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 교양도서 선정


2030 세대에 가장 호소력 있는 작가 정이현의 첫 산문집 동시 출간, 『풍선』 『작별』


도회적인 새침함 속에 예민한 목소리를 숨기고, 경쾌하고 쉬운 언어로 삶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던 작가 정이현이 첫 산문집 『풍선』과 『작별』을 동시에 내놓았다. 이 산문집에서 우리는 작가의 삶의 냄새를 흠씬 맡을 수 있다. 생일이 무슨 계절인지, 94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한 친구는 어떤 사람인지, 커피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작가 정이현은 산문집에서 영화를 말해도, 책을 말해도, 문화와 정치를 얘기해도, 자신의 생활로 녹여내는 천상 작가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어떤 텍스트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도 크리틱이 아니라 에세이가 된다.


작가 정이현은 현실 지향적이면서도 예민한 2030세대에 폭발적 호소력이 있는 작가다. 작가의 소설은 꿈에 부풀고 거침없던 세대가, 일상에 투항하여 평범한 속물이 되어가면서 경험하는 허망함과 불안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작가의 소설은 젊은 세대의 매끈하고 경쾌한 겉모습과 나약하고 흔들리는 내면의 균열들을 들여다보는 쿨한 보고서였다.


그러나 작가의 산문집은 소설과 다른 모습이다. 이 산문집에서 살아 숨쉬는 2030세대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별』의 「작가의 말」에 씌어 있듯이,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작별인사 뒤에 삶은, 세상은 우리의 내면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산문집의 글들은 여전히 시간의 좌표에 민감한 자들을 위한 송가이지만, 20세기의 아이가 어떻게 21세기의 어른으로 변모했는가, 어떻게 세계의 주체로 나서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 『풍선』, 외로운 너를 위해 쓴 『작별』


『풍선』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문화 현상, 작가의 유년과 청춘 시절, 생활 주변의 진실된 이야기를 담았다. 나이를 더 먹어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이라 느낀다는 작가는, 솔직한 느낌과 눈빛으로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이 시대 젊은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작별』에는 소설 작업 뒷이야기와 소설가로서의 고민,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내놓은 공감의 언어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냉소와 위악을 무기로 발칙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고, 소설 『오늘의 거짓말』에서 윤리적 감각과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과 사람살이의 숨은 결들을 보다 세심하게 바라보고 보듬기 시작했다. 그 소설집 사이의 성장과 변화의 시간을 어떤 경험과 사색으로 채워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진솔한 산문집의 내용이다.


『풍선』에는 71편의 글이 실렸다. 작가는 한 사회에 몸담은 소설가이자 생활인의 눈으로 영화, 드라마, 문화 현상을 투시하면서 동세대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글들 사이사이 ‘그땐 어땠을까’를 환기하며 ‘여기’와 ‘거기’를 넘나드는데, 작가의 8, 90년대 유년 시절과 청춘 시절의 모습이 비쳐져 나온다. 70년대 초에 태어나 8, 90년대에 십대와 이십대를 보내고 숨 가쁜 2000년대를 사는,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젊은이의 모습이다.


대체 소설가는 무슨 영화를 보았는가. 1부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와 2부 얼음처럼 시린 눈동자로, 소년은 사막을 건너간다에는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영화 이야기들이 있다. 작가는 여러 해 동안 본 43편의 영화를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하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거나 “아니야, 그건 틀렸어!”라고 새침한 듯 꼼꼼하게 읽어낸다. 그때마다 작가의 속내와 사람살이의 시선이 묻어나므로, 이 매력적인 영화 보기를 통해 사랑, 나이 듦, 인생, 사회 통념을 읽을 수 있다.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신비로운 마법의 시간은 곧 지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더디게 부식한다. …… 두고 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청춘의 한 시절이다. 그들은 각각 그 시간을 통과해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현실적인 성장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19~20쪽)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큰할머니의 한마디가 그제야 머릿속을 쾅 울린다. “사는 게 별거냐. 그냥 아침에 눈 떠지면 사는 거야.” 아아,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이 저릿한 영화를 어쩌면 좋으랴.(33쪽)


2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빨아 먹고, 3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이 줄줄 녹아내리는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고, 4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 산에 기어이 홀로 기어오른다.(65쪽)


왜 영화는 학생들의 시선을 빌려 그들을 어수룩한 마녀로 재현하는가? ‘올드미스 여교사’는 가족주의라는 울트라초강력 지배 이데올로기와, 10대 소녀의 로맨스라는 또 하나의 뉴파워 이데올로기 양쪽 모두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146쪽)


3부 그리운 것은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시간일 테니까와 4부 사각거리는 연필심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에서는 동세대 여성들의 공감을 사며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내 이름은 김삼순>, <섹스 & 더 시티>와 같은 ‘노처녀 일상/연애 드라마’들에 열광하는 이유와 ‘디카-저출산-동안병童顔病-인터넷-문자통신-대중문화’시대의 풍속도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나누는 이분법은 이미 오래전에 의미를 잃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화 소비자로서의 하나의 ‘개인’은 일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고, 부천필하모닉의 말러 연주회에 다녀오고, 황병승 시인의 새 시집을 읽고, 동시에 낄낄대며 <무한도전>을 보는 것이 바로 지금, 이곳을 사는 문화 향유자의 모습이다. 한 사람 안에 다양한 문화적 취향들이 진즉에 뒤섞여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이 우등하고 열등한 취향인지 콕 집어 감별할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파닥파닥 살아움직이는 것은 자율적인 문화 텍스트들뿐이다.(188쪽)


몇 해 전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구입하고 나서 제일 먼저 파 무침을 찍었다. 그다음엔 쟁반 가득 담겨 나온 생고기를 찍었고, 이어서 불판 위에 익어가는 고기와 그것을 뒤집는 젓가락을 찍었으며, 알맞게 구워진 고깃점을 입에 넣는 친구들의 만족스런 표정도 찍었다. 메모리 카드 안에는 모두 열두 장의 이미지가 저장되었다. 밥을 다 먹고 난 일행은 카메라를 동그랗게 둘러쌌다. “이건 흔들렸어.” “지워.” 삭제는 간편했다. 취사선택된 넉 장의 이미지는 노트북 ‘오늘의 일기’ 폴더로 옮겨졌다. ‘제목: 2002.12.1’의 이 파일은 곧 일행 모두의 이메일로 전송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빈틈없이 똑같은 기억을, 영원히 공유하게 되었다.(209쪽)


이 동안 열풍 밑에는 어쩌면 무서운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다. 젊은이들이 쓰고, 젊어지기 위해 쓴다. 불로주를 팔고 사는 소비 메커니즘의 쳇바퀴 속에서 사람들은 영원한 젊음을 간직하기 위해, 혹은 늙음을 끊임없이 유예하기 위해 오늘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아아, 모두 다 나의 부질없는 변명이다. 이 다크서클만 없애준다면, 입가의 팔자주름만 완화시켜 준다면 주머닛돈을 털어 당장 달려갈 주제에!(234쪽)


『작별』에는 49편의 글이 실려 있다. 문학하는 자로서의 자의식이 담긴 글 편과, 책들을 읽은 뒤 느낀 감상들이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백 편의 글을 읽는 작가의 이야기이자, 외로움을 지탱하기 위해 읽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1부 외롭게와 2부 가득하게에는 이 시대 촉망받는 아이콘이 된 작가 정이현을 이해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글들이 모여 있다. 작가가 자신의 성장 과정과 생활철학을 직접 이야기한다.


책을 많이 읽어 칭찬을 받던, 느닷없이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던 어린 시절, 밸런타인데이에 취업공부를 하던 도서관 풍경, 그리고 작가가 된 지금, 싱글의 여성으로서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작업하다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할 때의 자의식, 혼자 떠난 여행과 길 이야기, 작업실을 옮긴 이야기, 그리고 일본어 수업을 받으며 생각한 모국어로 문학을 하는 것에 대하여, 『오늘의 거짓말』 창작 노트 겸 작가의 세대 의식에 대한 설명과 성찰, 한국 문학에 대한 제언 등이 담겨 있다.


모국어로 문학을 하는 것은 고통스런 쾌락이거나 행복한 좌절이다. 배냇저고리의 달콤한 젖비린내와, 시속 200km로 달리는 고속열차의 차가운 쇳내가 계통 없이 뒤섞여 흔들리는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황금왕궁을 두고 나온 거지왕자처럼 나는 언제나 말에 굶주렸으나 또한 말 속에서 질식할 것 같아 코를 움켜쥐곤 했다. 내 손으로 포획하여 가두어둔 언어들을 내 힘으로 감당하지 못해 낑낑거렸다.(22~23쪽)


소설은, 무대의 이전과 무대의 이후에서 씌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쓰는 이를 영원히 무대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한다. 무대의 뒤편, 혹은 무대의 한복판. 이 아이러니가 소설가에게 비애인지 쾌락인지 환멸인지 잘 모르겠다. 비애와 쾌락과 환멸이 각각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앞으로 계속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다.(33쪽)


그제서야 나는 이 복잡한 세상이 유지되는 비밀을 저절로 깨달은 것이다. 일요일 저녁을 혼자 먹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고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그리고 어른이 된다! 아아, 그 위대하고 통속적인 힘, 일요일의 저녁식사. 소설 「타인의 고독」의 한 장면은 어쩌면 그 자리에서 잉태되었다.(35쪽)

3부 어른스럽게, 4부 자연스럽게, 5부 사랑스럽게, 6부 뼈아프게, 7부 당혹스럽게에는 각각 성장통, 삶과 문학, 우정과 사랑, 사회와 역사, 행복과 고통에 관한 글들이 ‘책을 매개’로 펼쳐진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또다시 꺼내어 읽었을 때,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새로 발견하는 것만큼 신비로운 경험도 드물다. 이 경우, 책 속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여정 위에 책이 놓여 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65~66쪽)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94년, PC통신의 채팅방을 들락거리던 시절. 어디에도 하지 못한 얘기를 낯선 ID에게 털어놓곤 했다. 비밀이란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니어서, 친구들이 모두 남처럼 느껴져요, 라거나 저는 너무 이기적인 아이여서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거예요, 같은 몹시 간지러운 대사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정한 나의 ID는 myself였다. 그렇게라도 내가 누구인지 확인받고 싶었나 보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그때 나에게 힘내세요, 괜찮아요, 선의를 베풀어주던 사람들.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의 뒷모습에 대해 언젠가는 정말 내 손으로 쓸 수 있을까? “난 여기 생활이 인터넷 채팅하는 것처럼 느껴져”라고 고토가 고백했을 때, 내가 조금 울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다.(78쪽)


우리들은 도시락상자 혹은 관棺처럼 생긴 하드디스크 하나씩을 깊숙한 곳에 숨기고 삽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별 모양 드라이버로 컴퓨터를 열고 ‘고요하기 그지없는 은색 거울 같은 원반’을 꺼내어 아무도 못 보게 찍찍 긁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친구를 다들 가지고 있을까요?(96쪽)



70년대 산産 도시인, 2000년대 작가 정이현의 내면 읽기


『풍선』과 『작별』을 종합해보면, 작가 정이현(본명 홍종현)은 72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큰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바른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저 책과 함께 ‘노는’ 아이였다. 국민학교 다닐 때 동생의 일기장을 원본 삼아 두어 시간 동안 뚝딱뚝딱 지어낸 한 달치 일기로 자주 별 다섯 개를 받았다. 80년대 중반 중학생이 되었을 때 빨간색 카세트플레이어 ‘마이마이’를 받고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감동했으며 몹시 행복해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허재 선수를 사랑하는 ‘나의 오빠’로 삼았으나, 2학년이 되면서는 별밤지기 이문세로 바꿔치기 했다. 고등학교 때 반 급훈은 ‘극기克己’였다. 어느 날 몰래 ‘소방차’ 콘서트 갔다온 걸 들키는 바람에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다. 대한민국 고3 시절이 십오 년 가까이 지났는데 아직도 가끔 그 시절의 꿈을 꾸면 설명할 길 없는 공포에 짓눌린다.


스물한 살의 서태지가 <난 알아요>라는 노래로 데뷔했던 92년 봄, 스물한 살이었다. 전공수업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일상은 지리멸렬했으며, 세상은 모호한 공기로 뒤덮여 있다고 생각했다. 93년 ‘통신’의 세계에 처음 입문했고, 94년 나우누리가 설립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불타올랐다.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본 건 98년 마지막 날 밤이었다. 스물일곱, 벌여놓은 일들은 많은데 수습하지 못해 낑낑대던 시절이었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았을 때는 막 서른이었다. 이제 어디 가서 “저도 먹을 만큼 먹었거든요, 알 만큼 안다니까요”라고 시금털털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했다.


서른이 넘고 서른여섯이 되었는데 요즘도 꽤 자주,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미숙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인터넷 사용시간보다 짧지 않게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영화, 드라마, 음악, 책,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한편, 2002년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정이현이라는 이름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수상하였고,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한 해에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6)도 받았다. 소설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와 『오늘의 거짓말』(2007)을, 장편소설로 『달콤한 나의 도시』(2006)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