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근화의 신작 산문, 시적인 삶의 길 

큰 것들의 평평한 세계에 가려진, 작은 것들의 풍요로운 세계


 “시 언어의 혁명적인 가능성”(이광호)을 실험하며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시 세계를 펼쳐온 시인 이근화의 산문 『아주 작은 것들이 말할 때』가 출간되었다. 등단 17년 차, 그간 네 권의 시집과 두 권의 동시집, 두 권의 산문집을 펴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작가는 22편의 글로, 다정히 삶을 헤아리는 이야기 한 권을 묶어냈다. 시집이 시인의 상상력으로 창조한 세계를 정제된 언어로 보여준다면, 산문은 순도 높은 언어를 걸러내기까지 시인의 일상과 사유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 책 역시 이근화 시의 가능성을 산문이라는 또 다른 형식으로 제시한다.

엄마이자 딸, 예술가이자 생활인이라는 무수한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시인이 단정한 사유를 선보일 수 있는 것은 상념에서 통찰로 이어지는 사유를 멈추지 않은 덕분이다. 밥하고, 네 아이를 돌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의 일과로 채워진 무감한 하루 속에서도 읽고 쓰기를 이어온 시인의 발견은 불현듯 우리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의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시인을 자극하는 것은 주로 작고 여린 존재들이다. 그 존재란 가깝게는 시인의 네 마리 ‘토끼들’(아이들)이자 시인이 만난 여성들—김혜순, 정세랑, 마르타 아르헤리치, 베아트릭스 포터 등—이 일군 창조물들이다. 시인은 “이 세계를 살아갔던 출렁거리는 여자들, 움직이는 예술가들, 발랄한 아이들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일”을 통해 여성으로서 삶의 길을 “어둠과 무지 속에서” 내보려 한다.    



다르게 살아간 여성들의 삶이 나를 들여다보게 할 때 

인간다운 삶을 상상하는 통로의 글쓰기   


『아주 작은 것들이 말할 때』의 1부 「날마다 상상하고 질문한다는 것」은 먹고, 입고, 호주머니를 뒤지는 등 생활의 감각이 선연한 글로 시작된다. 시인은 족발을 먹으며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는 딸들 앞에서 “몸 없는 발들아, 미안하다”라며 고깃덩이 이전의 동물의 몸을 떠올리고, 옷을 고르면서는 “옷이란, 우리에게 없는 세계로 가는 통로”이자 “나를 짓는 환상”임을 간파한다. 생활인으로 분투하는 와중에도 낯선 눈으로 삶을 더듬는 그의 조용한 열정은 지속된다. 


평화로운 가족들 가운데 “조용히 해 미친 양아”라고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리는 아내/엄마의 자리를 나는 안다. 가장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의심과 회의가 고개를 들고, 침묵과 고요의 시간 위에 불안과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삶 말이다. 주인공으로 살 수 없는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살지 못하는 나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꾸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_64쪽 


이러한 실존적 질문과 함께 사회적 존재로서 탐구는 2부「사랑의 다른 이름들」과 4부「다같이 잘살면 안 되나요」에서 주로 다뤄진다. 이는 시인이 애정 어린 눈으로 살펴온 여성 예술가들-김혜순, 김언희, 황정은, 정세랑, 권여선, 수전 손택, 베아트릭스 포터 등-의 삶, 작품과 함께 펼쳐지는데, 그 세계는 불평등・환경문제・소수자 차별 등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꿈꾸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를테면 김혜순의 시「피어라, 돼지」에 나타난 종을 넘나드는 태도는 동물뿐 아니라 수많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윤리로 확장되고, 정세랑의 소설「모조 지구 혁명기」는 자연과 인공, 지구인과 외계인 등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난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시인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낸 여성들의 활동에 천착하는 것은 그 안에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자유의 정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낸 낸 골딘의 사진, 어떤 포장도 없이 구멍으로서 몸을 연상케 하는 한나 윌키의 퍼포먼스는 기존 젠더 질서를 “삐딱하고 불순하게” 바라본다. 때로 기괴하고 추해 보이는 그 작품들은 여성의 몸이 처한 현실의 속악함을 들임댐으로써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틈을 발견하고, 실천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읽고 쓰는 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삐딱하고 불순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글쓰기를 제안해본다.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통로로서 말이다. 

_99쪽  



시인의 어린 날을 비추는 아이들과의 일상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하는 연민과 사랑 같은 것 


시인의 집에는 아이들 넷이 있다. 엄마인 시인은 원고 쓸 시간을 벌기 위해 자주 아이들에게 연필을 쥐여주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 흥미롭게도 현실 속 엄마는 아이들 단속에 바쁜데, 그림 속 엄마는 활짝 웃고 있거나, 큰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모두를 보듬고 있다.(본문 109쪽 그림 참조) 여기에는 실제보다는 행복한 가족을 향한 아이들의 바람이 담겼을 테지만, 그 그림들은 시인으로 하여금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하는 연민과 사랑”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시인의 통찰이 아이들의 그림에 바탕을 둔 셈인데, 이 점이 책의 본문에 아이들의 그림이 글과 함께 자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산책길에서 꽃과 나무를 꺾어 오는 아이들의 부산함은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흙을 파던 시인의 어린 시절을 되비추고, 때로 버려진 화초나 곰팡이처럼 범상한 것들도 사랑스럽게 관찰하는 아이들의 시선은 시인의 눈 못지않다. 


어리고 약한 존재들을 향한 나직한 시선과 느긋한 마음속에는 어쩌지 못하는 감동 같은 것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려는 연민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_178쪽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장환문학상 등 여러 차례의 수상 이력만큼이나 단단한 시 세계를 일구어온 작가는 하루하루 사소한 것에서 ‘시적인 것’을 길어 올려 묵묵히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와 세계에 다른 이름을 붙여가는 그 고요한 노동은 시시하고도 허약한 삶마저도 사랑으로 이끌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