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는 하나의 명저를 낳는다
고전을 읽는 것은 ‘초월’을 경험하는 것

 

지금까지 4000여 권의 책을 읽은 20년차 출판 기자이자 1991년 등단한 시인 허연. 그가 엄선한 고전은 어떤 책일까. <매일경제> 에 2010년 4월부터 매주 연재된 「허연의 명저 산책」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고전 탐닉』에 담긴 56권은 플라톤, 공자에서 미셸 푸코, 토머스 쿤 등 시대와 동서양을 아우르며 문학과 철학, 사회, 과학 등 분야 또한 다양하다. 요컨대 『고전 탐닉』은 고전의 세계로 떠나기 직전의 관문 같은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은 어렵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독서는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라는 헤럴드 블룸의 말을 인용하며 “고전을 읽는 것은 ‘초월’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전 탐닉』은 지식 습득을 위한 독서를 넘어, 내면의 성장을 돕고 기성 가치와 사회에 의문을 품어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도록 독려한다.

 
 

모든 고전은 당대의 문제작이었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 고전에서 배우다


모든 고전은 당대의 문제작이었다. 현실과 치열하게 싸우고 고민한 데서 태어난 책이다. 있던 것에 조금 나은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닌, 당대의 흐름을 바꾸고 스스로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미학이 된 것, 그것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이 되었다. 그 치열함이 고전의 힘이다.

 

『종의 기원』은 신과 인간의 지위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처음에 그토록 단순했던 것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형상들이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생명에는 장엄함이 있다.” 신도 인간도 아닌 모든 생명체에 바친 이 헌사는 인류의 역사를 ‘다윈 이전’과 ‘다윈 이후’로 나누는 결정적인 세계관을 제시했다.
-118쪽 「“생명은 어느 날 갑자기 창조되지 않았다” : 찰스 다윈 / 『종의 기원』」에서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아드소의 독백을 통해 도서관을 “수많은 지성에서 비롯한 비밀의 보고, 그 비밀을 만들어냈거나 전승한 사람들의 죽음마저 초월한 존재”라 말했다. 여기서 도서관을 고전으로 대체해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고전은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가치를 더해간다. 그 변함없는 힘으로 현재를 새롭게 보게 하고, 당면 과제에 대처할 ‘태도’,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준다. 현대의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자에서 미셸 푸코까지,
고전 한 권을 네 페이지로 읽는다


이 책은 문학, 철학,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소개한다. 톨스토이가 임종할 때 옆에 두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동양 사상의 궁극의 경지 『장자』, 근대 국가의 이론적 토대가 된 『리바이어던』, ‘패러다임’으로 과학사에 우뚝 선 걸작 『과학혁명의 구조』, 마르크스의 『자본론』,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등, 그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과 후를 뚜렷하게 가른 고전이자 명저다.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은 충격적이다. (…) 이 소설은 20세기 초까지 인간들이 도저히 벗어나지 못했던 철옹성 같은 기본 틀 몇 개를 철저히 해체했다. 그 첫 번째가 ‘몸’이다. (…) 두 번째로 카프카가 해체한 건 ‘가족’이었다. (…) 세 번째로 카프카는 ‘공간’, 즉 집을 해체한다. (…) 카프카는 이 소설 한 편을 통해 당시 움트기 시작한 ‘산업 사회가 잉태한 현대성’이라는 것에 의문 부호를 단 것이다. 카프카가 『변신』에서 천착했던 문제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것들이다. (…) 소설 『변신』은 카프카의 DNA와 경험, 그리고 현실이 함께 버무려져 탄생한 작품이다.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30~32쪽 「현대인의 불안을 헤집는 20세기 문학의 문제적 신화 : 프란츠 카프카 / 『변신』」에서

 

『변신』에 관한 핵심 내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자는 고전 한 편의 소개를 네 페이지에 압축적으로 담았다. 한 편 한 편 거듭 읽고 고민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짧은 분량 안에 그 작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문장을 발췌해 원본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작품의 탄생 배경, 작가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작품이 지닌 의미, 당대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까지 담아 작품의 윤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고전은 내게 구원의 다른 이름이었다”
무엇을 읽느냐는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인생의 전환기에 만난 고전의 이야기를 곳곳에 녹였다. “내가 그 책들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 책들이 내게 와서 무엇이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자신이 고전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때 고전은 내게 구원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고전을 읽으며 거대 공간과 거대 시간을 사는 방법을 배웠다. 고전으로 인해 비록 몸은 연일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작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꿈을 꿀 수 있었고, 내가 세상의 어디쯤 존재하는지 좌표를 볼 수 있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비밀의 문을 하나씩 여는 것 같았다.
─8쪽 「책을 내면서 : 고전, 구원이자 초월」에서

 

이 책이 다른 고전 안내서와 달리 친근감을 갖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기자의 예리한 시선과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이 만난 『고전 탐닉』.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을 토대로 막막하게만 생각했던 고전 읽기에 한 걸음 다가간다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그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휩쓸리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의 근본을 살피거나 다양한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