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작가의 작가’ 제임스 설터의 문학적 유언  


수전 손택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작을 읽고 싶은 몇 안 되는 북미 작가 가운데 하나로, 출간 전인 책들을 안달하며 기다리게 된다.” 줌파 라히리는 그의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라고도 했다. ‘20세기 미국 문단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 ‘작가들이 칭송하는 완벽한 스타일리스트’로 정평이 난 작가 제임스 설터에 대한 말들이다.  

국내에는 『어젯밤』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 『올 댓 이즈』 『사냥꾼들』 『아메리칸 급행열차』등 6권의 소설과 여행기인 『그때 그곳에서』, 문학 강연을 엮은 『소설을 쓰고 싶다면』이 출간되었고, 이제 설터의 아홉 번째 책이 당도했다. 이 귀환이 뜻 깊은 까닭은 2015년 6월 아흔의 나이로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죽음으로써 그의 문학이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니며 새로운 문학적 영토를 비로소 목도하리라는 예감 혹은 확신이 이 책의 발간을 둘러싼 이야기들에서 감지되었다는 점에 있다. 

제임스 설터의 부인 케이 엘드리지 설터는 그가 죽고 난 뒤 어마어마한 양의 상자들을 발견했다. 생전 작가가 당장 사용하는 게 내키지 않는 구절이나 이름이나 사건을 훗날 집필할지 모를 작품에 써먹을 요량으로 쟁여두는 행동에 대해 “쌓아두면 안 돼(Don’t save anything)”라고 충고했었지만 정작 그가 실제로는 출판된 최종고뿐 아니라 메모와 초고까지 전부 다 꼼꼼히 모아두었던 것. 그의 부인은 상자들을 모두 꺼내 그 가운데 최고의 글들만을 추렸고 2017년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선보였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피플> <에스콰이어> <뉴요커> <파리 리뷰> 등에 쓴 기사와 인터뷰, 산문 등을 한데 모은 그의 문학적 연대기이자 인생의 정수라고 할 기록들이다. “청탁을 받고 썼든 본인이 쓰고 싶어 썼든, 그는 글 하나하나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이는 비단 그의 개인적인 문학사와 인생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시절을 건너오며 채집한 섬세하고 단단한 시대의 기록으로도 손색이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은 오로지 기억이 나는 일들뿐이다”라는 작가의 육성대로 그가 기억한, 그리고 탐구한 이 세계, 이 사람, 이 장면 들은 그리하여 새롭게 각인된다. “우리는 모두 죽고 잊힐 것이다”라는 그의 선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곁에 남은 이 글들은 설터의 죽음에도 아랑곳없이 살아 있으며 쉬이 잊히지 않을 거라는 말처럼 여겨진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은 짐이 쓴 논픽션 가운데 최고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여기 실린 기사, 에세이, 인물 소개글은 따로따로 출판된 적은 있지만 지금껏 한곳에 모인 적은 없었다. 그 수많은 상자에 종이가 넘쳐흐르긴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양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세상과 세상 사람들, 특히나 무언가를 이루고자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짐의 끝없는 관심이 무척이나 넓고 깊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논픽션을 쓰면서 작가가 누리는 정말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전혀 몰랐던 것들을 마치 모험하듯 탐구하고 배우고 나서 그에 대해 쓰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바로 그렇게 쓰인 글을 발견할 것이다.

-「서문」에서



“허물어져가는 세계의 쓸쓸함과 영구불변하게 남을 만한 세계의 아름다움”

인간 제임스 설터가 바라본 세계의 진실 


이 책은 ‘나는 왜 쓰는가’로부터 출발한다. 유년기, 환경, 글쓰기의 자아가 형성된 계기, 군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전업 작가가 되기까지, 마치 ‘선언’처럼 ‘주문’처럼 소설의 기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해 역시 ‘글쓰기와 그 앞에 놓인 것’이라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오늘날 문자 시대의 위기 가운데서도 책과 쓰기의 운명을 옹호하는 것으로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 형식을 띤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지협 위에 서서 대서양의 인생과 태평양의 인생을 분명히 보게 된다.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가는 운명이 있고, 그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유령, 사실 나 자신이었던 그것은 시야에서 사라졌다”라는 그의 말과도 같이 “유령”이 사라지고 새로운 나 자신이 되어 다시 시작된 진짜 인생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총 10장 35편의 산문들에는 제임스 설터가 기억하고 탐구하고 기록한 사람들, 장소들, 시절들이 촘촘하다. 그가 포착하고 수확한 그 내밀한 이야기들에는 날카롭고도 아름다운 세계의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사람들, 설터가 사랑했던 소설가 이사크 바벨에 대한 집요한 연구뿐만 아니라 그레이엄 그린과 나보코프 등 당시 생존했던 위대한 작가의 생생한 인터뷰는 말할 것도 없다. 웨스트포인트라는 상징적인 장소 속 아이젠하워 인상기는 어떠한가. 알프스를 등반한 불굴의 인물들, 인공 심장을 개발한 박사, 어느 스키 챔피언부터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제작을 준비하던 때 만난 이국의 사람들 등 진진한 인간상이 있다. 프랑스에서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던 기억, 프랑스의 음식과 식당과 여행의 경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 미국 스키 도시의 여왕 격인 아스펜에서의 삶 같은 것들. 설터가 침잠한 그 숱한 세계는 “냉혹한 시간의 질서에 지지 않고 결코 끝나지 않는” 순간들이 하나같이 빛난다. 그건 “어떻게 해서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들이다. 


기억은 절대로 축적되지 않고 감정은 소진되며 진심은 언제나 퇴색될 운명에 처하고야 마는 것. 이것이 소설가 설터가 바라본 세상의 진실이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설터는 마치, 자신이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진실이 다가 아니라고, 거기에는 이면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 여기에 실린 글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울렁거렸다. 왜였을까? 설터가 영구히 보존하고 싶었던 세상, 붙잡고 싶었던 순간, 그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세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세계인가? 거기에는 암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매달리기 위해서, 스키를 타고 눈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심장을 계속 뛰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는 냉혹한 시간의 질서에 지지 않고 결코 “끝나지 않는”, 포획되고야 마는 순간들이 있다. 

-「추천의 글」에서


내가 묘사할 수 없는, 아마 사람들도 각자 다른 관점과 시대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고 있을, 이른바 진정한 삶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면에서 그 삶은 여행이고, 어떤 관점에서는 여성이며, 또 어떤 견지에서는 죽을 때까지 경탄할 수 있을 경치를 끼고 있는 집일 것이다. 진정한 삶이란 돈과는 멀어진 삶, 야망을 옆으로 제쳐놓은 삶, 어떻게 해서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지만, 그 삶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산 탓에 가난해지는 경우는 보통 없다. 

-386쪽



“여러분을 위한 비블리오스가 거기에 있다” 

자신만의 글을 쓴다는 것 


미망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나의 내면에는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이, 그러니까 우리 입 밖으로 나온 말들, 맞이한 새벽들, 지냈던 도시들, 살았던 삶들 모두가 한데 끌려들어가 책의 페이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고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존재한 적도 없게 되고 만다는 위험에 처할 테니까. 만사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오면, 오직 글쓰기로 보존된 것들만이 현실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27쪽


그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듯 글쓰기 역시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비블리오스를 가지라고 한다. ‘비블리오스(biblios)’란 설터가 만든 단어로 도서관, 기록물, 광대한 언어적 수집물을 뜻한다. 이 책 또한 그의 문학, 그가 머문 장소와 사람의 기억, 그 모든 세계에 대한 비블리오스다. “오직 글쓰기로 보존된 것들만이 현실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갖는 것”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보건대 광대한 이 비블리오스는 흡사 암벽등반가의 정직성 같은 형태다. 설터가 그토록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쓰는 행위로만이 우리는 명예를 얻는다는 사실 아닐까. 그 명예야말로 삶이라는 종목의 본질이라고. 


훌륭하게 등반한다는 점만으로는 누군가를 만신전에 올리기 충분치 않은 것이다. 산은 암살할 수 없고 고지는 하루 만에 정복되지 않는다. 영광이란 오로지 그걸 획득한 사람에게 일정 기간 동안만 속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도덕이 가장 중요하다. 예상 밖의 우승도, 부당한 승리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운이라는 것도 없다. 이런 엄격함이 스포츠에게 힘을 부여한다. 이곳에는 천국과 최후의 심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암벽등반은 정직하다. 명예야말로 이 종목의 본질이다.

-277쪽




추천사


“이 모든 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에요.” 설터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억은 절대로 축적되지 않고 감정은 소진되며 진심은 언제나 퇴색될 운명에 처하고야 마는 것. 이것이 소설가 설터가 바라본 세상의 진실이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설터는 마치, 자신이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진실이 다가 아니라고, 거기에는 이면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 여기에 실린 글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울렁거렸다. 왜였을까? 설터가 영구히 보존하고 싶었던 세상, 붙잡고 싶었던 순간, 그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세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세계인가? 거기에는 암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매달리기 위해서, 스키를 타고 눈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심장을 계속 뛰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는 냉혹한 시간의 질서에 지지 않고 결코 “끝나지 않는”, 포획되고야 마는 순간들이 있다. 거기에는 비극적 순간에도 슬며시 흘러나오는 웃음 같은 것들이 있다. 설터의 이 글들을 읽는 내내 나는 내 멋대로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이 산문들을 쓰는 동안 설터는 안도감을 느꼈을 거라고, 스러져가는 이 세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에게 간직하고 싶은 세계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을 거라고. 설터는 그런 식으로 허물어져가는 세계의 쓸쓸함과 영구불변하게 남을 만한 세계의 아름다움을 모두 기록해냈다. 모든 것이 “죽고 잊힐 것”이지만 우리가 왜 이 세계를 사랑해야 하는지 설터는 훌륭하게 우리를 설득해내고야 만다. 

손보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