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창업’의 현실


매일 출퇴근 전쟁과 야근을 반복하는 것은 천오백만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일상이다. ‘회사 때려치우고 창업이나 해볼까’ 하는 직장인들의 생각은, 지겨운 일상을 버티게 하는 로망이자 당장 사표를 쓰게 하는 열병의 바이러스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온라인 상담게시판에는 창업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고 서점에는 친절한 창업 안내서, 귀를 솔깃하게 하는 창업 성공 스토리가 가득하다. 누구 밑에서 일하지 않고 ‘사장boss’이 되고 싶은 마음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08년 2월 28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창업할 때 알아야 할 것들Been There... Done That... Here’s How: advise people whether they should become entrepreneurs and, if they do, what the basic rules are for success」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있고, 그중 5명은 실제로 창업을 준비했다고 한다.(2008년 2월 4일자 <연합뉴스>)


『낭만적 밥벌이』의 주인공 키키봉은 지긋지긋한 야근이 싫어 프리랜서를 선택한 카피라이터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야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직속상관 때문에 밤 12시가 넘도록 퇴근도 못한 채 아까운 청춘을 보냈다. 그래서 회사를 때려치웠지만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프리랜서는 딱히 정해진 업무 시간도 없기에 잡았던 약속을 다 취소하고 회의에 끌려가야 하기가 일쑤, 그러나 일이 몰리지 않는 보통 때에는 주중에도 시간이 많고 주말에도 시간이 많다. 주말에는 20년 지기 곤과 커플들을 피해 순대국밥집에 갔다가 게임방에서 게임을 한다. 퇴근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일하는 대한민국 직장인 대표 곤이나 시간이 남아도는 키키봉이나 둘이 만나 하는 일은 게임과 여자 얘기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심심해서’ ‘창업’을 결심한다. 모든 사람들이 말로만 하는 ‘그까짓 창업’을 저지르기로 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반응은? “너 정말 심심하구나.”


창업 아이템은 카페, 게다가 창업 동네는 홍대다. 인디밴드, 프리마켓, 거리 예술가 등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홍대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곳곳에 숨어 있는 카페다. 지금 홍대는 각 카페만의 스타일에 중독된 단골손님들로 가득하다. 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카페는 수백 개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카페가 생긴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라고는 자판기 커피밖에 모르고 중학교 이후로 음악과 담을 쌓은 키키봉이 ‘그’ 홍대에서 카페를 차린다고? “오픈은 아무도 모른다!”



타산지석, 단순히 성공 창업 수기가 아니다


폼 나게 ‘사장되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주인공은 삽질한다. 그에겐 심심할 틈도 없이 사건이 터졌다. 헤이리 편의점과 아이스크림 가게를 거쳐 홍대 카페로 창업 아이템을 결정한 것, 홍대 상권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3일 만에 수천만 원짜리 계약을 해야만 했던 점포 임대, 매년 같은 영화만 틀어주는 추석 특집처럼 진전 없는 인테리어 공사, 20년 지기 동업자 곤과의 갈등, 개업 직후 몇십 년 만에 한다는 하수도 공사로 진입로가 막힌 일 등 말로 하자면 3박 4일이고 글로 풀어내면 한 권의 책이 될 그 이야기가 정말로 활자화되었다. 『낭만적 밥벌이』는 커피와 와인, 인테리어와 음악에 문외한인 주인공 키키봉이 카페를 창업하며 겪었던 황당한 에피소드들의 기록이다. 바로 이 점이 『낭만적 밥벌이』가 성공한 창업 수기나 창업할 때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담은 실용서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물론 키키봉이 몰라서 고생한 것들만 피한다면 웬만한 사람은 창업을 할 수도 있다.)


눈물로 인연을 마감한 스타일리스트는 일주일 동안 화장실 타일을 붙였고, 말로써 공사를 다 끝낸 것 같은 인테리어 실장은 결국 일주일 동안 카페 바닥을 파헤친 것 외에는 한 것이 없게 됐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오픈 예정일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이다. 키키봉은 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체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모든 일에 변수는 있는 것이니까, 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왜 그놈의 변수는 키키봉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변수인력의 법칙 한가운데에 키키봉이 서 있다. 축 쳐진 어깨에 눈물을 글썽이며 불쌍하고 외롭게. 하아! 키키봉은 외롭다.(74~75쪽)



프리랜서, 30대, 노총각의 캐릭터가 살아 있는 성장기록


저자 조한웅은 이미 이글루스, 네이버 등에서 글 잘쓰기로 소문난 인기 블로거다. 닉네임 ‘키키봉’으로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에「독신별곡」을 연재하기도 했다. 유치하지만 소심해서 정이 가는 『낭만적 밥벌이』의 캐릭터 키키봉과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듯한 생생한 대화체 구성, 일상생활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말본새는 인터넷 글쓰기와 닮아 있다. 하지만 내용 없이 웃기고 가볍지만은 않다. 처음이라 서툴고 몰라서 어려웠던 모든 창업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어른의 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 군상들과 사건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정리한다. 프리랜서, 30대, 노총각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저자가 동시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성장기고 인생상담인 것이다.


사람을 믿고 이것저것 항목을 넣지 않은 허술한 계약서로는 어떤 법적 조치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창업 초보자인 키키봉도 그걸 알기에 분하면서도 뭔가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곤의 말대로 이런 손실은 고스란히 수업료가 될 것이다. (……) 모든 것은 계약 전에 이뤄져야 한다. 계약을 한 후에 불이익을 당했을 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따지는 것은 문서로 돌아가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의미가 없다.(166쪽)



‘낭만적 밥벌이’ ― 부업이냐, 전직이냐


15년 전, ‘카피라이터’란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근사한 이름이었다. 카피라이터가 광고 문안만 작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카피라이터가 아닌 ‘광고문안가’란 이름이었다면 나는 카피라이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업으로 카페를 창업하려 했던 것도 바로 그 근사함 때문이었다. ‘카페’ 하면 고작 다음이나 네이버를 떠올리는 지인들에게 나는 홍대에 진짜 카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음악을 들으며 카페에서 카피를 쓰며 산다고 폼 나게 자랑하고 싶었다.(「책머리에」에서)


고단하고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느닷없이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레고 아티스트 나단 사와야(34)는 변호사를 때려치우고 전업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고, <뉴욕커>의 문학 담당 기자였던 빌 버포트(55)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방에서 파스타를 배우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보그>, <엘르>, <바자> 등 국내 유명 패션잡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 박경일(46)은 외국 은행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서른 둘의 뒤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김종건(59)은 연봉 1억을 받던 외국계 보험회사를 뛰쳐나와 신림동 헌책방 도동서원의 주인장이 되었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돈을 벌어 먹고사는 것은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다. 키키봉도 ‘카페나’ 하고 적당히 ‘글이나’ 쓰면서 폼 나게 살고 싶어서 부업으로 카페를 차렸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은 25.4%(2008년 통계청)로 그 수치는 영국 11.4%, 일본 10.8%, 독일 10.0%, 미국 7.1% 등을 훨씬 웃돌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17만 9천 명이 감소했다. 이는 소규모 업체들이 폐업·도산하는 사례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신중하고 냉철한’ 키키봉은 본업의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부업으로 카페를 창업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많은 일들에 금적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진한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치밀한’ 키키봉은 시행착오와 그 사이 자신에게 일어난 많은 변화들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솔직하게 보여준다.


세 달 전만 해도 키키봉과 곤은 기껏 게임과 여자 얘기뿐이었다. 카페를 오픈하고 나서 나누는 키키봉과 곤의 대화는 리앤키키봉에 관계된 것들로 바뀌었다. 카페를 오픈한 것이 둘의 궁극적 꿈은 아닐지라도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키키봉과 곤은 리앤키키봉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경험을 하고 있다. 그날 순대국밥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가 그저 대화로 그쳤다면 만나지 못할 시간들이었다.(182~183쪽)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낭만적 밥벌이를 도모하는 세상의 모든 분들이여! 키키봉도 했다. 저질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