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중혁의 비트 있는 신작 산문

노래와 계절에 깃든 유쾌함과 우수

 

‘문단의 호모 루덴스’ ‘인간 호기심 천국’으로 불릴 만큼 유쾌하고 다재다능한 그이지만, 어렸을 적 잡은 기타를 “어중간한 재능” 때문에 말 그대로 오랫동안 ‘잡고만 있던’ 기억이 없었다면, 현실을 잊으려고 필사적으로 음악을 들은 “애달픈” 기억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여유 만만한 모습은 될 수 없었을 거라고 소설가 김중혁은 돌이킨다. 그래서 그의 기억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비틀스로 귀를 틔우고 영어 가사를 한국어 발음으로 따라 부르던(“예스터데이, 올 마이 츄로블 씸쏘 파러웨이”) 어린 시절에 쉽게 가닿는다. 기타 플레이어로서 재능의 한계를 맞닥뜨리고, 그러면서 남의 재능을 흠모하며 음악을 듣고, 그러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고, 그 덕에 글쓰기가 좋아진 그의 기억들. 거기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었다. 이를테면 음악은 그에게 한계뿐 아니라 한계를 끌어안는 법까지 알려주었고, 그래서 그의 더없는 선생이며 친구다.
『모든 게 노래』는 소설가 김중혁이 모노톤 일상을 밝고 입체적인 빛으로 채색해준, 음악과 뮤지션이라는 고마운 동반자를 기리는 산문집이다. 김정미, 김추자의 옛 가요부터 써니힐의 최신 가요까지, 페퍼톤스 같은 인디 음악부터 가인 같은 대중음악까지, 그리고 비틀스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 킨크스, 팻 메스니에 이르는 ‘색깔 있는’ 곡들까지, 30년이 넘는 그의 음악 편력이 48개 꼭지에서 웃기고 유쾌하며 애틋한 일화들로 뭉게뭉게 피어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장으로 묶인 일화들은 때로는 소설가 김중혁의 감성을 완성해준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주이고, 때로는 고뇌하는 청춘에 대한 위로이며, 때로는 한 소설가의 문학 생활에 대한 지론이자, 때로는 소중한 일상에 바치는 연가다. 그렇게 저자는 음악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간의 풍화를 견딘다.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초조해하기보다는 당차게 시간을 마주하고 즐기는 “마법”을 독자와 공유한다.

 

무엇이든 노래가 될 수 있고, 우리는 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둘러보면, 모든 게 노래다.
7쪽, 「책을 내면서」에서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운다.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시간을 견딘다. 음악이야말로 가장 짜릿한 마법이다.
230쪽, 「무자비한 시간을 견디는 법」에서

 

 

“독학의 절정은 실패하는 과정에 있다”
이해보다는 위로가 필요한 우리의 노래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을 썼을 정도로 소리 없는 삶은 꿈도 못 꿀 음악광이지만, 저자는 중학교 2학년 때 기타를 잡으며 시작된 뮤지션의 꿈을 일찌감치 접었다. 다음과 같은 재능을 어릴 적에 깨닫는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기타를 연주한다.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손가락 끝에 집중하면서 연주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만다. 최근 기타와 관련한 이상한 증상이 하나 생겼다.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하면 졸린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는 기타 소리에 졸린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내는 소리에 졸린 건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고개를 흔들면서 졸음을 쫓아내보려고 하지만 손이 무겁고 고개가 무겁고 기타가 무겁다. 결국 30분도 못 돼서 기타를 놓고 만다. 아, 나무 그림을 그려서 새가 날아오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연주한 기타에 취해 잠이 들어버리는 악공이라니! 참으로 아름답구나.
104~105쪽, 「쌈바를 느껴라」에서

 

하지만 그럴수록 음악은 계속해서 울렸다. 그래서 더더욱 음악을 들었다. 레코드 가게가 단 두 개뿐인 김천에서 태어나 공연을 보려고 대구까지 원정을 나가야 했던 ‘콤플렉스’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래서 <월간팝송>을 끼고 ‘세계 3대 기타리스트의 계보’라든가 ‘딥 퍼플의 분파 요약’ 등을 달달 외웠고, 전투적으로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음악은 그에게 기다림과 인내조차 즐거움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세상엔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취향이 존재함을 일깨워줬다. 수많은 실패를 겪고 진짜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음악은 알려주었다.

 

독학의 절정은 실패하는 과정에 있다. (…) 취향에 맞지 않는 노래들을 많이 들어봐야 내가 어떤 노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으로 취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취향에 맞지 않은 음악들을 무수히 걸러내고 남은 ‘내 노래’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세상에, 음악이란 단어와 효율이란 단어는 얼마나 먼가. 13분짜리 곡을 듣다가 12분쯤에 온몸에 찌릿한 전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킵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 것이다.
32~33쪽, 「스킵하지 않겠다」에서

 

결국 음악 덕분에 저자는 ‘나’만 존재하던 1인칭의 세계에서 ‘남’과 더불어 사는 3인칭의 세계로 쉽게 발을 뻗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고, 그래서 ‘이해’보다는 ‘위로’를 말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게 노래』는 자신과 남 사이에서, 꿈과 실패 사이에서, 초조함과 인내 사이에서 고민할 청춘의 일상을 큭큭거리는 웃음과 느낌 있는 노래들로 따뜻하게 돌아본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이해를 믿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결론은 여전하다. ‘이해’라는 단어는 언젠가 완료될 수 있는 명사가 아니라 영원히 진행할 수밖에 없는 동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사십 대의 나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위로’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됐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93~94쪽, 「위로가 필요하다」에서


  

모뎀, PC통신, 음퀴방, <월간팝송>, ……
음악으로 떠올리는 ‘우리’의 기억

 

CD만 사면 아이튠스로 음악을 뽑아 아이팟에 담고, 일 년에 이어폰을 두 개나 사용할 만큼 음악을 끼고 사는 작가 김중혁. 그가 직접 그린 본문 삽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턴테이블에서 휴대용 카세트, CD 플레이어, M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까지 문명의 이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의 기억과 감성엔 정겨운 아날로그 시절의 배음이 깔리곤 한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놀 때면 대낮부터 평상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던 아저씨들이 늘 있었다. 길쭉한 병맥주를 여러 병 세워두고 오징어나 쥐포 같은 마른안주를 곁들인 다음, 동네의 날씨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술맛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 시절의 풍경이 그리울 때면 가끔 동네 친구와 낮술을 마시곤 한다.
75~76쪽, 「맥주는 술이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에서

 

인디 밴드 ‘바비빌’의 <맥주는 술이 아니지>를 듣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낮술에 빠지는 감성. 거기엔 음악을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세월 따위 훌쩍 뛰어넘어버리겠다는 결기가 있다. 『모든 게 노래』는 우리가 공유했던 음악과 앞으로 공유할 노래들의 선율을 타고 모뎀과 PC통신, <월간팝송>과 ‘음퀴방’의 시절로 다시 한 번 길을 터놓는다. ‘나’의 것이었다가 이제는 ‘우리’의 것이 된 오래전 기억들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떠올리며 단절된 시간들의 벽을 허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