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손끝이 가닿는 당신의 머리맡에 이 시집을 놓아드리고 싶다”
「섬진강」의 김용택 시인이 읽어주는 김소월,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시!

 

  김용택 시인이 김소월과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시들을 읽고 감상글을 덧붙인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시리즈를 펴낸다. 각 시인별로 한 권씩, 총 다섯 권이 한번에 출간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대표 시인의 시, 「진달래꽃」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서시」 「오감도」 「오랑캐꽃」뿐만 아니라 김소월의 「엄숙」이나 이용악의 「집」처럼 비교적 덜 알려진 시들까지 포괄한 시선집이다.
김용택 시인은 기존의 유명한 시들을 다섯 시인의 ‘정면’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다섯 시인에게 고정시켜놓은 시대적, 시적, 인간적인 부동의 정면을 잠시 걷어내고 그들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섯 시인이 평생 동안 펼쳤던 시세계의 정면뿐 아니라 측면과 뒷면까지, 다양한 면모를 두루두루 살펴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시의 편편마다 덧붙인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은 김소월과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시로 가닿는 징검돌이자 디딤돌 역할을 한다. 조심조심 디뎌 밟듯 시로 향하는 그의 글은, 자체로 또 한 편의 시로 읽힌다. 시를 해체하거나 해설하지 않고, 시와 가볍게 노닌다. 그리하여 분석하고 공부하는 시가 아닌, 마음에 와닿는 대로 읽고 느낄 수 있도록 감수성을 확장시킨다.


 

“사랑에는 먼 훗날이 없다. 땅에 닿기 전에 달려라”
「진달래꽃」에서 「엄숙」까지, 김소월의 시를 읽는 시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첫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민요의 율격으로 담아낸 김소월의 시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왔다.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김소월』에서는 김소월의 시 40편을 가려 뽑은 후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을 더했다.
김용택 시인은 김소월을 두고 “100여 년 전의 시인이지만 밤이면 내 머리맡에 떠 있는 한 식구 같은 달”과 같다고 표현한다.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곁을 차지하는 달처럼, 김소월 시인이 그려내는 정서는 우리의 무의식에 친숙하게 배어 있다.

 

소월의 시는 정말 가만가만 한 자 한 자 한 구절 한 구절 자세히 읽어야 한다. 그래도 아무 감정의 물결이 일지 않는 사람은 죽어도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몇 번씩 곱씹어 읽어보라. 음식이든 인생이든 늘 곱씹어야 맛이 우러난다. 「진달래꽃」은 그런 곱씹는 시다. -33쪽

 

  김용택 시인은 특유의 다감한 어조로 김소월의 시를 읽는다. 그러나 김소월의 시를 이별과 그리움, 한恨의 정서로만 읽는 것은 경계한다. 「초혼」을 읽고 나서는 “단순하게 읽으면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이 구절만 남는다”라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댈 땅이 있었더면」을 읽고는 “나라가 없다는 말이 그저 은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면 마음이 어떨까 (…) 그렇다면 빼앗긴 나라의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쓸까”라고 물으며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시인의 마음으로 우리를 데려가기도 한다.

 

소월의 시는 사람들이 다 쉽다고 한다. 다 안다고 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소월의 시를 다 모른다. 말하자면 소월의 시가 우리들의 마음을 이렇게 헤집어놓을지를. -31쪽

 

 

“백석의 시는 가만가만 징검돌을 디디며 징검다리를 건너가듯 읽어야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추야일경」까지, 백석의 시를 읽는 시간

 

  평안도 방언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데다, 소소한 일들을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나가듯 시를 쓴 백석.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백석』에서는 백석의 시 34편을 가려 뽑은 후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을 더했다.
김용택 시인은 백석을 떠올리면 이용악이 따라오고, 이용악을 떠올리면 백석이 따라온다고 한다. 그리하여 백석과 이용악의 시선집 맨 앞부분에는 둘을 나란히 두고 차이를 이야기하는 글을 같이 실었다. 이용악이 “육성”에 가깝다면 백석은 “섬세한 미성”을 지녔다고 표현한다.


용악의 시가 동편제면 백석의 시는 서편제다. 용악은 ‘바람 부는 산맥’을 넘어 덜커덩덜커덩 기차에 몸을 싣고 벌판을 간다면 백석은 강을 건너 바람 잔 들길을 걷다가 등잔불 깜박이는 큰 산 아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드는 사람이다. -20쪽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의 시를 읽는 김용택의 어조는 서정적이다. 백석 시에 자주 나오는 평안도 방언을 두고 “백석의 모든 시에는 우리가 모르는 지명이나 방언이 많아 늘 검색을 해야 한다”고 꼼꼼히 따져 읽다가도, “읽다가 잘 모르는 것은 그냥 넘겨도 시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라며 한 편의 시 자체로 감상한다. 특히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을 읽고, 롱 테이크로 촬영한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표현한 부분은 시 특유의 흥성거리는 풍경을 더욱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좋은 시는 다 그림이다. 이 시는 장면 장면이 다 풍속화다. 명절날 친족들이 모여 닭이 울 때까지 늦잠 자는 모습도,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화면 가득 펼쳐지는 영상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 렌즈를 고정시켜놓고 오래 촬영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렇게 하나의 숏을 길게 촬영하는 것을 롱 테이크라고 한다. 백석의 시를 읽을 때마다 롱 테이크로 촬영한 장면을 나는 연상한다. -84쪽



“깨끗한 가난, 그리고 윤동주의 가난한 주머니를 가진 우리의 행복”
「서시」에서 「돌아와 보는 밤」까지, 윤동주의 시를 읽는 시간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깨끗한 영혼의 시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윤동주』에서는 윤동주의 시 52편을 가려 뽑은 후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을 더했다. 김용택 시인은 윤동주의 시를 두고 “어른이나 어린이가 읽어도 되는 시와 동시가 많다”고 말한다. 윤동주의 맑은 영혼이 고스란히 비치는 시들은 어른과 어린이가 따로 읽는 시가 아닌, 누구나 읽어도 좋은 윤동주의 ‘착하고 선한 시’인 것이다. 그의 맑고 선한 시를 대할 때마다, 젊은 나이에 옥고를 치르다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의 삶과 고통이 마음 저릿하게 다가온다.

 

나라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평생 암흑의 시대를 그는 살았다. 윤동주의 삶이 우리들에게 별처럼 떠 있는 것은 그의 순결한 영혼이 당한 고통이 지금도 우리 마음에 고스란히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18쪽

 

  윤동주의 시를 읽는 김용택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윤동주 시의 풍경과 김용택 시인이 나고 자란 농촌에서의 삶이 겹쳐지면서, 두 시인의 삶 속으로 가만히 들어가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를 공부하는 것이 아닌, 시를 감각하고 느끼며 시의 세계로 들어가 합치되어보는 것이다. 또한 윤동주의 생애를 아프게 바라보는 김용택 시인의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순정한 시인들의 영혼을 마주하며 읽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를 감상하는 행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 있게 세상을 비웃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긍정한다”
「오감도」에서 「이상한가역반응」까지, 이상의 시를 읽는 시간

 

  우리 현대시사의 문제적 시인이자, 1934년에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해야 했던 시인이 이상이다.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이상』에서는 이상의 시 44편과 「오감도」의 작가의 말을 합한 후,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을 덧붙였다.


이상은 지금도 미래다. 형식이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이상은 믿는다. 질서의 해체는 시와 시인의 생명이다. 어떤 질서도, 질서는 인간의 영혼을 좀먹으며 낡아간다. 그는 기존의 권위가 싫었다. 타파가 그의 일생이었다. 그는 타파 그 자체를 질서로 삼았다. -16쪽

 

  김용택 시인은 이상의 시가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뜨겁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전율한다. 또한 1910년, 한일병탄의 해에 태어나 1937년에 죽은 이상의 생애를 두고 아픈 시기에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간, 슬픈 사람이었다고 표현한다. 때론 이상의 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하고, “무수한 생각들이 일어나 달리고 뛰고 난다”며, 숨가쁘게 이상의 호흡을 따라가기도 한다. 읽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암호 같은 이상의 시들은, 김용택 시인의 시선을 거치면서 혼돈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젊은 영혼의 생생한 고백으로 읽힌다.

 

그의 응축된 짧은 생, 시와 연애와 폐병은 우리가 살아냈던, 그 시대의 ‘종합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모든 어둠이 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134쪽



“가락과 율동과 리듬이 산과 산을 타고 넘어가는 눈보라 같다”
「오랑캐꽃」에서 「길」까지, 이용악의 시를 읽는 시간

 

  함경도에서 태어나 만주 유이민들의 힘겨운 삶을 직시했던 이용악. 그의 시는 호방하면서도 삶의 어려움과 질곡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이용악』에서는 이용악의 시 39편과 두 번째 시집인 『낡은 집』의 꼬리말을 가려 뽑은 후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을 더했다.
김용택 시인은 백석을 떠올리면 이용악이 따라오고, 이용악을 떠올리면 백석이 따라온다고 한다. 그리하여 백석과 이용악의 시 선집 맨 앞부분에는 둘을 나란히 두고 차이를 이야기하는 글을 같이 실었다. 백석이 “섬세한 미성”이라면, 이용악은 “육성”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용악의 시가 동편제면 백석의 시는 서편제다. 용악은 ‘바람 부는 산맥’을 넘어 덜커덩덜커덩 기차에 몸을 싣고 벌판을 간다면 백석은 강을 건너 바람 잔 들길을 걷다가 등잔불 깜박이는 큰 산 아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드는 사람이다. -20쪽

 

  김용택 시인이 “육성”이라고 표현한, 이용악 시에 드러나는 호방한 기질은 독자를 단숨에 매료시킨다. 김용택 시인 역시 힘찬 기운과 리듬감이 돋보이는 「전라도 가시내」를 읽은 뒤엔 감탄사를 지르며 “‘남실남실’ ‘천 리 천 리 또 천 리’ ‘우줄우줄’은 함경도 사나이들의 더디고 느리고 큰 발걸음이다”라고 한다. 김용택 시인이 이용악의 시집 『낡은 집』의 ‘낡은’ 복사본을 읽고 또 읽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자못 흥미롭다. 읽고 또 읽다가 허리가 아프면 돌아누우며 계속 읽었다는 고백을 보고 있노라면, 옛 시인과 현재의 시인이 글을 통해 시공간을 가로질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이다.

 

낯선 시였다. 누워 읽다가 등이 아프면 엎디어 읽다가 허리가 아프면 모로 누워 읽고, 오른쪽 어깨가 괴이면 왼쪽으로 돌아누워 시를 읽었다. 나는 가난했지만 배부름과 등 따신 행복에 젖곤 했다. 창호지 문으로 새어든 달빛이 방 안 가득하였다. 나에게도 욕심 없는 시가 행복한 ‘낡은 집’이 있었다. -111쪽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드는, 시를 읽는 나날을 생각하다

 

  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시인의 눈을 통해 시를 다시 읽는 경험은 특히 귀하다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어봄으로써, 언어로 쌓아올린 정교한 시의 세계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시 전문 해설서는 아니지만, 외로움과 번민이 깊어가는 밤에, 손이 닿는 머리맡에 두었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위로받을 수 있는 시집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선을 좇아가며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 현대시사의 큰 시인인 김소월,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숨결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