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쓴 책
재미있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원문과 함께 읽는 세 편의 동화


실비아 플라스, 그녀를 말할 때 하는 이야기는 대개 다음과 같다. 1963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자살한 미국의 여성 천재 시인(고 장영희 영문학자),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스의 아내였던 이,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으로 작가 사후에 출판된 시집 가운데 처음이자 지금껏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인, 『호밀밭의 파수꾼』에 맞먹는 걸작이라는 평을 받은 소설 『벨 자』를 쓴 작가, 뛰어난 화가로서의 재능까지 겸비해 여러 점의 드로잉을 남긴 예술가. T. S. 엘리엇 다음으로 영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미국 태생 시인으로서,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영미시 역사에 ‘여성’ 시인이 아닌 ‘대표’ 시인으로 자리하기를 꿈꾸었던 야심찬 그녀지만, 단 한 가지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 쉽게 잊었던 것은 그녀가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이다.
1956년 실비아 플라스는 테드 휴스와 결혼했고 1960년 4월 첫딸 프리다 휴스가, 1962년 1월 아들 니콜라스 휴스가 태어났다. 이 책은 프리다와 니콜라스의 ‘엄마’였던 실비아 플라스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지은 세 편의 이야기를 엮은 동화집이다. 아이를 위해 지은 이야기들에도 실비아 플라스만의 에너지는 무쌍하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아이와 함께 읽는 시까지 함께해 뜻 깊다. 데이비드 로버츠의 유쾌하고 따뜻한 그림은 물론 원문을 수록해 실비아 플라스의 숨결을 좀 더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비극적인 죽음 때문에 대개 불우 여성 예술가의 이미지로 소비되었던 실비아 플라스. “언제나 우리의 이해보다 깊은”(소설가 편혜영) 실비아 플라스의 재능은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이야기를 짓는 어머니로서의 모습까지,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을 통해 새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벨 자』 『실비아 플라스 드로잉집』에 이은 마음산책 실비아 플라스 네 번째 책이다.



“난 가끔 이게 혹시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니까요”
일상을 마법으로 물들이는 이야기의 힘


실비아 플라스는 1958년 1월 4일 일기에 「체리 아줌마의 부엌」을 구상하며 ‘갑자기 테드와 나는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라고 적는다. 그로부터 첫딸이 태어나기 전까지 「이 옷만 입을 거야」(1959년 9월경 창작 추정), 「침대 이야기」(1959년 5월경 창작 추정)까지 세 편의 동화를 남긴다.
「이 옷만 입을 거야」는 자기만의 정장 한 벌이 갖고 싶은 일곱 형제의 막내인 일곱 살 남자아이 맥스 닉스의 맞춤 옷 찾기 이야기다. 아빠로부터 시작해 여섯 형들에게 돌고 돌아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마침내 지금껏 누구에게서도 본 적 없던 멋진 겨자색 정장 한 벌을 갖게 된 아이의 기쁨이 사랑스럽다. 


“깃털처럼 가벼워.”
폴이 말하고 에밀이 맞장구쳤어요.
“버터처럼 눈부셔!” 오토가 말했지요.
“토스트처럼 따뜻하고!” 이번엔 월터가 말했고요.
“정말 끝내준다!” 휴고도 말했어요.
“멋쟁이 옷인데!” 조한도 말했지요.
“세상에!” 맥스가 탄식했어요.
―「이 옷만 입을 거야」에서


「체리 아줌마의 부엌」에서는 동네에서 가장 깔끔하고 제일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체리 아줌마네 부엌에 살고 있는 두 부엌 요정과 함께 일하는 여러 전기기구들의 일 바꾸기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자두 타르트를 굽는 냉장고,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커피메이커, 블라우스를 다리는 달걀 거품기, 와플을 만드는 다리미, 스펀지케이크를 굽는 세탁기, 얼음을 만드는 토스터 등 부엌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친구의 일을 부러워하다 어느 날 일을 바꾸어보기로 하고 서로의 일을 ‘경험’해본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하루를 보내고 이내 자기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체리 아저씨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듯, 경험보다 좋은 선생님은 없는 법이야.”
후추 요정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른 친구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부엌 친구들이 경험으로 깨닫게 되면 아마 지금의 자기 일을 곱절은 행복하게 할걸. 그렇다고 우리가 저들의 능력을 의심한다는 걸 티 내면 안 돼.”
“당연하지. 스스로 깨닫게 해주자고.” 소금 요정이 동의했어요.
그리하여 두 요정은 서로 은밀한 악수를 나누었지요.
―「체리 아줌마네 부엌」에서


「침대 이야기」는 머리맡에서 아이에게 들려주면 좋을 시라고 할 수 있다. 온갖 종류의  ‘재미있는 침대’에 관한 이야기다. 주머니 침대, 간식 침대, 탱크 침대, 코끼리 침대, 하늘을 나는 침대, 바닷속을 가는 침대, 높이 튀어 오르는 침대, 북극 침대 등 별의별 침대를 신나게 펼쳐놓는다. 상상력과 운율이 조화롭게 빛나는 한바탕 침대 여행이다. 
실비아 플라스만의 색깔이 또렷한 세 편의 동화 모두 따뜻하고 신비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아이를 위해, 아이의 눈으로 지은 이야기 편편은 세기의 시인이기에 앞서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실비아 플라스가 자신의 아이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 아이의 일생을 가꾸어줄 이야기의 힘을 믿는 어머니, 그녀의 진짜 얼굴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현실 너머의 삶을 꿈꾸게 하고, 세상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만들기도 합니다. 유년 시절, 잠자리에서 듣던 어머니의 이야기만큼 우리의 영혼에 깊이 아로새겨지는 것이 또 있을까요. 졸음에 겨운 어머니의 나른한 목소리에서, 그리고 그 목소리를 타고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책이 한 권 생겼다”
좋은 동화는 좋은 문학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기쁨,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지금껏 쉽사리 간과했던 어머니로서의 실비아 플라스. 그녀가 직접 아이를 위해 지었던 이야기들. 이 책은 실비아 플라스 문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이야기를 짓는 일은, 그것이 분신이기도 한 자신의 아이를 위한 것이라면 그 이야기들 속에는 좀 더 많은 것들이 자리할 것이다. “생의 비의를 향한 끈질긴 탐구, 분노와 고통, 시의 언어로 나아갈 수 있는 최전선의 경계까지 자신을 밀고 나간 실험과 전복”(시인 김선우)의 시인, 온 생을 바쳐 시와 삶 모두를 자신의 세계에 담고자 한 실비아 플라스라면, 놓칠 수 없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정이현의 말처럼 “좋은 동화는 좋은 문학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으로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책을 가질 수 있는 기쁨이 여기 있다.


그림이 귀엽다! 실비아 플라스가 누구인지 알 턱 없는 일곱 살 딸애가 탄성을 지르더니 책을 읽어 내려간다. 푹 빠져 읽는 표정이 변화무쌍하다. 한없이 진지하다가 킥킥 웃다가 콧등을 찌푸리다가 이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눈빛이 된다. 재밌니?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든다. 최고! 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책이 한 권 생겼다. 좋은 동화는 좋은 문학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정이현 소설가의 추천사에서



추천사


여기 정말 재미있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세 편의 동화가 있다. 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읽는다면 어서 확인하고 싶어질 것이고,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면 잠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될 것이다.
나는 이름을 먼저 알고 읽은 독자다. 원고를 펼치기 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오래 바라보았다. 그동안 문득문득 실비아 플라스에 대하여 생각하고는 했다. 시를 쓰는 손과 드로잉을 하는 손과 아이들을 위해 마지막 간식을 준비하는 손과 가스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문틈에 꼼꼼히 테이프를 붙이는 손, 한 여자의 손, 그 손들의 다름과 같음에 관하여.
그림이 귀엽다! 실비아 플라스가 누구인지 알 턱 없는 일곱 살 딸애가 탄성을 지르더니 책을 읽어 내려간다. 푹 빠져 읽는 표정이 변화무쌍하다. 한없이 진지하다가 킥킥 웃다가 콧등을 찌푸리다가 이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눈빛이 된다. 재밌니?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든다. 최고! 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책이 한 권 생겼다. 좋은 동화는 좋은 문학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정이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