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문학으로만 불멸을 꿈꾸었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국내 최초 완역
“영원은 나를 지루하게 만든다.
나는 결코 영원을 원한 적이 없다.”

 

실비아 플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 살아 있다 하더라도 여든을 훌쩍 넘은 나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분노에 차 반항하는 시인이라는, 젊음의 면류관을 그에게 씌운다. 특히 그의 작품이 문학인의 저항 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에 최승자, 김혜순, 김승희 등 여성 시인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소개된 우리나라에서는 실비아 플라스가 더욱 광기의 시인으로, 저항의 아이콘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처럼 「거대한 조각상」과 「아빠」 「나자로 부인」 등 몇몇 작품만이 알려졌을 뿐, 그의 대중적인 인지도만큼 독자가 실비아 플라스의 시 세계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면밀히 탐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의 사후 50주기가 되는 올해, 실비아 플라스를 오랜 기간 연구한 박주영 교수가 한국어로 번역한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은 단편적으로만 인식된 실비아 플라스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할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그의 사후에 전 남편이자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스가 편찬한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은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실비아 플라스가 쓴 시 224편을 순서대로 정리했으며, 또한 1956년 이전에 쓴 습작시 50편까지 실렸다. 실비아 플라스 생전에 출판된 시집 『거대한 조각상』과 사후에 출판된 시집 『에어리얼』과 『호수를 건너며』 『겨울나무』에 수록된 시들은 물론, 그가 발표한 모든 시가 수록되었다. 언어를 조탁하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한,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최고의 이야기꾼을 꿈꾼 한 야심찬 문학가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81년 출간된 이 책은 이듬해에 작가 사후에 출판된 시집 가운데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베일을 들추어 실체를 본다,
실비아 플라스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은 실재하는 것이다, 알았다
선한 것, 진실한 것”

 

테드 휴스는 「서문」에서 실비아 플라스가 시집을 내는 데 얼마나 큰 열망을 품고 있었는지 기술한다. 1956년 처음 만나 1962년까지 실비아와 함께한 그는, 그가 실비아 플라스에게 미친 영향이 어떻든, 가장 가까이서 플라스의 시 쓰기 작업을 지켜보았다. “나는 여기에 모든 작품이 실려 있음을 확신한다. (…) 수십 년에 걸쳐 조사했지만 (…) 다른 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휴스는 플라스의 시 쓰기가 “내면의 상징과 이미지”에 큰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언어로 형상화하며 소리에 “수학적 감각”을 담아 “은밀한 우주 서커스의 강화된 체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비아 플라스가 구사하는 시적 언어는 몇몇 비평가가 단순하게 치부하듯이 결코 극도로 추상적이거나 난해하지 않다. 이와 반대로 그는 관념적이기만 하고 실체가 없는 허상은 단호히 거부했으며 감각과 유리된 언어는 쓰지 않았다. 녹색, 파란색, 붉은색이 날 것처럼 살아 있는 그의 대담하고 감각적인 시어는 그가 땅을 두 발로 디딘 상태에서 부단히 하늘을 올려다본, 지극히 현실적인 시인이었음을 보여준다.

 

음산한 겨울 내내, 빨간 산사나무는 침울한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송이의 공격을 잘 버텼고,
뿌리가 단단하고 의지만 굳다면, 핏방울처럼 선명하게,
용감한 나뭇가지는 절대 죽지 않음을 입증했다.
117쪽, 「메이플라워호」에서 

 

실체 없음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에서 유령과 거울로 자주 표현되는데, 그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체 없음에 ‘유령’ ‘혼령’ ‘거울’ 등의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실재화하고 그 안에서 실체를 찾고자 한다.

 

나는 혼령을 믿지 않는다. 입 구멍이나 눈구멍을 통해
꿈에선 수증기처럼 사라지는 것. 나는 멈출 수 없다.
언젠가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물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손으로 많이 만져 따듯해진
조금 특별한 광택을 띠고 있다. 그들은 거의 만족한 태도다.
351쪽, 「유언」에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고 간접적으로 비출 뿐인 거울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에서 자주 변주되는 소재로 허상과 실재의 간극을 보여주고 그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은백색이고 정확하다. 나는 편견이 없다.
좋든 싫든 현혹되지 않고,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즉시 삼켜버린다.

(...)

나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충실하게 비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손을 불안하게 만지작거리며 보답한다.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
355쪽, 「거울」에서

 

거울은 냉정하게, 비친 상을 되비춘다. “반사 거울 같은 눈동자”를 지닌 외과 의사처럼, 자신은 편협하지 않고 정확하며 정직하게 자신이 본 것을 되돌려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울이 반사하는 것은 거울에 비친 상의 실체가 아니다. 거울은 “무의미한 모조품의 유령 복도를 만들어 조잡한” 인간 삶을 인식하게 하는 매개체다. 시인의 역할은 현실의 거울을 자처하며 유령 복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복도 한가운데 서서 현란하게 반사되는 상의 실체를 직시하고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여성’ 시인이 아닌 ‘시인’으로
그보다, 오로지, 언어로 살기 위하여
“새로움이다 (…)
네가 알고 있는 언어로는 미리 준비할 수 없다.”

 

혼령의 익명성, 거울의 동일성에 대한 실비아 플라스의 저항은 남성적 폭력성에 대한 저항으로 자주 설명된다. 실제로 몇몇 시에서 그는 의사와 간호사로 자처하는 이들이 시적 화자를 익명화하고 개성을 몰살해 무기력하게 만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절과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와 같은 구절이 연결되어 실비아 플라스의 페미니즘적 성격은 더욱 짙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여성’ 시인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의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길 바랐다. T. S. 엘리엇 다음으로 영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미국 태생 시인인 실비아 플라스는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영미시 역사의 한쪽에 자리하고 싶은 욕망을 품은 시인이었다. 그는 습작 시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서구의 여러 시 형식을 실험하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고대 신화와 고전 작품을 차용하며 자신의 작품이 이들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하지만 신화와 고전으로 대표되는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접합하려 하며, 이 둘이 맞붙을 지점을 찾는 것을 자신의 몫으로 남긴다. 이러한 시도는 때로는 그 자신에게 용기를 때로는 좌절을 안겼다.

 

나는 나 자신이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죽은 이들은 정중함으로 상처를 준다,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다.
322쪽, 「불모의 여인」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다”라는 좌절과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용기, 그사이가 시가 태어나는 자리다.

 

별 하나가 떨어지면 그 별은 오래된 빛나는 장소 안에

 

부재의 공간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내가 지금 누운 곳에서, 나 자신의 어두운 별로 돌아가
이 복숭아 과수원의 달콤한 공기에 흥분하지 않은 채,
나는 머릿속에 있는 저들의 별자리를 본다.
이곳에선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
339쪽, 「도르도뉴 강 저편의 별들」에서

 

부재와 존재 사이, 허상과 실체 사이, 반사와 반영 사이, 실비아 플라스는 이 ‘사이’를 공간화하고 시각화하려고 한다. 그 작업은 모두 언어로만 이루어진다. 언어로 이루어진 집은 나 자신만의 집일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장소일 수밖에 없다.

플라스의 시 읽기에서 독자가 체험하는 극도의 긴장감은 단순히 시인의 사적인 고통에 기인한 것으로 ‘오해’하는 대신에, 정치·역사·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실존적 주체가 겪는 불안과 공포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660쪽, 「옮긴이의 말」에서

 

그 집은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편안한 장소는 아니다. 인간 심연의 가장 큰 공포를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삶이 민낯을 드러내고 죽음이 현실로 다가온다. 그렇게 시인이 쌓아올린 집은 무덤이 되고 저세상이 된다.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실비아 플라스가 차분히, 때로는 격정적으로 세운 시의 집, 시의 무덤은 결국 죽음을 구체화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며 끝을 맺는다.

 

여인은 완성되었다.
그녀의 죽은

 

육체는 성취의 미소를 띤다.
그리스적 필연성의 환상이

 

그녀가 걸친 토가의 소용돌이무늬 안으로 흐른다,
그녀의 맨발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지만, 이젠 다 끝났다.
556쪽, 「가장자리」에서

 

하지만 이 끝은 실비아 플라스라는 육신의 끝일 뿐 그의 언어로 육화된 세계는 이제 시작이다. 그는 형체가 있는 육신의 영원은 거부했지만 형체가 없는 언어의 영원은 갈망했다. 육신의 영원은 끊임없이 시들어가는 과정이지만, 언어의 영원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과정이다. 그동안 인간 실비아 플라스에게 맞춰진 우리의 시선이 이제 그의 시에, 그의 언어에 맞춰질 때다. 이제야 그는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얼마나 자유로운지, 얼마나 자유로운지, 당신은 모른다.
329쪽, 「튤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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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가 평생 쓴 시가 망라된 이 전집을 읽으며 나는 자주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실비아. 그가 온 삶을 바쳐 만들어놓은 제단의 겨우 문짝 하나를 열어보고는 그를 파멸시킨 신의 이름을 안다고 착각했다. 생의 비의를 향한 끈질긴 탐구, 분노와 고통, 시의 언어로 나아갈 수 있는 최전선의 경계까지 자신을 밀고 나간 실험과 전복. 그가 전 생애로 쓴 피 튀기는 언어의 제의가 종합 예술 무대처럼 생생하다. 아프다, 황홀하다.

김선우 시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