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의 마음에 자리 잡은 한시 77편
―속 시끄러운 시대, 옛 시를 돌아보다

 

‘시와 독자의 만남’을 친근하게 이끌어온 김용택 시인이 언제 읽어도 새로운 한시 77편을 소개한다. 근·현대 시사 100년에 빛나는 시 100편을 소개한 『시가 내게로 왔다』 1, 2권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시인의 시를 담은 3권, 잃어버린 동심을 일깨우는 시를 담은 4권에 이은 책이다. 이번 5권으로 완간된 『시가 내게로 왔다』 시리즈는 근대시에서부터 현대시, 동시, 한시에 이르는 한국 대표 시의 정수를 보여준다. 
『시가 내게로 왔다 5』에는 18종 문학 교과서에 실린 시들과 이규보, 정약용, 도연명에서 황진이, 허난설헌에 이르는 여성 시인들의 시까지, 김용택 시인이 인상 깊게 읽고 사람들과 나눠 읽고 싶은 옛 한시들을 담았다. 언제 꺼내보아도 새롭게 읽히는 이 시들은 김용택 시인의 표현처럼 “온갖 잡음으로 잠자리가 편지 않은” 우리에게 “세상만사가 다 지워지고 달이 뜨고 바람소리가 들”리는 감흥을 안겨준다.

 

 

“이 시 좀 보랑게. 이거 기막히지.”
―좋은 시는 읽을수록 맛이 난다

 

김용택 시인은 “좋은 시는 읽을 때마다 새롭고 맛이 난다”고 말한다. 오래 묵어 좋은 술처럼 한시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시를 찾아 읽다 보면, 좋은 시들이 참 많다. 처음 읽고 감동했는데 다음에 또 읽어도 감동적인 시가 있다. 살다가 문득 언젠가 읽었던 시가 생각나 여기저기 뒤적여 다시 찾아 읽기도 한다. 그렇다, 좋은 시는 읽을 때마다 새롭다. 어쩌다가 좋은 시를 읽으면 나는 아들과 딸에게, 아내에게 보여주고 보내준다. 감동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어이, 이것 봐. 이 시 좀 보랑게. 이거 기막히지.” 그러다 보니, 다른 시인들의 시들을 엮어 내게 되었다.
―「엮으면서」에서

 

사랑, 자연, 인생을 노래하는 한시 속에서 숨은 뜻을 발견하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신위의 「증변승애贈卞僧愛」에서는 세월이 전혀 흐른 것 같지 않은, “탈색되지 않은” 사랑을 보고, 이규보의 「시벽詩癖」을 읽으며 “문학은 병이다. 고칠 수 없는 병이다”라고 말하며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공명한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해서 좋다는 도연명의 시를 통해서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본다.

 

봄비 내려 못에 물이 넘치고, 여름 구름들이 둥둥 떠가고, 가을의 밝은 달이 둥실 떠 있고, 겨울 동산에는 빼어난 소나무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언제 찬찬히 바라보았던가.
아파트 정원에 심어진 소나무를 보고도 우린 저게 좀 비싸겠는데, 하는 생각이 앞선다. 무엇을 보든 돈으로 환산되는 생활이 몸과 마음에 젖었다. 옛 시가 좋은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자연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인, 훼손하지 않은 자연을 옛 시에서나마 본다.
- 도연명의 「四時」감상글(85쪽)에서

 

그러나 김용택 시인은 한시라 하여 무조건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한 편의 한국화가 그려지는 시에 감탄하면서도 “자연 앞에 꼼짝 못하는” 한시들은 못마땅해한다. “절구를 꿰어 맞추려는 의도 때문에 작위적인 구석이 너무 많”은 시들도 꼬집는다. 그런 속에서 유독 마음에 와 닿은 한시를 골랐기에 그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다.
연애편지 대신 연밥을 던지다가 남이 보았을까 반나절이나 무안해하는 허난설헌의 「채련곡采蓮曲」과 황진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남자, 소세양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적어 보낸 편지 「소요월야蕭寥月夜」를 보자면 김용택 시인의 영원한 화두는 사랑임을 안다.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을 가만히 읽어보면, 오래된 술 도가니처럼 저절로 익어 넘치기를 기다리는 시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첩첩한 돌 사이에 미친 듯이 내뿜어 겹겹 봉우리에 울리니 / 사람 말소리 지척에서 분간하기 어렵네. / 항상 시비하는 시로 귀에 들림을 두려하기에 / 짐짓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싸네.” 차면 넘치는 시다운 시인 것이다.
현실의 아픔을 노래한 시도 빼놓지 않았다. 보릿고개 시절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살구가 열리면 따 먹자 하는 이양연의 「아막제兒莫啼」를 통해 엄마와 아기의 절절함을 통감하고, 이규보의 「대농부代農夫」를 보면서는 아전들의 침탈이 지금도 진행행이라며 한탄한다. 

 

 

천생 시인 김용택
―감상글에서 또 한 편의 시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