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설터의 두 번째 단편집, 펜/포크너 수상작
“정확한 문장”으로 쓴 열한 편의 소설


『아메리칸 급행열차』는 마음산책이 국내에 소개하는 제임스 설터의 일곱 번째 작품이며 『어젯밤』외에는 유일한 단편집이다. 제임스 설터의 첫 번째 단편집이며, 『아메리칸 급행열차』로 설터는 1989년 펜/포크너상(PEN/Faulkner Award for Fiction)을 수상했고, “독서의 강렬한 즐거움을 아는 독자들에게 특히 어울리는 작가(수전 손택)” “설터의 글은 진귀하고 놀랍도록 아름답다(존 어빙)” 등의 찬사를 받게 된다. “위대한 소설은 전적으로 꾸며낸 게 아닌 완벽하게 알고 자세히 관찰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라고 말했던 제임스 설터. 『어젯밤』이 치정과 배신으로 폭발 직전인 한 순간을 묘파해냈다면, 『아메리칸 급행열차』는 온몸으로 폭발을 견디며 애써 삶을 이어가려는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견디는 순간, 그래서 불안하고 외로우며 수치와 증오로 뒤범벅된 순간들이 바로 그가 포착하고자 했던 ‘꾸며내지 않은’ 삶이다.
 제임스 설터는 다른 작가에 비해 유난히도 글을 쓰는 속도가 느렸다. 장편과 단편소설을 포함하여 평생에 걸쳐 단 8권의 소설밖에 쓰지 않은 그는 글을 쓰는 데에는 “완전한 고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쟁을 겪고 사고로 딸을 잃은 그가 고독 속에서 응시해야만 했던 삶을 문장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설터를 일컬어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가슴을 깨뜨릴 수 있는” 작가라 평했는데, 이는 그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쓰는 데도 얼마나 세심하게 공을 들였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초대에 응하기 전에, 시체처럼 얼굴에 화장을 하고 설터의 식탁으로 가 앉기 전에, 우리는 먼저 각오해야 한다. 우리가 실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인지 인정할 각오,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들이 한낱 달리는 기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각오, 욕망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의 육체가 실은 일 초 일 초 무참히 늙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각오, 현재가 실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라는 것을 받아들일 각오.
-김숨(소설가)



제임스 설터의 세련되고 정교한 문장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학상 수상작


설터는 <파리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단편이란 어떠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첫 줄, 첫 문장, 첫 문단. 모든 게 우리를 끌어들여야 하고 기억할 만해야 하고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메리칸 급행열차』에는 표제작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포함하여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설터 특유의 건조하고 조금은 가혹한 문장으로 사랑하고 욕망하거나, 다가오는 죽음에 속수무책인 순간들을 그린다.
 이를테면 「20분」에서 제인 베어는 사고를 당해 죽음을 앞둔 20분 동안 자신을 ‘때려눕힌’ 삶을 반추하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 애쓰며, 「흙」의 노인 해리는 ‘끝내 누워 죽지 않으려는 동물’처럼 죽음에 성큼성큼 다가선다. 「부정의 방식」과 「괴테아눔의 파괴」에는 작가라는 삶에 시달리는 중압감과 함께 유명세와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표제작이자 설터 본인이 이번 단편집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밝힌 「아메리칸 급행열차」는 급작스럽게 성공한 두 젊은 변호사가 유럽을 여행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이들의 뒤틀린 욕망과 젊은 날의 치기를 읽는 이가 아연실색할 정도의 냉혹한 문장으로 묘사하는 작품이다. 또한 「황혼」에서는 스러져가는 삶의 한가운데에 놓인 어느 중년 부인의 심리를 놀랍도록 정확하고 쓸쓸하게 그린다.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왔을 때 프랭크가 에다에게 그 문제에 관해 설명했다. 그녀는 즉시 이해했다. 싫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앨런은 바에 혼자 앉아 있었다. 달착지근한 리큐어를 마셨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부끄러웠다. 머리 위에 있는 호텔, 호텔의 복도, 조용한 방들, 이것들이 그거 말고 다른 무엇을 위해 존재하겠는가?
-「아메리칸 급행열차」,『아메리칸 급행열차』, 87~88쪽에서


『아메리칸 급행열차』의 단편들은 제각기 다른 층위의 인간상을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의 일관된 구성과 흐름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것은 인류가 공유하는 삶에 짙게 밴 어떤 상투성,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낯섦을 설터가 예리하게 간파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시간이었다. 때때로 그녀는 바다 쪽을 바라보며 아들 생각을 했다. 그 일은 오래전에 그 소리와 더불어 일어났다. 이제 그녀는 날마다 그 생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뇌리에서 아주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그들의 말이 옳았다.
-「황혼」, 『아메리칸 급행열차』, 187쪽에서



빈번히 훼손되는 소설 속의 인물들
영웅적 행위란 삶을 똑바로 보는 일


그러나 그런 낯선 기분, 낯섦이 바로 설터 문학의 커다란 장점이다. 그의 소설은 우리가 기대하는 소설 문법에서 벗어나기 일쑤여서 우리의 관습적인 독서를 끊임없이 방해한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와 플롯과 문장은 그거 말고 이걸 보라고, 그렇게 보지 말고 이런 식으로 보라고, 그 생각은 허위일지 모르니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자꾸 딴지를 거는 것만 같다.
-「옮긴이의 말」, 『아메리칸 급행열차』, 248쪽에서


설터는 섬뜩하게 빛나는 정교한 문장들로 우리가 ‘꾸며낸’ 삶의 거짓과 허위를 기어이 벗겨내고 만다. 그는 우리가 눈감고 외면했던, 고개를 돌리며 괜찮은 척하려 했던 순간들을 끝내 똑바로 보게 만든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모골이 송연해지고 자꾸 어딘가로 숨고만 싶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숨지 못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작가이자 편집자인 필립 구레비치는 “설터는 부단히 단편소설의 형식을 새롭게 한다”라고 말하고 “그의 작중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사는 세상은 빈번히 훼손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영웅적 행위를 믿는 작가다”라며 우리가 결국 설터의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설터가 믿은 영웅적 행위는 결국 자신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었다. 사는 게 무서워 뒤로 숨지 않는 일, 허리를 꼿꼿이 펴고 훼손된 삶을, 부서지는 시간을 견뎌내는 일. 그것이 설터가 본 영웅적 행위이자 곧 우리네의 모습이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도와줘요,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누군가 올 것이다. 와야 했다. 그녀는 겁을 집어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인생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줄 알았다. “삶은 우릴 때려눕히고 우린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게 전부야.” 아버지는 단 하나의 좋은 점만을 인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버지가 듣는다면, 당신의 딸은 단지 거기 누워 있을 뿐이라는 말만 들을 것이다. 그녀는 집에 가려고 노력해야 했다. 아주 조금밖에 가지 못하더라도. 몇 야드밖에 가지 못하더라도.
-「20분」, 『아메리칸 급행열차』, 50쪽에서


추천사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읽는다는 것은 삶의 보이지 않는 흉터를 보는 일과 같다. 평소엔 화장으로 두껍게 가렸던 깊은 상처를 민낯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용서 없는 조명 아래 드러난 삶을 바라보며 우리는 부끄러움과 함께 해방감을 맛본다. 부끄러운 해방감, 괴로운 청량감. 제임스 설터는 우리가 경험하지만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장면화해낸다. 과장된 미소처럼 어색한 삶의 순간들이 나의 모습과 겹치며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설터의 소설에는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헛헛하면서도 외롭고 아픈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 과정에서 고립감과 고독감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의 소설이 주는 위안의 힘이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확인하려고 설터의 소설을 읽는지도 모른다.


강유정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