 너무 겸손해서 내게 이름을 말하지 않는 이름 모를 별들을 발밑에서 주웠다. 나는 조개 소리를 들을 때처럼 그 별들을 귀에 대고 그들의 속삭임을 기다렸고, 사람들이 대개는 장난기 많은 걸 잘 알지 못하는 쌍둥이별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가지고 저글링을 했다. 그렇게 나는 한창 꿈을 꾸다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면 그토록 눈길을 사로잡으려고 안달하며 하늘을 수놓았던 반짝이는 양탄자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289~290쪽


『마법사들』은 베네치아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광대 집안사람들이 격변기의 소요 속에서 인간에 실망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과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린 포스코 자가의 노력과 인간 군상의 모습을 로맹 가리의 유머러스하고 예리하되 때로 동화 같은 문장으로 그린다. 그런 포스코 자가의 유년을 다채롭게 만드는 건 개성 있는 수많은 인물과 그 에피소드다. 대중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환상임을 알았던 할아버지 레나토 자가, 신중하고 냉철하지만 제 능력을 감추고 위악을 부리던 아버지 주세페 자가, 가업을 등지고 혁명가로서 현실에 투신한 큰삼촌, 거세가수가 되어 예술에 귀의한 작은삼촌, 어두운 세상에 광대가 되어 그저 웃음을 주는 것으로 족하던 큰형, 만성 변비로 인한 히스테리로 온 러시아를 긴장시키던 예카테리나 2세……. 로맹 가리는 지칠 줄 모르는 이야기꾼답게 각양각색의 방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화려한 직물로 짜낸다. 유머, 풍자, 사랑, 모험, 역사 등 크고 작은 일화들을 그만의 호흡 긴 문장과 고유한 수사에 실어 점묘화 같은 스토리텔링의 마법을 부린다.



역사의 틈새를 메우는 로맹 가리의 상상력
실제와 허구를 뒤섞는 마법


로맹 가리는 『마법사들』에 큰 역사적 사건을 빌려와, 거시사의 사각지대에서 사실과 허구를 섞는 재기로 더욱 오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소설은 주인공 포스코 자가가 어렸을 적인 1760년 이후를 회상하는데, 실제로 1762년은 예카테리나 2세가 사이가 안 좋던 남편 표트르 3세를 몰아내고 여제로 등극한 시기다. 하지만 그녀가 자기 기반을 확고히 하려고 귀족 계층의 특권을 확대한 나머지 사회적 불평등은 악화했고, 결국 1770년대 초 푸가초프의 주도하에 농민반란이 일어나 예카테리나 2세의 계몽 절대주의는 큰 위기를 맞았으나 농민반란은 몇 년 만에 진압됐다. 소설 속에서 자가 집안은 실제로 훗날 화장실에서 죽었다는 예카테리나 2세의 만성 변비를 치료해 환심을 얻고 평안한 길을 걷지만, 그 탓에 농민반란군에 잡혀가서는 조롱과 모욕을 당하며 인간의 잔혹함을 목격하게 되고, 이 곤욕을 치른 뒤에는 귀족들로부터 농민반란군에 부역했다는 음해를 당한다. 어느 편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자가 집안사람들은 결국 러시아를 떠나기로 하는데, 로맹 가리는 이처럼 현실의 빈틈을 넘치는 재기와 상상력과 유머로 메우며 어디엔가 실재했을지 모를, 역사에 남지 않은 인물들의 삶을 혹독하지만 애틋하고 순수한 성장담으로 그려낸다.


예카테리나의 변비는 만성 질병이었는데 심할 때는 온 나라가 괴로움에 시달렸다. 역사가 그루친은 변비가 길어지면 국가적 재앙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온 러시아의 여제는 똥을 누려고 지독히도 격렬하게 용을 쓰다가 뇌졸중을 일으키고 변기 위에서 죽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최후의 방책을 예비로 준비해두었다. 유명한 유다의 사자 지부 소속의 어느 독일인 학자가 그에게 보내준 새로운 탕약이었는데 어수리, 쇠뜨기, 마디풀, 발트 해의 몇몇 생선 지방에서 추출한 기름을 섞은 것이었다. (…) 이어지는 시간 동안,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나는 아버지가 불안에 사로잡혔다고 느꼈다. 우리의 운명은 전적으로 여제의 장에 달려 있었다.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