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삶에 대한 카프카적 질문과 톨스토이적 대답

‘끝내 쓰는’ 작가 이승우의 특별한 신작 짧은 소설 27편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프랑스의 세계적 문학상 페미나상 외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여러 나라에 번역됨으로써 세계가 함께 읽는 작가 이승우. 1981년 스물세 살에 등단해 37년 동안 예의 한결같음으로 묵묵히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다. 소설이 이 지상의 보직이라고 여기는, 잘 쓰는 것보다 ‘끝내 쓰는’ 것으로 복무를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 이승우의 특별한 이야기들을 모았다. 10년 전 쓴 소설부터 최근 작품까지 엄정하게 선별한 27편의 짧은 소설은 작가가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고 다듬어 단단한 책으로 거듭났다. 

카프카는 맞설 수 없는 상황에 맞서야 하는 실존의 아이러니를 우화 형식에 담은 짧은 소설을 여러 편 썼고 톨스토이는 지상에서의 참된 삶에 대한 성찰을 민화 형식에 담은 짧은 소설을 발표했는데 “카프카의 짧은 소설은 긴 질문지와 같고 톨스토이의 짧은 소설은 긴 답지와 같이 느껴진다고”, 그들의 진지한 질문 방식과 대답을 향한 성실한 탐구의 태도가 이 책을 쓸 수 있게 매혹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걸작과 우연의 상관관계, 영원히 남는 책과 수정이 거듭되는 책의 독특한 운명, 읽지 않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 작가의 억울한 사연 등 ‘쓰는 인간’이 맞닥뜨린 아이러니를 비롯하여, 공장 기술자에서 공장 소유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의 당황스러운 죽음,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집을 지으려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무덤을 갖게 된 이의 이야기, 어느새 슬픔에 중독되어 더 이상 슬픔을 떠날 수 없는 한 남자의 기이한 정황 등 인생의 이면, 특정할 수 없고 이해 불가한 인간의 여러 모습들 속에서 작가가 포착한 삶의 비의가 선명하게 살아 숨 쉰다. ‘쓰는 인간/ 사랑하는 인간/ 사는(죽는) 인간’이 처한 진진한 질문과 대답이 아이러니라는 생생한 감각을 입고 독자를 맞는다.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박완서 작가, 정이현 작가, 이기호 작가, 김숨 작가에 이은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의 하나로, 서재민 화가의 다채로운 그림 19점을 함께 수록해 책의 예술성을 높였다. 


내 짧은 소설들이 카프카적 질문과 톨스토이적 대답을 담고 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지한 질문의 방식과 대답을 향한 성실한 탐구의 태도가 나를 매혹했고, 이 글들을 쓸 때 내 가슴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은 누군가 수수께끼 같은 이 세상에 대한 짧은 질문이나 희미한 대답의 실마리라도 찾아냈으면 참 좋겠다, 하고 감히 바라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말하려고 하는 것 그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일까”  

소설가의 거울에 비친, 쓰는 혹은 사는(죽는) 인간의 조건


그간 신과 인간, 구원과 초월, 원죄와 죄의식, 욕망과 부조리 등에 천착하며 다양한 삶의 표정들을 부조해왔던 이승우 작가의 짧은 소설은 장르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한국 소설의 결정적 장면을 독자에게 선물한다. 수치심과 연민, 이해 불가한 양가의 감정 등 여러 층위의 섬세한 감각을 호명하는가 하면 납득할 수 없는 인생의 원리를 표본 채집하듯 날카롭게 눈앞에 보여준다. 모순덩어리 인간의 문제 혹은 인간의 조건은 그의 짧은 소설 속에 강렬하게 보존된다. 


만일 그가 구상 중이거나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소설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쓰여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면, 그는 이미 쓰인 걸 확인했으니 쓸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소설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쓸 수 없을 것이다.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있는 소설들을 모조리 찾아 읽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평생 읽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이래저래 그는 소설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읽지 않은 것으로부터」에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이며 철인이라고 불리던 한 남자가 자기 공장부지 안에서 어이없이 쓰러진 내막이 대충 이랬다. 병원에 실려 간 그는 하루가 지난 다음 잠깐 의식이 돌아왔다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그로부터 열 시간 후에 숨이 멎었다.

그를 처음 진단한 의사는 불쑥 “이 사람, 직업이 광부예요?” 하고 물었다. 그것이 첫마디였다.

-「뛰는 남자」에서


아직 읽지 않은 소설에서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 다른 사람이 쓴 소설들을 일일이 찾아 읽느라 더 이상 작품을 쓸 수 없게 된 한 작가의 이야기는 ‘쓰는 인간’의 아이러니다. 곤경에 처한 인간은 그뿐만이 아니다. 공장의 기술자였다 사장이 된 놀라운 체력의 소유자는 평소 그의 원칙대로 운동에 매진하다 숨이 멎는다. 공장의 매연을 부정하던 그는 극심하게 오염된 환경의 첫 희생자가 된 셈이다. 



“그는 억지로 눈물을 만들어야 했고 또 애써 눈물을 참아야 했다” 

현실의 부조리와 기이함, 아이러니의 연대기


누군가를, 누군가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물음이 가당치 않은 건 우리가 인지하는 것들이란 대개 표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마주하는 현실의 부조리함과 기이함, 아이러니의 단면을 작가는 선명히 불러온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집”을 원했던 그 사람의 집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무덤”이 된 것처럼.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여론의 질타를 받던 한 영화배우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본 케이가 언젠가 애인과 헤어지던 자리에서 자신이 그랬던 것같이, 배우 역시 눈물을 일부러 만들어야 했고 그것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집을 짓기를 원했던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초라한 곳에서 외롭게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도 없었다. 목수는 반나절 만에 그의 관을 짰다. 사람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그의 집 안으로 그의 관을 가지고 갔다. 그가 만들다 만,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집은 그의 무덤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무덤이 되었다. 

-「집 이야기」에서


그는 일부러 눈물을 만들어야 했고(왜냐하면 사죄의 뜻을 극적으로 표현해야 했으니까) 그것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또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했던(참는 것은 흐르는 것을 전제한다. 흘린 자만이 참을 수 있다) 것이다. 그리고 곧 자기가 정말로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억지로 눈물을 만들려고 한 것인지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어졌을 것이다. 

-「만든 눈물 참은 눈물」에서


책에 실린 짧은 소설 편편마다 삶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헤아리고자 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이 형형하다. 세계의 곳곳에서 출몰하는 ‘알 수 없음’의 조각들을 각자의 방식대로 하나하나 맞춰감으로써 마침내 아주 조금 선명해지는 것들을 ‘아이러니의 연대기’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기이하고 알 수 없어서 질문할 수 있고 혹은 대답할 수 있고, 그래서 의미를 갖는 소설적 풍경들이 지금 이곳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