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의 치열한 투병 시집, 유고 시집
“제5구역에서 이제 귀환한다, 허락해주길 오버”

 

2011년 4월 24일, 고(故) 윤성근 시인이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1981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시인은 1987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시작으로 네 권의 시집을 펴냈다. 1992년에 펴낸 마지막 시집 『나는 햄릿이다』 이후 20여 년 만에 내는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윤성근 시인의 1주기에 맞춰 출간한 유고 시집이다. 대장암 발병으로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하며 써내려간 시를 모은 이 시집은 한 시인의 치열한 투병 일지다. 86편의 시와 1편의 산문은 시인이 생전에 정리한 것으로, “시와 산문 제목, 토씨 하나까지 다 시인이 남긴 그대로다.”

 

이렇듯 아이러니와 도시적 멜랑콜리로 가득 찬 그의 네 번째 시집 『나는 햄릿이다』가 출간된 것이 1992년이었고 올해가 2012년이니, 윤성근 시인은 20여 년의 시간 만에 유고 시집의 형태로 한국 시단에, 독자 앞에 돌아온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시집인가, 얼마나 귀중한 시집인가. 이것이 유고 시집이 아니라면 얼마나 반갑고 흐뭇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이제 마지막 시집 『나 한 사람의 전쟁』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131쪽, 해설 「투병에서 자기 구원에 이르는 온몸으로서의 글쓰기 :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우리 모두의 전쟁’이니」에서

 
 

암병동에서 직면한 ‘리얼 라이프’
“과연 ‘다음’이 절대 없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윤성근 시인은 투병 생활 중 여러 권의 노트에 육필로 시를 쏟아냈다. 암병동에서 맞닥뜨린 육체의 고통과 여러 인간 군상들의 생생한 모습, 말기암 환자로서의 자아와 시인으로서의 자아의 충돌 등을 격하지 않은 감정으로 써내려갔다. 「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라는 산문에 시인의 담담함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행복했던가. 입원을 하고 갖은 곤욕을 치렀지만 퇴원을 하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암과 살거나 죽어야 할 운명이었으므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통증이 수그러들면서 진통제나 수면제 없이 살 수 있기만을 꿈꾸었고, 그래서 꿈자리가 사납지 않기만을 빌어볼 따름이었다.
―122쪽, 산문 「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에서

 

「물통」에서 시작하여 「고해」로 끝나는 이 시집은 “물질성으로 육체를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영혼의 자리로 서서히 나아가는 궤적”을 따른다. “나 이제 돌아가는 자리에 서서 / 많은 회한과 추억들에 망각의 콩고물을 입혀 / 거진 다 말라가는 나의 물통들에 대해 생각하니, 피부는 짓무르고 어깨는 결려와”라고 통증에 대해 써내려간 「물통」, “그렇게 다 지나가리라 / 우리를 백에 백 번은 순응케 하는 통각의 문을 즈려밟고 / 가는 길마다 내딛는 발길마다 끄집어지는 / 복대는 울려온다 / 이른바 외과적 상처라는 것과 더불어”라고 육체의 고통을 담담히 표현한 「복대」, 그리고 「폴대」라는 시에서는 “나는 그저 하루 받아 하루만 사는 처지 / 지금 제 눈앞에 밟히는 그 폴대와 몇 배 더 고통스런 / 그것을 멈춰주세요, 폴대를 세워주세요”라며 병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을 통해 그 물질성에 대해 말한다. 또한 시인 기형도, 소설가 이청준, 가수 김정호 등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당신과의 짧았던 만남을 되새김질하고 / 나는 길 떠나고자 합니다, 미지의 세계 다시 만날 때까지 / 안녕.”(「기형도 생각」에서)
극심한 통증 속에서 보낸 치열한 투병의 시간 또한 엿볼 수 있다. 크나큰 통증에 제프 린제이 장편 스릴러 시리즈의 주인공인 덱스터에게 “고통이 없는 곳, 형기가 없는 땅, 자책이 없는 땅으로” 자신을 데려가라고 하고(「덱스터여 나를 데려가다오」에서), 환자의 고통을 복날 개가 겪는 고통에 비유하면서 “자비를 베푸세요, 환자에게 복날은 고통의 날 / 삼가세요, 고통은 살아 있다”(「말복」에서)라고 말한다. 이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계’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갖지만 내세에 대한 환상은 거의 품지 않는다.(“시간이 흘러 미망은 걷히고 / 절반쯤 통증이 완화되는 날이 / 과연 ‘다음’이 절대 없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다음」에서) 마지막 시 「고해」에 이르러서는 작은 바람을 내놓으며 글쓰기를 통해 결국 “자기 구원에 도달한다.”

 

외로운 날에는 혼자 있게 하소서. / 슬픔이 차오를 때는 아무도 곁에 없게 하소서. / 아무것도 바라지 말게 하시고  / 앞의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면 내일은 적게 바라게 하소서. / 용서해주시고, 더 이상 용서를 빌지 않게 하소서. / 바라건대 더 큰 고통은 조금만 주시고 / 그리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지능을 갖게 하소서. / 이런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라고 할지라도 / 해량해주소서.
―115쪽, 「고해」 전문

 

 

끝까지 문학주의자였던 시인의 실존적 글쓰기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우리 모두의 전쟁이니”

 

스스로를 “아스팔트 킨트”라 칭하는 윤성근 시인, 1992년에 펴낸 시집을 마지막으로 ‘폐업 시인’을 선언했지만 마지막까지 문학주의자였다. 암병동에서 극렬한 고통을 견디면서도 가족과 사람과 삶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아내는 인증샷을, 아들은 아빠의 반백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 이 상황에 적당한가. / 뭐에 쓰겠는가”(「웃음요법」에서)처럼 가족애의 치유를 그리고, “세상의 모든 노모에게 / 안식을, 한 줌이라도 평온한 한때를”(「기도」에서)이라고 남겨질 어머니를 위해 기도한다.
『나 한 사람의 전쟁』은 한 개인의 치열한 투병 일지인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공감의 기록이다. 시인은 “나 한 사람의 전쟁”이라 말하지만,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전쟁이자 구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