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찬사를 받은 소설,
21세기형 학계 풍자소설 『교수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데이비드 로지의 『교수들Small World』은 움베르토 에코가 “최근 100년간 출판된 소설 가운데 가장 재미있고 진실하고 잔인할 정도로 유쾌한 소설 중 하나”라고 평한 작품이다(영어판 『장미의 이름』에는 데이비드 로지가 추천사를 썼다). 작가는 이미 국내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 2008)과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슬라보예 지젝, 2008)와 같은 책들을 통해 이론을 겸비한 작가로 알려져왔다(앞의 책에는 『교수들』과 『자리바꿈Changing Places』이 요약 소개되었고, 뒤의 책에는 데이비드 로지의 『훌륭한 솜씨Nice Work』가 『멋진 세계Nice World』로 잘못 재인용되었다).


이제야 국내에 본격 소개되는 이 작품은 국제학술회의와 영어권 밖의 영어영문학 교수협회 주관 학술회의들, 즉 교수 사회이자 학계를 주 무대로 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몇몇의 작가, 출판업자, 관련자들을 제외하고는, 주로 ‘전세계를 캠퍼스 삼아 제트기를 타고 여행하는 학자들’이다. 『교수들』은 그들의 면면을 드러내며 각자 야심과 욕망을 보여주는데, 학자들의 국적은 영국, 아일랜드, 미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터키, 일본, 한국 등에 이를 정도로 전세계적이다. “나는 제트기 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학자 사회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회는 국제적인 연줄과 가벼운 여행 짐과 후한 여행 보조금을 가진 교수들의 이동 카라반이었다. 나도 이 범세계적인 대학 캠퍼스의 일원이 되어 있는 듯했다.”(「작가의 말」에서) 꽤 여러 해 동안 학술대회를 다니다 보니, 작가는 현대문학계의 문예비평과 이론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과 그 자리가 만남의 장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학술회의에 대한 소설이자 학계 풍자소설이 탄생한 배경이다.



로맨스의 주인공처럼 성배를 찾아다니는 교수들,
그들이 보여주는 교수 사회의 천태만상


성배聖杯 전설의 아서 왕Arthur King과 어부 왕Fisher King 전설의 어부 왕에서 따온 이름을 가졌으며 신체적·지적으로 불능인 은퇴한 문예이론가 아서 킹피셔를 중심에 두고, 교수들은 성배를 탐색하는 기사들처럼 학술회의에 참가하며 세계를 일주한다. 특히 이들 가운데 신참내기인 퍼스 맥개리글(성배의 비밀을 간직한 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통받는 ‘늙은 왕’을 회복시켜주는 기사 퍼시벌에 다름 아닌)이 안젤리카라는 여성 학자의 사랑을 찾아 가장 왕성하게 전세계를 헤집고 다닌다. 이 와중에 학자 사회의 별의별 모습이 다 풍자적으로 그려진다. 자기 발표만 하고 학술회의장에서 내빼기, 학술회의에 참가한 이성에게 치근대기, 잘못된 임용, 경쟁 교수의 저서 읽지도 않고 폄하하기, 경쟁 교수의 저서 일부러 비판하기, 한번 쓴 논문 재탕삼탕하기, 표절, 제자와 성적性的으로 성적成績 거래하기, 명성과 자리에 대한 야욕, 학자끼리 난교 파티하기 등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오죽하면 에코가 “『교수들』은 저항 불가능한 희극성을 담고 있어서 소설 속의 진실은 대단히 웃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 진실은 패러독스와 광란의 한계점에 도달한다.”라고 했겠는가.


풍자에 버무린 문학작품을 읽음으로 지적인 만족감과 재미를 동시에 얻게 하는 『교수들』은 (중세) 로맨스 문학에 현대의 학계를 오버랩하고 있다. 성배-어부 왕 전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문학작품들이 심심찮게 인용되거나 인유되며 소설의 구조적 틀을 이루는 방식이다. T. S. 엘리엇의 「황무지」, 제시 웨스튼의 『의식儀式과 모험문학』, 에드먼드 스펜서의 『더 페어리 퀸』, 테니슨의 「아서 왕 낭만 서사시」의 「성배聖杯」 등이 그것이다. 더불어 문학계와 학술회의를 배경으로 한 소설답게 제프리 초서, 존 밀턴, W. B. 예이츠, 존 키츠, 셰익스피어, 윌리엄 해즐릿,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등 상당량의 문학작품이 소설 곳곳에 장치를 만들고, 여기에 러시아 형식주의, 신비평, 구조주의, 기호학, 독자반응비평,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론 등의 문학비평용어(사조思潮)와 로만 야콥슨, 빅토르 쉬클로프스키, I. A. 리처즈, C. S. 퍼스, 매슈 아놀드, 노스롭 프라이, 데리다 등의 이론가들까지 다루어진다.


통찰하자면, 『교수들』은 사랑이라는 성배를 찾아다니는 신참내기 교수 퍼스가, 문예이론이라는 성배의 비밀을 간직한 채 은퇴해 있는, 문예이론계의 제1인자 아서 킹피셔를 성적·문예이론적인 불능에서 구원해낸다는 이야기다. 아서 킹피셔는 러시아 형식주의, 신비평, 구조주의 등을 두루 통섭한 국제 문예이론계의 제1인자이고, 퍼스는 겨우 석사학위를 딴 데다 C. S. 퍼스와 이름은 유사하지만 구조주의조차 제대로 모른다. 그럼에도 ‘아서 왕-피셔 킹 전설’에서처럼 그는 성배의 의미와 소재所在를 묻는 질문으로 아서 킹피셔가 깨어나 유네스코 문예비평위원직에 오르게 한다. 반면 제1인자에게나 합당한 ‘유네스코 문예비평위원직’을 두고 서로 경쟁하거나 이러저러한 문예이론을 품고 학술회의로 몰려다니던 다른 교수들은 헛된 야심과 욕망을 좇는 기사들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