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설터의 국내 첫 산문
“작가의 작가”가 쓴 소설 같은 여행기


작가는 낯설고 이질적인 경험에서 글감을 얻고, 그래서 많은 작가가 디아스포라를 자처하며 여행자에 이방인으로 나섰다. 제임스 설터도 그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를 몰았던 굵고 선한 기억이 각인된 이래 미국,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살며 공허함을 채웠고 그 경험들을 동력 삼아 소설을 썼다. 언젠가 <파리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문제예요. 어떤 의미에서 작가는 늘 뭔가를 알려주는 유랑자이고 아웃사이더여서 계속 이동하는 게 삶의 일부랍니다.”
『그때 그곳에서』는 『어젯밤』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 『올 댓 이즈』 『사냥꾼들』 등으로 “작가의 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제임스 설터의 국내 첫 산문이다. 원체 다작을 하지 않고 자기 경험을 소설로 승화할지언정 자아를 앞세우는 글을 자제했던 작가임을 떠올려볼 때 이 여행기는 소설 작품과는 다른 고유함이 있다. 하지만 『그때 그곳에서』를 더 고유하게 만드는 건 이 책이 여행과 장소와 사람을 담은 자전적 기록이면서도 그의 소설과 같은 정서를 담았고 또 소설처럼 읽힌다는 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의 도시와 시골을 걷고 머물며 쓴 열여덟 편의 산문에서 제임스 설터는 과거와 현재에 수시로 잠기며 세월 탓에 덧없는 환상처럼 다가오는 사람들과의 일을 떠올리고, 생략을 통해 더 큰 여운을 남기는 그만의 문체로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 시간에 닳아가는 나날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기억들을 건져낸다.


 나는 자욱한 아침 안개로 덮인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위쪽에서 가을과 겨울 한 철씩 살았고, 광활하고 차가운 망자의 숲을 걸어 일하러 갔다. 길은 비어 있었고, 나는 지나치는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낯선 이름들에 잠겨 어지럼증을 느꼈다. 연인과 가족 들이 점심을 하러 들른 일요일 레스토랑의 대화처럼 내가 절대 알 수 없지만 유혹의 파도처럼 다가온 삶의 역사 같은 이름들. 그 이름을 쓴 이상한 글자들에 나는 어리둥절했고, 술 취해 듣는 음악처럼 그것들을 상상했다. 나는 부패의 향이라 여긴 그 희미하고 시큼한 냄새와 더불어 글자들을 들이마셨다. 발레리의 말을 빌리자면 “삶의 선물이 꽃으로 화하는”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58쪽


제임스 설터는 내가 전작을 읽고 싶은 몇 안 되는 북미 작가 중 하나로, 출간 전인 책들을 안달하며 기다리게 된다.
–수전 손택



조각조각 떠오르는 사람과 장소
예술, 책,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방식


여러 해 동안 나는 스키에 헌신했다. 시간을 들였고 뼈가 많이 부러졌다. 뼈는 아물었고─이제 어느 쪽 어깨나 다리였는지조차 말할 수 없다─시간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말해줄 것도 회상할 것도 없는 시간이 진정 낭비된 시간일 뿐,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시간은 허투루 쓰인 게 아니다. 오트루트나 버거부엔 못 갔지만 나머지는 나의 일부다. 나는 어린 사내아이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옛날 버몬트에서 겪은 일이다. 여덟아홉 살쯤 되었고 영국인 같은 금발에 잘생긴 소년이었다. 그가 친구에게 그러듯이 내게 몸을 돌리더니 눈 덮인 세상에 둘러싸여 털어놓았다. “진짜 재밌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가 진짜 맞았다.
–152쪽


서로 독립적이면서 정서 면에서 일관된 열여덟 편의 글에서는 제임스 설터의 기억 속에 큰 자리를 차지한 사람, 장소, 시절뿐 아니라 문학과 등반과 스키 같은 취미 이상의 것, 건축과 레스토랑과 음식 등의 내밀한 기호가 더없이 절제된 음성으로 회상된다.
중년이 되어 아내와 찾은 파리에서 떠올리는 전쟁 직후 젊었을 적의 파리와 그때 전전하던 저렴한 호텔들. 출판계의 첫 친구로 이제는 고인이 돼버린 지인과 언젠가 저녁을 들기로 약속했던 파리의 식당. 한때 로마에서 만나 냉소를 구축하게 만든 이기적인 여자. 한 해 묵을 집을 찾아 사전답사를 갔던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 스위스 바젤에서 어느 저녁 슈페츨리를 함께 먹었던 이상적인 여인.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조용히 은퇴한 오스트리아의 전 스키 선수와 그가 이끌어준 스키. 번영이 지나고 쇠락해버린 미국 콜로라도의 광산촌과 산골 마을에서 겨울을 기다리던 일.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인으로 처음 발을 들였으나 세월이 흘러 아들과 다시 찾은 일본. 미시마 유키오가 좋아해 이따금 들러 글을 썼다던 도쿄의 힐톱 호텔. 지도를 들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목초지를 하염없이 걸었던 영국 사우스다운스웨이. 그리고 롱아일랜드로 이름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시인 월트 휘트먼의 기억을 간직한 포마노크.
제임스 설터의 장소와 사람, 그리고 거기서 가지를 친 숱한 기억은 여행 자체보다 삶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 기억들은 편편이 덧없음의 정서를 띠고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전해지지만 진실하며, 삶이 그렇듯 덜 말해졌기에 더 그립고 애틋하고 그 뒷일이 알고 싶어지는 간절함을 자아낸다.


자기 연민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술, 책,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최고의 교훈은 여전히 삶의 방식이다. 그녀의 얼굴엔 평정심이 넘쳤다. 나는 그게 보기 좋았다. 그녀는 아는 것의 아주 일부만 말했다. 나는 E. M. 포스터가 재능을 사랑했던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란 섬세한 지각과 관용적 판단이 있어야 하며, 도덕적인 우월함과 생생한 성격 묘사 능력을 갖추고 세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여야 한다고 그는 묘사했다. 셰에라자드였다. 그런 부류의 여자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129쪽



삶·역사·문학 속 인물들의 호출
시간을 곱씹는 진액 같은 문장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갔는지는 잊었다. 사진이 밖에 걸려 있었다. 분위기를 살피려고 내가 먼저 들어가 보았다. 스타일 괜찮은 곳으로 보였다. “어때?” 내가 나오자 다들 물어봤다. “훌륭해.” 내가 말하자 다들 들어갔다. 나는 “네이트 단골집이래” 하고 설명했다. 예쁜 여자들이 여럿 있었다. 악단이 연주 중이었고 바도 있었을 것이다. “300프랑씩 달라고.” 나는 좀 아는 듯 말했다. “그럼 내가 계산을 책임지지.” 여자들은 이미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있었다. 경험이 없지 않은 와이스와 듀발이 ‘자, 그럼’이라 말하는 양 짧은 시선을 나누는 게 보였다. 2차에서 돈은 바닥났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프랑스로의 출항 전날 밤처럼 쏟아지는 행복을 느꼈다. 줄곧 그랬고 지금도 행복의 일부는 선명하게 남아 있지만 그게 어디서 비롯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이후로 그 거리를 찾아보았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55쪽


제임스 설터의 여느 소설처럼 『그때 그곳에서』의 주된 정서도 덧없음이다. 그는 여행기 곳곳에서 오래전 머물거나 스쳤던 곳들 혹은 역사 속의 장소들을 찾으며 지난날을 떠올리고 세월의 틈을 더듬는다. 과거나 지금이나 장소는 같지만 혼자이던 것이 둘이 되었고, 군용선을 타고 건넜던 바다는 여객기로 이동하게 되었고, 전란으로 폐허였던 곳은 빌딩숲이 되었으며, 영원한 번영을 누릴 것 같던 곳은 터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친구, 연인, 우상이었고 한때 아군이거나 적이었던 기억 속의 수많은 사람이 과거 속으로 떠밀려 갔다. 그리고 그는 더 나이 먹고 더 풍족해지고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됐지만, 그래서 삶은 더욱 불가역적이고 허망한 것임을 제임스 설터는 지인과 역사·문학 속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빌려 이야기한다. 한없는 무상함에 흔들리지 않고, “단어를 손바닥에 놓고 곱씹으며 진액만 남도록 문장을 졸이는” 그답게 기억을 한참 음미하며, 훗날 영롱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현재의 여정에 충실하면서.


유럽 대륙에서 겨울 스포츠, 특히 스키의 인기를 일으킨 건 영국인이지만 요즘 영국인은 소수다. 클로스터스에 찾아오는 대부분은 스위스인이고 독일인, 마침내는 10퍼센트 정도일 미국인이 찾아온다. 거의 모두가 차를 몰고 오지만 기차를 타고 오면 엄청나게 편하다. 그리고 예를 들어 알피나나 체사에 머무른다면 임대 기차를 길 건너 기차역에 끌고 오는 거나 마찬가지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농부들이 막아 그리송에 차를 몰고 오는 게 금지됐었다. 요즘 새로운 주택, 호텔, 콘도미니엄 없는 마을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단순 배관공도 죄 백만장자가 되죠.” 호텔 소유주 한 명이 의견을 밝혔다. “모든 건축가도요. 스위스에서 건축가는 명망 있는 직함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칭 건축가니까.” 그는 침울하게 말을 보탰다.
하지만 정상에서 몇 킬로미터나 계속되는 길고 긴 코스, 눈에 갇힌 겨울 풍경을 달리다 보면 옛날 같은 느낌이 든다. 저 아래 멀리 계곡에 자리한 집들, 빠르게 내닫는 흔적이 스키 밑에서 영원할 것만 같다.
–166~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