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어느 날, 앵커 미션을 받다

드라마 <미스티>보다 리얼하고 <뉴스룸>보다 치열한 일터 브리핑 


"네? 앵커요? 제가요?" 

지방간에 복부비만, 다크서클까지 쓰리콤보로 달고 사는 MBC 정치팀 기자 김지경. 워킹맘으로 하루를 하얗게 불사르던 마흔의 어느 날 미션이 떨어졌으니, 바로 토요일 아침 <뉴스 투데이> 앵커를 맡으라는 것. 방송국 스튜디오보다 길 위의 현장이 익숙하고 뉴스 진행보다 취재가 체질인 ‘본투비 기자’였기에 급작스러운 발령 소식에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초보 앵커 김지경은 과연 무사히 뉴스를 끝낼 수 있을까? 여느 여성 앵커보다 조금 큰 사이즈 탓에 앵커룸에는 맞는 옷이 없질 않나, 사건 특보 하다 삑사리를 내질 않나, 하루하루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하지만 마흔에 기자 출신으로 워킹맘 앵커가 되는 일을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닌 방송계의 ‘상식’으로 만들기 위해 김 앵커는 직진을 멈추지 않는다. 꼭두새벽에 출근해 뉴스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물론이요, 카메라 빨간 불빛 앞에서 뉴스 스태프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선배로서 때로 한계에 부딪히지만 순응하기보다 질문하고, 날 세우기보다 스스로 선한 영향력이 될 방법을 고민한다. 김지경 앵커의『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는 드라마 <미스티>보다 리얼한 현장 방송기이자, <뉴스룸>보다 치열한 고군분투 일터 브리핑이다. 무엇보다 진지한 순간에도 자신의 실패담이나 한계마저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과 유머러스한 입담은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낼 것이다.


전화를 받아보니 세상에. 

나더러 뉴스 앵커를 하란 얘기였다. 지금은 아나운서 둘이 진행하고 있는 주말 아침 뉴스를, 그것도 진행시간이 거의 한 시간 반에 육박하는 주요 뉴스를, 남자 기자와 둘이 맡아서 하라는 거였다. 뉴스나 프로그램 진행 경험이 없는 기자가 새로 앵커를 맡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이른바 40대 아줌마가 앵커라니, 이례적 인사였다. 

다른 보도국 기자들에게도 궁금증은 샘솟듯 솟아났다.

“갑자기 왜 저예요?”

“기자들 중에 앵커군이 너무 없어서 주말 아침에 훈련용으로 시켜보려고.”

“근데 왜 저를?”

“그건 잘 모르겠네? 너도 모르니?” 

_8~9쪽



“때로는 흔들리는 것조차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쓰리잡 앵커의 일하는 마음과 통찰


어쩌다 쓰리잡 앵커(기자+앵커+워킹맘)가 되긴 했지만 앵커로 일하는 동안 다짐한 한 가지가  적어도 자신 이후 40대 여성들의 앵커 진출을 막는 일만은 없도록 하자는 것.

한데 막상 앵커가 되고 보니 여성으로서, 워킹맘으로서, 조직 내 중간 관리자로서 마주친 문제적 현실이 있다. 어째서 외모는 시청자에 대한 예의이고, 왜 생리로 인한 컨디션 난조는 숨겨야만 하며, 또 자신을 비롯한 워킹맘들에게 커리어 관리란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몹시 의아한 것이다. 자신이 문제라 느끼는 것을 ‘관례’라는 이름으로 오케이 하고 싶지는 않기에 방송계 성차별부터 권위적 조직문화까지, 그는 일터에서 겪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일례로 뉴스의 오프닝 멘트를 남성 앵커가 먼저 읽는 것을 문제라 느끼고는 조직 내 여론을 파악하고, 다른 선례를 조사하고, 지지자들을 확보한 뒤 마침내 뉴스 담당자를 설득해 뉴스 진행을 여성 앵커가 먼저 시작하도록 바꿔낸다. 여전히 앵커 구성이 ‘나이 든 남성 앵커와 젊은 여성 앵커’로 고착화되고, 남성 앵커가 오프닝 멘트와 정치 뉴스를 주로 담당하며, 국가인권위도 이를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사례로 지적한 현실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성 앵커에게만 유독 나이와 외모를 능력의 잣대로 삼는 방송계에서 김 앵커 또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잔다르크는 못 돼도 쫄보는 되지 말자’는 태도로 용기 내 조직의 룰에 맞서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커리어우먼의 ‘화려한 성공담’은 아닐지라도 더 나은 ‘내 일’을 꿈꾸며 일상에서 작은 승리를 이어가는 ‘사소한 성장담’이야말로 지금 우리네 일터에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TV 뉴스 속 여자 앵커가 안 예쁘면 얼마나 많은 곳에서 불평이 들려오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렇다고 꾸미면 티낸다고 얼마나 많은 수군거림을 듣는지도. 

뉴스 중에 심각한 눈빛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일, 아니면 심각한 마음으로 기사 한 줄 더 확인하는 일, 과연 어느 쪽에 더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할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성 앵커로 발탁되는 것, 또는 오래도록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시청자 앞에 서는 것 중에 더 목표로 삼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 여성 앵커로 살며 나는 종종 헷갈렸고 때로는 무력한 기분이었다.

(…) 때로는 흔들리는 것조차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관심 없던 다이어트를 해보고, 그러다가 용기를 내 포기 선언도 하면서, 맞서고 때로는 타협하며, 고민하며, 연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_김소영_방송인‧책발전소 대표



여기 일하는 언니들이 있다  

성공보다 성장, ‘여적여’ 말고 자매애


비록 뉴스 진행자는 앵커 두 명이지만,『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에는 한 편의 뉴스가 만들어지기까지 제 역할을 다하는 각 분야의 여성들이 등장해 목소리를 들려준다. 매회 방송용 옷을 골라주는 ‘코디님’이 전하는 방송사 별 앵커복 스타일, 뉴스 화면 한 켠을 차지한 수화통역사들이 본 청각장애인들의 세계, 스튜디오 크로마키 앞에 선 기상 캐스터들의 뉴스 준비 과정 등이 그것이다. 

이는 뉴스가 협업을 통해 제작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일터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야 한다는 김 앵커의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의 서사를 전할 때 일의 의미를 찾는 것도, 미래를 꿈꾸는 것도 가능할 테니 말이다. 이에 더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신은 올바른 변화의 방향을 좇으면서도 각자의 선택을 지지하는 유연함 또한 김 앵커의 ‘일하는 마음’과 태도로서 눈여겨볼 만하다. 

반갑게도 그가 앵커를 맡은 뒤 메인 앵커에 40대 여성 앵커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바탕에는 저자가 만난 이 사회의 ‘왕언니’들―성폭력 피해자인 후배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루머를 감당하는 A, 국정감사 시즌에 여성 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제보하는 보좌관 B, 사기업 임원으로 사투를 벌이는 C 등―의 활약이 자리할 테다. 이런 언니들의 기운을 받아 김 앵커는 꿈꿔본다. “나도 언젠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왕언니의 위치에 오르면 ‘젊음과 미모’라는 획일적인 기준 말고, 다양한 매력과 능력을 반영해 색색깔 아름다운 이들로 스튜디오를 채워보고 싶다”고.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와 성장을 고민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김 앵커의 다채로운 분투기는 든든한 선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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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뉴스 속 여자 앵커가 안 예쁘면 얼마나 많은 곳에서 불평이 들려오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렇다고 꾸미면 티낸다고 얼마나 많은 수군거림을 듣는지도. 

뉴스 중에 심각한 눈빛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일, 아니면 심각한 마음으로 기사 한 줄 더 확인하는 일, 과연 어느 쪽에 더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할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성 앵커로 발탁되는 것, 또는 오래도록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시청자 앞에 서는 것 중에 더 목표로 삼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 여성 앵커로 살며 나는 종종 헷갈렸고 때로는 무력한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유난스럽다 말하겠지. 잘생기고 훌륭한 남자 앵커도 있다고,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사람도 많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성 앵커들이 이러한 문제에서 하루라도 빨리 자유로워질 때, 이 세상에 더 좋은 뉴스 프로그램이 많아질 거라고 나는 믿는다.

때로는 흔들리는 것조차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관심 없던 다이어트를 해보고, 그러다가 용기를 내 포기 선언도 하면서, 맞서고 때로는 타협하며, 고민하며, 연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_김소영. 방송인‧책발전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