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 날마다 읽은 소설 중 49편을 골라 말하다


날마다 읽은 소설, 그중 49편을 가려 뽑아 한 편 한 편에 작가의 인생 이야기를 곁들였다. 사랑하는 동안 느꼈던 세계, 글쓰기의 기쁨과 어려움, 문득 돌아본 나날의 기억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인생에 비추어 들려주는 작가의 추억, 그곳에 우리가 보낸 순간들이 반짝인다.

소설가는 어떤 소설을 읽을까, 독자들이 궁금해할 이 질문에, 작가는 이번 책 『우리가 보낸 순간』으로 답한다.


 

“우리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가 되리라는 것”

— 소설을 읽으며 그가 생각하는 것들


가장 많이 읽은 책 『설국』을 비롯해 가장 좋아하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등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소설과 재미있게 읽은 소설을 소개한다. 이 목록만으로도 독자들은 한 해 읽을거리를 마련하고, 작가 김연수의 도서 목록을 공유한다. 또한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에 투영해 들려주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살아온 흔적과 추억, 생각을 공유한다.

1부 ‘연애하는 사람들의 생산성’은 사랑에 대해 말한다. 제대로 된 사랑이라면 무엇이든 치유할 수 있다는 ‘사랑지상주의자’인 작가 김연수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3D 업종이에요. 30분에 한 번씩 먹이를 주는 일과 같아요. 사랑하듯이 우리가 공부하거나 일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만약 사랑하는 게 죽을 만큼 힘들다면, 그건 제대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대부분 노인으로 죽지, 연인으로 죽진 않으니까. 차라리 나중에 후회하면서 눈물 쏟지 말고 30분에 한 번씩 먹이를 주는 게 좋을 겁니다.

-『연인』 감상글(27쪽)에서

 

2부 ‘지극히 평범한 외로움’은 소설가로서 힘들었던 순간과 자신의 꿈 등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춤을 추던 조르바의 모습”에서 살아갈 기운을 얻고, 우정에 대한 소설 한 대목에서는 “술에 취해 늘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던 그 거리의 밤”을 떠올린다.

3부 ‘빵집의 고독한 열흘’에서는 작가의 과거지사를 통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빵집 아들로 태어나 자란 경험과 고등학교 시절 매일 아침 만났던 스무 번째 나무 등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감성이 어떻게 다져졌는지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나무도 나만큼 아침마다 인사하던 그 순간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나중에 그 논으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가로수들은 모두 없어졌어요. 베어졌을까, 아니면 어디론가 옮겨 심었을까? 이런 생각 하면 슬퍼야만 할 텐데, 그렇지도 않네요. 열아홉이라고 중얼거리고 난 뒤에 “잘 잤니?”라고 말하던 순간이 제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니까.

-『오마니별』 감상글(166쪽)에서


 

“그게 다 우리가 보낸 순간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순간의 소중함에 대하여


‘순간’, ‘찰나’, 김연수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풀어내는 화두다. 이 시대 사람들이 겪었을, 그리고 앞으로 겪을 ‘순간’을 말하며,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잊고 싶은 시간도 결국은 “저절로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는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적용되어 각자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저는 순간瞬間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눈꺼풀이 한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그 짧은 찰나 말이죠. 순간들 속에 나의 삶을 결정짓는 모든 의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짧은 순간도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저는 조국이나 민족을 위해서 엉엉 우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계란말이를 먹다가 옛 애인이 생각나서 우는 사람은 봤습니다. 그게 다 우리가 보낸 순간들 때문이겠죠.

-『달의 궁전』 감상글(146쪽)에서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 “세월은 흘렀고, 이제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지만 그 친구와는 지금도 동네 커피숍에서 노닥거리고 있으니 지금 이 길이 다시 먼 훗날 가슴속 지도가 되겠군요”라는 말에서 순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나머지 나날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드물”지만 “우리들의 우주는 어쩔 수 없이 좋은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삶의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을 읽는다.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

— 작가 김연수가 말하는 글쓰기의 의미


작가 하면 고뇌하는 모습부터 상상하는 독자들에게 날마다 쓰는 작가라니, 다소 어색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눠 쓰고 조금씩 쓰고 오래 쓰면 결국 많이 쓰게 된다”(〈씨네 21〉 김혜리가 만난 사람-소설가 김연수 인터뷰 중)라는 그의 말에서 공감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 나가 아무런 상도 못 받은 사실에 충격을 받고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지사에 다니던 시절 매일 기사를 쓰면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제보다 나은 나의 모습을 갖게 해준다”는 것을 경험하고, 어떤 글이라도 “매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중략)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팔 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갔다는 점이다.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도 분명하게. 소설가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

-「책을 내면서」에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앞으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