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여행 칼럼 「FOOTSTEPS」

작가들이 살고 사랑했던 공간들을 순례한 기행문


작가들이 거닐던 거리와 그들이 즐겨 찾던 식당, 글을 쓰고 사색에 잠기던 카페는 어디일까. 그들은 어떤 장소로부터 영감을 얻었으며 어디서 살았을까. 미국의 정통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세계문학 거장들의 발자취를 좇아 전 세계를 유랑했다.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이면에 숨겨진 어둠을 드러낸 황금의 고도 프라하, 피츠제럴드가 수평선 너머 점멸하는 초록빛 등대에 넋을 빼앗기고 만 프랑스 리비에라, 비트 세대의 대변자이자 방랑자인 잭 케루악이 머물렀던 용과 같은 산세의 데솔레이션피크 소방망루 등, 작가들의 예술혼에 불을 지피게 한 서른여덟 군데로의 ‘문학 순례’가 이 책에 담겼다.  

<뉴욕타임스>의 여행 칼럼 「FOOTSTEPS」를 엮어 만든 『작가님, 어디 살아요?』는 유력 일간지와 잡지의 기자와 편집위원, 작가 등 다양한 필진이 저마다 동경하고 애착하는 작가들의 공간을 여행한 순례의 기록이며 작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1981년 <뉴욕타임스>의 한시적 연재물로 등장한 이후, 「FOOTSTEPS」는 “영감의 원천과도 같다”라는 평을 들으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재되고 있다.


“여행자인 우리는 이 기념물들을 만지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창조해냈는지 기도 대신 명상하는 신도일 뿐이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길게 뻗은 언덕과 새벽안개가 상상력에 불꽃을 일으켰던 것은 아닐까? 이곳은 영감과는 거리가 먼, 그저 우연한 공간이었을까?”

-7쪽, 「들어가며」



트웨인의 하와이부터 뒤라스의 사이공까지

작가들의 뮤즈가 된 도시들


“‘당신의 이야기는 어디서 온 거죠?’라고 물어본 적 있는 이들에게, 여행을 했거나 여행이 간절한 이들에게 이 책의 우아하고 친절하며 사랑스럽고 찬란한 작가들은 그들이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가닿길 바라마지않던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근사하다.”

-재클린 우드슨(작가)


『작가님, 어디 살아요?』는 미국, 유럽, 그리고 그 너머의 지역으로 나뉘어 구성된다. 마크 트웨인이 4개월 동안 체류하며 스스로 톰 소여처럼 모험했던 하와이부터 시작해 누아르의 거장 대실 해밋의 흔적을 좇는 샌프란시스코, 악몽에나 나올 법한 괴수들을 창조해낸 러브크래프트의 프로비던스 등 미국의 곳곳이 등장한다. 이어지는 유럽 편에서는 제임스 볼드윈이 정착한 파리, 방탕한 시인 바이런이 노래했던 스위스의 호수들, 테네시 윌리엄스의 로마와 이셔우드의 베를린, 헤밍웨이의 마드리드까지 유럽에 얽힌 작가들의 발자취를 좇는다. ‘너머’에 이르러서는 보르헤스가 나고 자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위험한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뒤라스의 관능적인 도시 사이공, 시인 랭보가 아닌 무역상 랭보의 에티오피아, 푸시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순례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힌다. 


“영웅적 면모와는 거리가 먼 이 문학 영웅―외가 쪽으로 아프리카 노예의 피가 흐르는 가난한 귀족, 모차르트의 우아함과 바이런의 냉소적 정열을 융합시킨 예술가, 술잔치와 결투에 중독된 정치적 반항아―은 첫 시가 발표됐을 때부터 슈퍼스타였다. 장례식 날, 도시 전역에서 추모객들이 마차에 올라타며 “푸시킨에게 가주세요!” 하고 외쳐댔을 테고, 마부들은 시신이 안치된 교회로 그들을 재빨리 실어 날랐을 것이다. 푸시킨의 명성은 그 정도였다. 러시아에서 그의 명성은 셰익스피어와 토마스 제퍼슨과 밥 딜런을 한데 합쳐놓은 것이다.”

-350쪽, 「어제의 시인 푸시킨이 오늘의 여행 가이드가 되는 곳」


‘FOOTSTEPS’라는 제목으로 묶인 글들의 단 하나의 공통된 원칙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한 그 공간에 대해 “독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 여행 섹션 편집장 모니카 드레이크는 밝힌다. 이 책에 담긴 38편의 글들은 단순히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을 여행하는 것을 넘어, 그곳이 작가의 삶과 가치관, 나아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상상해본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거리, 평범한 집에 불과한 공간들이 작가들에겐 “영감”의 장소, 즉 ‘지리적 뮤즈’와 다름없는 곳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희열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작가들이 남긴 발자취

세상에 없던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하지만 보르헤스가 유명한 문인일 뿐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실제로 살았던 평범한 주민이었다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것은 지금도 주민들이 여권과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파라과이 521번지의 사진관일 것이다. 그곳 창가에 전시된 마흔 장 남짓한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시길. 그러면 맨 윗줄 오른쪽 네 번째에서 보르헤스의 사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너무 낯선 나머지 스스로 제 세상을 창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내가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듯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사진을.”

-339~340쪽, 「토착민 아들, 보르헤스의 상상력이 깃든 도시」


<뉴욕타임스>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작가들의 발자취를 좇는다. 그들의 작품에 인용된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천천히 독서를 즐기는가 하면,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처럼 위험한 도시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기도 한다. 네루다의 집들과 그가 직접 수집한 물건들로 시인의 삶을 되새기는 방식이 있는 한편, 오르한 파묵처럼 생존 작가를 직접 만나 그와 함께 이스탄불의 구석구석을 탐방하기도 한다. 이처럼 저마다의 색다른 여행 방식은 이 낭만 가득한 기행의 풍미를 더한다. 문학과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누군가 가보았던 곳이나 패키지 상품이 아닌 색다른 곳으로 떠나길 꿈꾸는 이들에게 『작가님, 어디 살아요?』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안내서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없던 자신만의 여행길에 오를 수 있도록, 어느 근사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영감’에 취할 수 있도록 이 책이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