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지식 아닌 느낌도 팝니다
단단한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가 말하는 일인 생활


“연구자이기 때문에 생각한 것은 팝니다만, 느낀 것은 팔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온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 『느낌을 팝니다』는 스스로 “금기를 깨고 느낀 것을 너무 많이 말한” 우에노 지즈코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이 담긴 산문이다.
뭐든지 알고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초인, 맷집 좋은 사회학자, 멋있지만 조금은 무서운 페미니스트, ‘한 번 걸려온 싸움은 절대로 피하지 않는 싸움꾼’ 등으로 불리는 도쿄대 명예교수 우에노 지즈코는 사회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고 날카로운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지즈코 교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편안하게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우에노 지즈코가 써 내려간 좋아하는 것, 예쁜 것, 기쁜 것, 즐거운 것들은 가볍지만 깊고, 심오하지만 침울하지 않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이면인 홀로 보내는 인생의 오후, 따뜻하고 조용한 시간이 담겨 있다.
우에노 지즈코는 본인이 묘사하는 자신의 이미지와 무방비 상태의 모습을 거칠 것 없이 보여준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싱글의 삶과 연구하는 주제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았다. 『느낌을 팝니다』는 우에노 지즈코의 팬이라면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느낌이고,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좋은 ‘우에노 지즈코 입문서’가 될 것이다.
옮긴이 나일등은 우에노 지즈코가 도쿄대학교에 재임 중인 시기를 함께 보낸 사회학자로서 지즈코 교수의 연구자적 면모뿐 아니라 생활인의 모습까지 애정을 담아 옮겼다. “우에노라는 인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에노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느낀 것’이 담겨 있는 이 책이 귀중한 재료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나의 공적인 이미지는 ‘일본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두려운 사회학자’다. 이 책에는 그런 이미지를 배반하는 글이 실려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 예쁜 것, 기쁜 것, 즐거움……. 그런 주제를 골라서 글을 쓰다 보면 평소 직업적 관심이 사회의 문제점, 추한 것, 용서할 수 없는 것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언젠가 “우에노 씨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분노입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사람은 분노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261쪽



인생의 참맛, 느껴야 제대로다
모든 것이 숙성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법


나는 혼자 있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 혼자이지 않은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말하면, 지금은 몸이 건강하고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는다. 언젠가 나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올까.
-249쪽


우에노 지즈코는 사회학자라는 직업에 대해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사회의 장래를 예언하고, 개개인의 불안과 요구에 답하는 접객업”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의 상담을 도맡기도 하고 주말까지 꽉 짜인 강의 스케줄,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일과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며, 자신이 누리는 고요한 삶의 소중함과 소소한 생활의 기쁨을 『느낌을 팝니다』에 적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각을 충분히 발효시키는 과정,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를 단련해온 내밀한 이야기를 읽을수록 저명한 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점점 더 가까운 존재로 느껴진다.
가나자와金?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어린 시절, 고독을 알아가던 십대, 미래가 보이지 않던 암울한 이십대, 여성으로서의 절정(결혼?임신?출산)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삼십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기억부터 싱글로서 노후의 삶을 계획하는 현재까지, 우에노 지즈코는 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단한 여성 사회학자가 된 배경인 “레코드 B면의 나”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늦여름. 인적이 사라진 해변 수영장. 나는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챙이 넓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안락의자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가능하면 늦은 오후가 좋다. 아아, 여름이 가는구나. 계절의 흐름을 이렇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때도 없다. 지나가는 것, 시들어가는 것, 저무는 것,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
-168쪽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제비꽃 향수 한 병. ‘곧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라는 사실을 곱씹으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금씩 뿌린다. 차는 되도록 큰 잔으로 마시고,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목욕 시간이면 물의 양을 100리터로 할지, 120리터 받을 것인지 고민하는 쩨쩨한 자신을 안타까워한다. 좋아하는 오래된 과자점이 없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지는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람에 몸을 맡기는 상쾌함 등 기억을 수집하는 우에노 지즈코. 연구자로서 긴장한 상태로 사회와 대결해온 그녀가 말하는 ‘혼자 생활하는 법’에는 지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번득이는 지혜와 촌철살인의 유머가 담겨 있다.


석양이 보이는 곳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 가능하면 산이 아니라 바닷가가 좋다. 수평선 위로 석양이 지는 것을 보며 하루하루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퇴한 뒤 작은 집을 짓고 매일 화려한 석양을 보면서 지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석양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독차지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 얼마든지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 손에서 일을 잠시 놓고 걸음을 멈출 여유만 있다면…….
-89쪽



초고령사회 진입하는 현실
두려움 없이 건강하게 사는 삶


고령자용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택을 ‘백 년 커뮤니티’로 계획하는 개발자가 있다. 그 설계 공모에 나도 관여했는데, 이렇게 자연이 풍요롭고 넓은 토지에 도시처럼 고층 집합 주택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다행히 주택들이 마치 외딴 집처럼 부지 안에 독립해서 산재한 계획이 채용되었다. 전화 한 통에 바로 달려갈 수 있다면 굳이 같은 지붕을 공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즈음 나의 노후 계획은 ‘재택 싱글’ 쪽으로 기울고 있다.
-207쪽


우에노 지즈코는 “언젠가는 꼭 혼자가 된다. 그것이 빨리 찾아올 것인가 늦게 찾아올 것인가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누구나 혼자가 되기까지 길고 긴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에게 “어느새 과거형으로 인생을 말하는 시점”이 왔다고 하며 노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
‘싸움의 달인’ 우에노 지즈코 역시 다른 이들처럼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환갑이 된 페미니스트들과 노래하고 춤추는 파티를 열고 친구들의 과거가 아닌 현재의 모습을 존중하며 지속적으로 우정을 쌓는다. 특히 명절이 되면 돌아갈 곳이 없어서, 생각을 거듭한 끝에 싱글인 베이비 붐 세대 친구들과 “명절 가족”을 만들어 반갑게 새해를 맞이한다. 건강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노력하는 우에노 지즈코의 유쾌하고 멋진 나날을 살펴볼 수 있다.


늙은 여성이 옛날부터 나이가 많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들은 70세, 80세, 90세가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늙은 여성을 부정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늙은 여성이 이 경험에 대해서 말하면 말할수록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일인지 알게 됩니다.
-216쪽


학자로서 초고령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언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그 과정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시설, 인지증에 기억을 잃고 있는 노인들의 인권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의 벽에 직접 부딪혀가며 고찰해 주목받았다. “인간으로 사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말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며 충실하게 살아온 우에노 지즈코. 『느낌을 팝니다』에서 고백하는 이야기는 삶에 밀착해서 사회의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던 시기,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던 때의 생생한 묘사 등은 좌충우돌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뭐든 할 수 있는 초인이라 불리는 캐릭터 뒤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육체를 가진 섬세한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악을 상정하고 그때그때 순발력 있게 대처해온, 쉼 없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우에노 지즈코의 삶은 홀로 노후의 시간을 보낼 이들에게 칠십대 팔십대 구십대의 시간을 새롭게 발견해나가는 당당한 자신감과 용기를 준다.



추천사


지즈코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사회학자는 “개개인의 불안과 요구에 답하는 접객업” 종사자다. 접객업 종사자 사회학자는 남의 이야기 재현엔 능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접객하지 못한다. 여기 예외가 있다. 우에노 지즈코는 자신을 접객하고 그 접객을 기록으로 남겼다.
명성을 얻은 사람이 인생의 황혼기에 유명세가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을 때 발휘되는 독특한 태도가 있다. 아도르노는 후기 미켈란젤로와 베토벤에서 발견되는 이 특별함을 ‘말년 양식’이라 명명했다. 우에노 지즈코의 『느낌을 팝니다』는 ‘말년 양식’의 사회학적 판본이다.
이 책은 가볍지만 깊고, 심오하지만 침울하지 않으며, 섬세하지만 조잡하지 않고, 지나온 것들을 추억하지만 애수에 젖어 있지 않다. 여기엔 지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번득이는 지혜가, 당혹스러울 만큼 아무렇지도 않은 양 천연덕스럽게 드러내는 삶의 속살과 난데없이 등장하는 촌철살인의 유머까지 들어 있다. ‘말년 양식’이 조각이나 음악이 아니라 텍스트로 빚어질 수도 있음을 이 책이 보여준다. ‘말년 양식’이 구현된 삶의 풍경이 궁금한 사람에게 『느낌을 팝니다』는 말 그대로 ‘안성맞춤’ 격이다.

노명우(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