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재 시인의 죽기 전 100일 동안을 기록한, 주제가 있는 평전

 

'그는 젊어서 죽은 시인이고 더구나 시를 쓴 기간도 얼마 되지 않은 시인이기 때문에, 그의 시의 내용이나 분량이 매우 간단할 것처럼 생각되지만 (……) 그 시를 하나의 기획 속에서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는 김우창 선생(고려대 영문학과 교수)의 말처럼, 스물다섯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영문학사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긴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천재 시인 존 키츠(1795~1821년)의 삶과 문학, 사랑과 죽음의 순간을 심도 깊게 추적해들어간 평전,『죽기 전 100일 동안』(원제『Darkling I Listen』)이 <마음산책>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시나 편지를 읽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토록 비범한 지성인이며 천재가 그처럼 일찍 요절해버린 것이 엄청난 손실이라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게 된다. 그가 계속 살아 있었을 경우 어떤 업적을 더 이루었을지는 짐작 밖의 일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24세의 나이로 시작을 중단했을 때 이루어놓은 업적은 초오서, 셰익스피어 그리고 밀턴이 그 나이에 이루었던 업적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노튼의 영문학 개관』중에서

 

‘낭만시인의 전형적인 소박성을 잃지 않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쉽게 재단될 수 없는 복합성을 지닌 시인’‘젊음에게 주어질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복합적으로 의식하고 있었고 그 정열을 젊음의 도취와 괴로움을 통하여 뛰어난 시 속에 정직하게 표현’(김우창)한 시인 존 키츠는 영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 시인으로 추앙받는 시인이다.
 

그러나 요절한 천재 시인들의 명부에 당당히 올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와 마땅히 누려야 할 명성을 누리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키츠에 대한 연구서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표적인 시집들조차 국내에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키츠에 대한 평전으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책은 그간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한 천재 시인의 진면목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 책은 키츠 시 연구서나 평면적인 연대기가 아니다. 미국의 전기작가 월시는 키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절에 겪은 사랑, 그 사랑이 키츠의 문학에 끼친 영향, 먼 이국땅에서 짧은 생을 쓸쓸히 접어야만 했던 한 천재 시인의 뜨거운 내면과 드라마틱한 모습, 죽음을 앞두고 겪은 종교적 변모에 초점을 맞추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이 시인의 천재적인 면모와 인간적인 모습을 소설적인 스토리 라인을 통해 생생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신의 목소리로 노래한 키츠의 마지막 나날


스물다섯 살에 죽음을 맞기까지 존 키츠의 삶은, 여타의 천재적인 시인들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의 열정이 만들어낸 내면의 스펙트럼은 그를 때이른 죽음으로 이끌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와 링컨의 전기 등을 통해 전문적인 전기작가로 이름 높은 존 에반젤리스트 월시는 특유의 치밀함으로 심리를 포착하고, 사건을 연결?구성함으로써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시인의 휴먼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키츠에 대한 영미 문학권의 방대한 자료, 특히 그의 편지들(키츠와 패니가 주고받은 편지, 키츠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세번의 편지, 키츠의 여동생과 패니가 주고받은 편지)을 중심으로 공정하고도 꼼꼼한 필치로 시인의 마지막 나날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고 있으며, 마지막 몇 년의 집중적인 시작(詩作)의 시기에 키츠가 겪었던 패니 브론과의 연애 사건과 로마에서의 체류, 마지막 간병인이 되었던 친구 세번과의 우정을 통해 시인의 마음을 읽어냄으로써 그의 시 세계를 한층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의 텍스트로 사용한 편지들은 키츠의 시와 더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키츠의 편지는 그의 시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것으로, 그가 주요한 시에 극적으로 표현했던 갈등들을 스스로 절실히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편지는 무엇보다도 그가 세상의 악과 고통의 문제,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이 불행, 슬픔, 고통, 질병 그리고 압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았을 때 거기에 따른 우리의 삶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애의 마지막까지 키츠는 꿋꿋한 용기를 가지고서 이 세상 경험의 복잡성과 모순성을 전래의 철학적인 이론의 단순성이나 종교적인 신조의 절대성으로 대치시켜서 쉽사리 안락이나 구하는 짓 따위는 거부하였다. (……) 일찍이 순수한 쾌락과 감각, 그리고 예술지상주의적인 시인으로만 알려졌던 키츠는 금세기들어 비평가들이 그의 편지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키츠는 인생과 예술에 대해서 진지하고 집요하게 사색하였으며, 당대의 지성인들로부터 얻은 어떤 윤리적이고 비평적인 사상의 씨앗도 비옥한 그의 상상력의 토양 속에서 즉시 발아하고 꽃이 피었던 그런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노튼의 영문학 개관』중에서

   키츠의 사생활과 시적 발달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는 그의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이 편지들은 영국 서간문 가운데 최고에 속한다. 그의 작품에 대한 논평으로서 관심을 끈다는 것 외에도 이 서간문들은 마땅히 그 나름의 독립된 문학적 가치를 가질 만한 것이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중에서


이 책에서 월시는 키츠가 죽기 2년 전에 만났던 여인 패니 브론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를 삼가고 있다. 패니 브론은 키츠 사후 180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키츠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파렴치한 여자로, 또는 더없는 기지와 지혜로 시인의 고귀한 영혼을 사로잡았던 매력 넘치는 여자로 그 평가가 극단을 달리고 있다.


월시가 이러한 평가에 대해 덧붙이는 새로운 시각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들의 연애가 키츠의 과도한 열정이 불러온 일종의 해프닝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키츠가 자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열정이 시키는 대로 헌신했고, 그의 시창작과 죽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열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낭만주의 시대의 이 젊은, 그러나 가장 위대했던 시인은 사랑을 이데아로, 이상화시켜버렸다고 말한다. 삶은 단아하기 그지없었으나 사랑의 완벽함을 요구했던 열정만큼은 결핵균이 폐 세포를 남김없이 파괴해버릴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키츠의 연인 패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더불어 이 책에서 가장 큰 매혹을 안겨주는 부분은 키츠가 폐결핵 치료차 갔던 로마에서의 100일을 그린 부분이다. 화가 세번(Joseph Severn)은 키츠의 바쁜 친구들이 키츠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로마행을 기꺼이 수락한다. 그는 로마에서 보낸 키츠의 마지막 100일 동안 잠시도 키츠를 떠난 적 없이 키츠와 함께 그의 병고를 함께했다.


살아 생전에 무명이던 시인을 아무 조건 없이 돌보고 달래며, 시인 사후에 자신에게 돌아온 영광에 늘 감사해하던, ‘단순한 기쁨’의 화신 세번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를 이루며” 종교적 성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롤로그
월시는 키츠가 숨을 거두었던 로마의 26번지 집을 방문한다. 피아차 디 스파냐(스페인 광장)과 베르니니 분수, 성당의 종탑이 보이는 키츠의 방에서 저자는 시인이 보낸 마지막 100일에 대한 비전을 본다. 월시는 이 책에서 키츠의 사랑과 죽음, 종교의 문제를 다룰 것임을 알린다.


1장. 희망을 안고 로마로
실연의 상처와 폐결핵균의 공격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키츠는 완치의 희망을 안고 로마로 향한다. 당시 키츠는 폐결핵이라는 확진을 아직 받지 않은 상태였다. 세번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키츠와 로마행을 결행한다. 검역으로 인해 나폴리 항구, 배 안에서 머문 열흘 동안 키츠는 영국의 지우인 찰스 브라운에게 우울한 편지를 쓰며 아물지 않은 사랑의 상처를 내비친다.


2장. 시인의 연인, 패니
패니의 외모와 성품에 대한 묘사, 패니와 키츠의 첫 만남과 연애에 이르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패니는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재치와 총명함, 몸짓과 매너를 통제하는 능력으로 뭇 남성들의 경애를 받는 열 여덟 살 소녀였다. 키츠는 패니가 문학 취미라고는 없고 밤낮없이 무도회나 어울려 다니는 경박한 여자라고 투덜대면서도 그녀에게 빠져드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사랑의 열정에 빠진 젊은이다운 이율배반도 흥미롭게 드러나 있다. 이 시기에 키츠는 여물지 못한 연애시를 쓰기도 하지만, 3대 오드 같은 걸작을 써내기도 한다. 키츠의 몸과 마음이 패니의 사랑에 의해 희망에 들떴다가는, 패니의 방종함과 무심함, 냉정함에 의해 점차 소진되어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3장. 사랑은 장난이 아니다
1820년 2월, 키츠에게 최초의 각혈이 발생한다. 이 첫번째 각혈은 패니와의 결혼을 결심한 키츠를 당혹스럽게 했다. 불안과 괴로움으로 인해 패니에게 원망의 편지를 계속 보내던 어느 날 키츠가 또다시 각혈을 하자 의사는 따뜻한 로마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권한다. 로마로 떠나기 전 키츠는 잠시 패니 브론의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 패니와 키츠는 약혼을 한 상태였다.


4장. 봄은 다시 오는가

다시 로마. 키츠와 세번의 로마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도시, 좋은 날씨가 키츠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듯 보인다. 그 와중에서도 키츠는, 로마를 방문한 폴린 공주의 방종한 모습에 애써 두고 온 연인의 모습을 읽고 괴로워한다.


5장. 죽음보다 못한 삶

키츠의 각혈이 다시 시작되었고, 고통스러운 투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던 상태에서 의사는 키츠에게 방혈(피뽑기)을 실시하고 음식량을 줄여 병을 더 악화시킨다. 키츠는 “이 죽음보다 못한 삶”을 끝내야겠다며 세번에게 아편팅크 병을 달라고 애원한다. 키츠는 세번에게 『거룩한 죽음』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6장. 물 위에 이름을 새기다
키츠의 병명이 폐결핵으로 확정되었다. 숨이 멎기까지 최고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키츠는 죽음에 대한 명상, 세번이 보인 헌신을 통해 종교적 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키츠는 세번에게 묘비명에 이름도 적지 말고,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있노라”란 단 하나의 문장만 적어달라고 부탁한다. 키츠의 임종 나흘 전부터 세번은 단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잠든 키츠의 얼굴을 스케치하면서 키츠의 병상을 지킨다. 마침내 키츠가 숨을 거두었다.


7장. 시인의 축복
고된 간호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녹초가 된 세번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전도유망하던 시인을 간호했던 이 젊은 화가의 이름은 널리 퍼져 칭송을 받게 된다. 시인 셸리도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글로 표현했고, 화가로서의 그에 대한 갖가지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 시인의 축복을 받고 세번은 화가로서의 명성과 삶의 행복을 얻는다.


8장. 남겨진 사랑
키츠가 죽고 난 후 패니의 행적, 패니 사후에 일어났던 일들이 그려져 있다. 패니는 키츠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몇 년이 지나자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한 시인과 자신이 맺었던 인연에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후 패니는 결혼을 하게 되고, 가족에게는 키츠와의 일을 비밀에 부친다. 패니가 나이 먹어 늙어가는 동안 키츠의 명성은 높아져만 간다. 늙어 병든 패니는 어느 날 자식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지닌 키츠의 유품을 보여준다. 패니가 죽은 후, 키츠가 패니에게 보냈던 편지들이 출판되고, 패니는 키츠를 죽인 주범으로 지탄받는다. 그후 60년이 흐른 후 패니가 키츠의 여동생 프랜시스 키츠에게 보낸 편지들이 공개되면서 패니의 ‘복권 작업’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