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스미는 책, 자꾸 되새기는 책, 어디서나 함께할 책
마음산 문고의 네 번째 묶음 『이승우 글쓰기』


문고의 사전적 정의는 “대중에 널리 보급할 수 있도록 저렴하고 휴대하기 편하게 부문별·내용별 등 일정한 체계로 자그마하게 만든 책”으로 독일의 레클람, 프랑스의 크세즈,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가 대표적이다. 이 책들은 차별 없는 지식에 앞장선 출판물로서 한 나라의 출판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마음산 문고는 지식의 보급이라는 문고 본래의 목적에서 한발 나아가 ‘지금 이곳’의 감성과 사고를 큐레이팅한다는 의의를 더했다. 트렌드와 콘셉트에 맞춰 여러 권씩 짝짓는 일종의 ‘모듈’ 형식으로 2017년 1월 <요네하라 마리 특별 문고> 5종, 같은 해 5월 이해인 수녀의 <사랑·기쁨 문고> 2종, 2018년 1월 <문학과 삶>(『랭보의 마지막 날』 『프루스트의 독서』)을 출간했다.
마음산 문고의 2019년 첫 모듈은 오랫동안 구할 수 없던 소설가 이승우의 글쓰기책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와 『소설을 살다』로 짝을 맞췄다. “소설로 인생에 복무한다”라고 말하며 등단 이래 줄곧 삶과 괴리되지 않은 소설을 궁구한 그의, ‘소설 쓰기’와 ‘소설가 되기’에 관한 깊은 생각이 담겼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현직 문예창작학과 교수이기도 한 그가 자기 소설을 갖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소설의 기술을 정리한 산문이며, 『소설을 살다』는 무엇이 소설을 쓰게 하며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산문이다. 세월을 타지 않는 소설가의 수칙을 읽으면 자신의 글을 쓰는 데, 자기의 이야기를 갖는 데 충분한 동기와 의욕을 갖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책이 나온다. 책을 읽다가 나는 아직 쓰이지 않은, 그러나 곧 쓰일 또 다른 책을 발견한다.
─『소설을 살다』 73쪽



쓴다는 것과 산다는 것의 의미
소설가 이승우의 창작 노트, 삶 쓰기


훌륭한 소설 작품은 정교한 기술의 산문이 아니고 심오한 정신의 산물이다. 문학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심미적 기준을 테크닉의 수준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오해다. (…)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편의 소설은, 그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까지의 그 작가의 삶의 총체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온다. 축적해놓은 것이 없으면 나올 것이 없다. 차면 넘치는 이치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79쪽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와 『소설을 살다』의 초판은 각각 2006년과 2008년에 처음 출간됐다. 그의 작품이 독일과 프랑스 등 해외에 소개되기 시작한 지 10여 년 뒤, 그게 이문화에 대한 일시적인 호감 때문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동력 때문임을 입증하고 나서다. 작가로서 그만한 궤도에 오른 뒤에도 그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자신이 얻은 것을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이 두 산문집은 그가 삶에 복무하듯 글을 써오면서 깨달은 소설가의 기술과 태도를 따뜻하게 전한다.
두 책 모두 궁극적으로 소설 쓰기와 삶이라는 주제를 말하지만 방식은 서로 다르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가이면서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그가 1981년 등단한 뒤 오랫동안 소설을 써오며 쌓은 깊이 있는 노하우가 담긴 창작 노트다. 좋은 소설가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좋은 독자라는 점, 낯익은 일상이 낯설게 보여야 한다는 점, 절실한 이야기는 그만큼 드러내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처럼 소설가의 태도와 관련된 이야기뿐 아니라 소설을 쓸 때 반드시 고민하게 되는 원칙과 요소 들을 오래도록 고민한 결과다. 실제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뿐 아니라 더 나은 글쓰기를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참고가 될 이야기가 담겼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가 소설의 이론이라면 『소설을 살다』는 소설가의 실제라고 부를 만한 산문이다. 무엇을 먹고 읽고 듣고 느끼고 배우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보여줄 소설가 이승우의 내밀한 경험들이 담겼다. 고향과 화해하던 일화, 고민 많은 신학도에서 작가로의 각성, 습작 시절의 기억, 그의 여러 유명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 작가로서 초대받아 간 파리의 인상, 그의 사고를 넓혀준 작가와 작품 들. 결핍감과 고독함과 창작의 벽에 갇힌 속에서도 쓰기를 멈출 수 없는,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산다는 의미를 그의 정교한 통찰과 문장으로 곱씹을 수 있는 책이다.


내 소설들이 일종의 허족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한다. 가짜지만 그만큼 절실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만큼 절실하지만 어쨌든 가짜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반문을 받는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절필할 계획이 없다. 소설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소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내가 만든 집이지만, 그래서 그렇게 허술하지만, 그러나 나를 살게 하는 집이기도 하다. 나는 내 소설 안에서, 소설과 함께 산다.
─『소설을 살다』 52-53쪽



각 권 소개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만인 작가 시대의 글쓰기
자신의 글, 자신의 삶을 갖기까지


독자들은 어떤 작품에 대해 자전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모든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전적이다. 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작가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5쪽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창작 강의를 겸하고 있는 소설가 이승우가 작가의 열망을 품은 학생들을 오랫동안 가까이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글을 써오면서 성찰한 소설 창작의 많은 것이 담긴 사적인 노트다. 현직 교수인 만큼 소설 쓰기의 기술과 태도를 고루 짚어보는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가 평소 어떤 논리로, 어느 정도의 깊이로 소설에 임하는지 알려준다. “모든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전적”이라는 그는, 이야기란 삶에서 나오며 그래서 누구나 잠재적인 작가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소설이란 기술의 산물이라기보다 정신의 산물이고, 삶으로 돌아가 참여하는 일이다. 화자, 인칭, 플롯, 구체와 생략, 상징과 은유, 문장 할 것 없이 소설 창작의 기본기를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면서도 그는, 그 바탕에 삶과 글에 대한 겸손하고 고백적인 자세가 우선함을 말한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궁극적으로 자기 이야기가 갖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일관되게 소설을 빌려 말하지만, 누구나 자기 삶을 글로 옮기게끔 독려하는 책이다. 그는 “우리의 삶이 고상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 또한 고상하지 않다”(109쪽)라고 말하며 소설 쓰기, 넓게는 글쓰기 자체의 진입로를 낮춘다. 그에게 모든 이야기는 매일의 삶에서, 그러니까 시시하고 하찮은 데서 시작하고, 따라서 창작에 필요한 건 글을 업으로 한다는 자격이 아니라 어떤 태도임을 강조한다. 독서를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고, 꾸준히 접하고 배우며 글을 쓰고, 그러다 마지막엔 이론이나 원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것을 쓰겠다는 간절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쓰는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 책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글쓰기와 자기표현이 중요해진 지금 따뜻한 조언이 될 것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사람이 소설가인 것이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40쪽



『소설을 살다』

이승우식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소설을 쓰게 하는 모든 것


수첩은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 외출할 때 호주머니에 넣거나 가방에 넣는다. 나는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언제 그럴듯한 생각이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나 이미지가 자주 출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은 대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다. 지나가는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지나가기 때문에 얼른 붙잡아야 한다. 붙잡지 않으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으니 다시 찾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메모를 하는 것은 붙잡는 것이다.
─『소설을 살다』 70쪽


『소설을 살다』는 소설가 이승우가 산문으로 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 할 만하다. 그가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 이야기들과 지금도 훗날에도 작가로서의 그를 지탱해줄 것들을 털어놓는다. “심각한 글도 있고 가벼운 글도 있다. 자의식이 지나쳐서 조금 불편한 글도 있고, 소설이 아닌데도 어쩐지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글도 있다”(「들어가며」)라며 양해로 입을 떼듯, 그의 다양한 자아를 보여줄 은밀하고 은근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소설가의 삶은 다를 거라고, 다른 사람만이 소설가가 된다고 지레 선 긋는 사람들에게 안심이 되도록 『소설을 살다』는 그가 읽었던 책이며 좋아하는 작가, 만났던 사람, 가본 곳, 소설을 쓰게 된 배경, 습작 시절, 고향 등에 관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누군가를 소설가로 만드는 것은 별난 집필 습관이나 취미가 아니라, 조금 진지한 눈과 기억을 붙잡을 메모장 그리고 얼마간의 부지런함임을 그는 이야기한다.
『소설을 살다』는 약 20년에 걸쳐 쓴 원고들을 엮었다. 분량도 무게도 다 다르지만 큰 뭉치로서 이승우라는 한 작가의 섬세한 결을 보여준다. 그의 가장 변화 많고 역동적이던 때의 모습들로 한 소설가가 싹트고 완성돼가는 과정을 엿보고, 글쓰기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작가 또는 어떤 작품과 결정적인 만남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만남이 한 꿈 많은 젊은이로 하여금 문학에 운명을 걸게 만든다. 그 빛나는 작품을 쓴 작가의 그림자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려는 욕망,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한 사람의 작가를 탄생시킨다.
─『소설을 살다』 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