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벼랑 끝에 선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벼랑 끝에 선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조금만 돌아보아도 벼랑에 서서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면서도 오히려 끊임없이 삶의 소중함을 반추하는 힘을 지닌 사람은 드물다. 이번에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시인 조은의 전작 산문 『벼랑에서 살다』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생을 벼랑이라는 이미지에 투사하여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되새기게 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크게 세 가지 시선을 드러낸다.

 

첫 번째는 '여성'으로서의 시선이다. 그녀는 가부장제의 틀과 사고가 엄격하게 군림하는 사회 구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주체적인 위치를 설정하려고 하며, '여성으로서의 삶'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두 번째는 '소시민'으로서의 시선이다. 경제적인 궁핍함이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고통과 그것으로 인해 겪게 되는 심리적인 위축이라는 대다수 소시민의 삶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세 번째는 '인간'으로서 시선이다. 이전에 두 편의 시집에서도 그랬지만 작가는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깊이 천착한다. 끊임없이 맴돌면서도 그녀는 벼랑을 떨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살아가는 장소로 규정한다. 이 세 번째 시선은 성 정체성의 측면에서 약자로 규정되어 온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약자로 규정되는 소시민이라는 정체성이 변증법적으로 잉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달라지는 데는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평화로운 물처럼 흘러가지 않고 격랑을 몰고 오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소한 인간의 고통이 진정한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이 세상은 진화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과 사랑 사이에는 만만찮은 물살이 흐르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거친 흙탕물 속에서 타오르고 싶어하는 수많은 생명의 이미지를 간과하지 않는다. -〈사랑의 말 이곳 저곳에 대하여〉중에서

 

결론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삶이 그렇듯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삶을 향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것은 삶이 죽음과 그림자처럼 결부되어 죽음이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삶의 의미를 한 차원 더 깊이 깨닫는 것임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의 문학 세계를 소설가 신경숙은 이 책의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그려내고 있다.

 

벼랑에서 만나자. 부디 그곳에서 웃어주고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다오. 그러면 나는 노루피를 짜서 네 입에 부어줄까 한다.

 

아, 기적같이
부르고 다니는 발길 속으로
지금은 비가……

―「지금은 비가……」


전율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차가운 불이 있구나 생각했다. 모든 순간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구나. 웃음도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달라지 않는가. 생피가 나오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랬다. 과수원집 딸 같은 조은희라는 아련한 이름이 왜 조은이라는 결단력 있는 이름으로 바뀌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 신경숙(소설가)



사진기에 담긴 삶과 죽음의 이미지

 

『벼랑에서 살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삶의 터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글의 무대는 작가가 살아가는 동네, 골목길, 집, 그리고 방이지만 등장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 중에는 작가나 시인도 있지만 술집 여인들과 동네 아줌마들도 있고 어린아이와 개도 있다. 작가는 이 모든 등장 인물들에 차등을 두지 않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To the Lighthouse에서 램지 부인을 방문하는 사람들처럼 작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누려보지 못했던 깊은 평안을 맛본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자신의 삶과 결부시킴으로써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를 삶의 이미지와 은연중에 겹쳐버린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의 에너지가 교차되는 가운데 삶의 정화로서의 생명력이 창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김홍희의 카메라 앵글은 작가의 글이 머문 흔적을 따라가면서 작가가 사는 방과 집의 여러 곳과 주변 동네를 투시하듯이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바위에서 짜낸 마지막 한 방울의 물

 

글을 쓰는 동안에는 바위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물까지도 짜내는 심정이었는데, 묶어 놓고 보니 바위에서 꿀을 따낸 것처럼 뭔가 큰 것을 덤으로 얻은 듯한 기분이다. 이 글을 통해 나는 그동안 자신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서툴게나마 삶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글 머리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