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없는 청춘, 방황 후 다시 시작하는 아들에게
김용택 시인의 특별한 신작 산문


섬세한 언어와 감성이 돋보이는 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섬진강 시인’ 김용택. 한국시의 서정을 책임지는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자리를 가꾸어왔다. 자연을 노래하는 것은 물론 쉽고 재미있는 시읽기를 이야기하며 대중과의 만남에 앞장서온 시인으로서, 38년간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 진메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교육자로서, 정감 있는 산문과 어린이를 위한 책들을 집필해온 작가로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다정하고 따뜻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아들 민세에게 보낸 50통의 편지를 엮은 책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도 출간한 바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학문과 몸가짐, 인간의 도리에 대해 가르쳤다. 직접 불러 앉혀놓고 가르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편지 한 통 한 통마다에 곡진히 담았던 것이다. 편지로나마 자식을 위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은 지금도 다르지 않아 김용택 시인의 편지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 속 깊은 염려와 애정, 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보는 애틋함은 이 책에 가득하다.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은 책 읽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아들에게 한 편의 에세이를 보내듯 쓴 편지들로서 처음에는 책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일이 극히 사사로울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출판을 결심할 수 있었다. 4년에 걸쳐 꾸준히 쓴 편지들로 독자를 만났으며 자식을 둔 부모들은 물론 아들딸들이 참고할 내용이 무궁무진한 책으로 입소문이 났고 추천 필독서로 지금껏 회자된다.
『마음을 따르면 된다』는 그 이후 요리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들 민세의 모습이 나타난다. 대학을 갔지만 자퇴를 하고 방황을 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스펙’ 없는 청춘의 모습을 대변한다. 다시 새롭게 공부를 하고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민세에게 여전히 아버지는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청춘을 지나 서른 살이 된 민세의 인생 여정에 언제나 함께한 아버지의 간곡한 마음 78편을 엮었다.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아들 민세의 편지 30편도 수록했다는 점이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응원하는 마음을 편편에 수놓아 그 자체로 깊은 공감을 준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향한 문제의식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나의 마음을 따르는 법


김용택 시인은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의 걱정과 근심과 고민과 고통을 일찍이 알고 명쾌한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일류대학에 가기를 하나같이 소망한다. 모두 일등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모두 다 일등을 할 수는 없고, 모두 일류 대학을 갈 수는 없다”는 것. 문제는 모두가 ‘일등’과 ‘일류’를 지향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공교육과 사교육, 제도교육과 대안교육 사이에서 끊임없이 휘둘리며 초조해하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김용택 시인은 진정한 ‘교육’과 ‘성장’의 의미를 물었다. ‘행복이 무엇이고, 진정한 공부가 무엇이며, 삶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청춘들을 향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금수저’니 ‘스펙’이니 인간을 서열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급증에 걸린 이들을 감싸안는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아들 민세에게 건네는 충고와 격려는 비단 민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부모와 아들딸에게 보내는 편지기도 하다.


악착같이 살지 말거라. 남같이 살려고 하지 말거라. 너같이 살아라.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게 인생이다. 산 넘으면 산이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런 가파른 길과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그리고 아픔과 그 아픔을 넘어선 삶의 기쁨들이 조화를 이루며 성공이나 실패를 넘어 한 인간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
너의 외로움이 천천히 네 생의 꽃으로 피어나길 빈다.
네 몸과 마음에 늘 안심과 평화가 가득하길.
-36쪽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하며 마음의 행로를 자연스럽게 따른다면 혼란은 없을 것이라는 든든한 생각이다. 시인 어머니의 말처럼 “사람은 열 번 되므로” 천천히 차근차근 마음을 쌓고 가꾸다 보면 내 길이 보일 것이라는 희망을 말한다. 이는 공허한 외침이라기보다 인생 선배로서 후배인 아들에게 남기는 경험자의 믿음직한 말이다.


오늘을 잊지 말거라. 실패든 실수든 버릴 것이 없어야 한단다. 그것도 네 것이니 갈고닦아야 한다. 오늘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지 못하면 내일이 없다. 내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좌절할 때 절망할 때 고통스러울 때 외로울 때, 그때 잊히지 않은 실수를 결코 잊지 마라. 그것이 너를 키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너를 데리고 새로운 네 길을 내며 갈 것이다.
처음엔 다 길이 없었다. 내가 내 길을 만든다. 길이, 길이 된다. 네가 만든 길만이 네 길이 된다. 삶은 늘 떨리는 첫발이란다.
힘내라, 민세.
-31쪽에서



세상 모든 아들딸에게 보내는 마음
일상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는 것의 가치


시인은 여전히 아들이 운동은 하고 있는지, 일과 휴식의 분배는 잘 하고 있는지, 일은 즐기고 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책은 스스로 읽고 있는지, 일기는 쓰고 있는지 시시콜콜 관심을 쏟는다. 어느 학교 급식에서 나온 닭튀김을 보고는 아들이 좋아하는 닭튀김을 타지에서는 먹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아들이 떠난 집에서 아들이 누워 잠들었던 방 창문으로 비치는 나무를 보며 고단했을 “청춘의 잠자리”를 생각한다. 그러는 틈틈 고향 마을에 짓고 있는 일생의 집이며 할머니 건강, 엄마와 동생의 안위까지 늘 소식을 주고받는다. 고향 산천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아들 민세가 고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넓게 멀리 보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달이 예쁜 것을 아는 사람, 행복을 아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각자 갖는 것이며 행복 또한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당부의 바탕에는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다.


부부가 밥상에 앉아 있는 그 따사롭고 아름다운 그 가치 말이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집으로 가야 한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같이 먹는 일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걸 잊어버렸다.
-178쪽에서


책의 말미 민세가 “아빠처럼 살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독자에게 뭉클함을 안긴다. 호주에서 일하며 학교 다닐 학비를 모으고 다행히 원하던 학교에 입학해 올해 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들 민세는 오랜 꿈이었던 요리사가 곧 될 것이고 소중한 인연 또한 맺게 되었다. 이 책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어가는 자식에게 보내는 무한한 애정이 가득하다.
『마음을 따르면 된다』는 청춘을 지나가고 있는 세상 모든 아들딸에게 보내는 격려의 마음을 담아 누구에게나 애틋함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