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단하지 않은, 그러나 소신 있는 엄마의 기록
“나는 이런 엄마였고 여자였고 사람이었어”

 

칼럼니스트로 매일 독자를 찾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상담 메일을 받는 임경선. 이 시대 기혼 여성의 통례를 살짝 벗어난 이미지의 그녀라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남다르지 않을까? 임경선의 글맛, 인간적인 매력은 무엇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솔직한 데 있다. 싱글 여성들이라면 ‘나도 결혼하고 아이 낳을 수 있겠구나’ 하고 용기를 낼 이야기, 20~40대의 대한민국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그러나 누구도 솔직하게 말하기를 주저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엄마와 연애할 때』는 아이와의 삶에서 배우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자, 결혼과 육아를 통해 세상을, 삶을, 사랑을, 인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발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딸이 아이를 낳은 뒤에 볼 책이라고 위트 있게 말한다. ‘너는 이런 아이였다’라기보다 ‘나는 이런 엄마였고 여자였고 사람이었어’라고 말해주는 책이라고. 그러니까 육아 이야기의 방점이 저자인 엄마에 찍힌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다섯 살까지의 경험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경험이지만, 육아의 주체인 엄마의 그때 삶도 무엇에 비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딸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고, 때론 실수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 삼아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솔직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감동을 준다.
  
나는 아이에게 ‘너는 이런 아이였단다’라며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기나 유년기의 일들을 알려주기보다는 ‘나는 이런 엄마였고 여자였고 사람이었어’라며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모로 불완전했지만 그것이 너를 낳은 사람이고, 너를 낳고 키우는 일은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즐겁게 하려고 했다고. 덕분에 꽤 행복했다고.
—「에필로그」에서


 

이기적인 그녀의 엄마—딸—나의 이야기
“누가 뭐래도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다”

 

저자 임경선은 만난 지 삼 주 만에 청혼을 받았다. 이른바 ‘육식남’을 만나 서른을 눈앞에 두고 결혼했다. 그해 갑상선암이 세 번째 재발해 수술을 받았고, 어느새 노산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처음 시도한 인공수정으로 쌍둥이를 가졌지만 두 아이 모두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서른일곱의 나이에 윤서를 낳았다.
어렵게 낳은 딸아이지만, 힘든 상황에 직면하면 모성애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아이를 계속 안아주느라 허리는 성할 날이 없었고, 식사 한번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쾌적한 거리 감각” 따위는 무시하는 아이의 일방적인 애정 공세에 도망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들은 때때로 애를 내동댕이치고 싶지만 상상으로만 그럴 뿐이고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데 나는 실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눈가에 여전히 눈물이 고인 채로 잠든 구슬픈 모습에 나는 감정이 북받쳐 ‘딸아 미안해’ 이러면서 참회의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는데, 울음은커녕 열 받은 가슴은 아직 진정될 기미조차 안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우리는 거의 동시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윤서는 조금 부은 눈으로 첫날밤을 같이 보낸 애인을 쳐다보듯,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96쪽, 「괴물」에서

 

하지만 그녀도 엄마였다. 아이와의 스킨십에 대한 집착으로 삼십 개월이 다 되도록 기저귀를 떼지 못했고, 윤서를 꽉 안아도 충분히 가깝지 않다는 느낌에 “윤서야, 다시 한 번 너를 낳고 싶다고 생각해” 같은 말을 내뱉기도 했다.
『엄마와 연애할 때』는 단순히 딸아이와의 추억을 담은 책이 아니다. 윤서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자신의 엄마를 돌아보게 된 이야기이자, 딸과 자신의 관계를 통해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엄마’로서의 나와 ‘딸’로서의 내가 교차하는 일종의 타임머신과도 같은 책이다. 엄마와 같은 공간에서 지낸 시간은 십칠 년 남짓, 엄마에게 사랑을 갈구하기도 했고 그만큼 서운하기도 했다. 일례로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바로 다음 날, 엄마가 첫아이를 낳은 네 살 터울의 언니를 만나러 가버리자 상실감에 큰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훗날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사과를 했고, 더불어 그 상처는 아문다.
저자는 이런 후일담을 털어놓는다. “문득 우리 엄마는 나를 외롭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키우는 데 성공하고 떠나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분명 아이와의 소소한 삶을 담아내려고 쓰기 시작한 책인데 다 쓰고 보니 돌아가신 엄마와 화해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써내려간 것 같다. 살아 계실 때는 그 어떤 속 얘기도 못 털어놓다가 이제야…….”
남편과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 쏟아 부었을 때 한 발짝도 뒷걸음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준 유일한 남자, 결혼 후 암 수술과 엄마 장례식 등 힘든 일이 있을 때 돌봐준 남자. 그녀는 말한다. 남편은 “바다 같은 남자”라고. 자신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실망을 느끼는 것은 결코 남편이 아니라 결혼 생활”이라고.

 

내가 남편을 가장 ‘내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로 의식했던 것은 결혼식장이 아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남남이었지만 이제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음을 깊이 느꼈다. 멍하니 장례식장 입구에서 돈 봉투를 받으며 사위 처신을 하던 그와, 시뻘건 육개장 그릇을 나르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우리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상대의 죽음을 지켜보고 책임지는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은 상대의 삶과 죽음을 좋든 싫든 ‘관리’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208쪽, 「결혼 생활의 슬픔과 기쁨」에서


 

어깨 힘 빼고 딸과 같은 속도로 걸어간다
“너의 미래에 두근거려”

 

저자는 담담하게 말한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엄마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맞이했고 지금은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그러나 충족된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그녀는 아이 낳는 거 아플까 봐 제왕절개를 했고, 모유 수유는 육 개월밖에 하지 않았다. 또 잠꼬대하며 자신에게 다리를 척 올리는 아이를 사정없이 밀쳐내기도 했고, 글을 쓰기 위해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 십오 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럼에도 그녀 역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를 문화센터에 데리고 가지 않아 미안했고, 아이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며 방치했다는 생각에 때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서른일곱 살에 ‘엄마’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줄곧 내 안에서는 이기심과 죄의식이 맞부딪치며 갈등을 일으켰다. 나는 그 둘 다에서 약간 멀리 서 있기로 했다. 그것은 어차피 나의 느낌이었다. 이때만큼은 초점을 아이의 마음에 맞춰보자고 생각을 바꿨다. 무게 중심을 내가 아닌 아이에게 두니 그때그때의 판단이 훨씬 더 명료해졌다. 물론 제3자의 간섭 어린 소음으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99쪽, 「엄마의 죄의식」에서

 

이러한 그녀의 솔직한 고백은 미혼 여성들에게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용기를 주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이런 엄마라도 괜찮다’라고 안도하게 한다. 무엇보다 엄마들이 어렴풋이 느끼지만 차마 말 못한 것을 끄집어내서, 엄마들에게 과도하게 부과되는 죄의식을 거부한다.
더불어 그녀가 아이를 키울 때 원칙은 이렇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세상의 어둠과 밝음을 모두 보여주고, 무리해서 스스로를 눌러가면서까지 상대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도록 하며, 나르시시스트로 살더라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 이 원칙들을 보면 그녀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기보다 자기답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유능한 엄마보다 충족된 엄마, 남들만큼 하는 엄마보다 남들과는 다를 수 있는 엄마인 것이 좋았다. 엄마 노릇은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보겠다만, 이기적인 나는 엄마이기 전에 여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싶었다. (…)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생각만큼 그리 대단하지도, 대단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깨 힘을 빼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호흡하며 걸어나갈 것이다.
—「책을 내면서」에서

 

 

있는 그대로, 나답게
“그녀답다. 반교훈적, 반가족주의적 에세이라니”

 

이 책은 임경선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정리한, 가장 임경선다운 이야기다. 그녀의 입담은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출산보다 더한 모유 수유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재택근무 프리랜서가 일도 하면서 아이도 키워야 하는 애환에 대해 절절하게 토로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여러 모습의 사랑을 관조”하고, 감정의 결을 예민하게 읽어내는 칼럼니스트이자 한 여자다. 지금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꿈꾸는 엄마’다.
그녀의 출산 백일 후부터 삼 년 반이라는 시간을 지켜본 뮤지션 유희열은 이렇게 말한다.

 

그녀답다. 반교훈적, 반가족주의적 에세이라니. 언제나 위험한 정답만을 말하는 상담자가 아니어서 좋고 자신을 잔인하게 직시할 줄 아는 소녀 같은 어른이어서 좋고 작은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관찰하는 따뜻한 여자여서 좋다. 어찌 되었건 그녀는 자기 포장하는 얘기를 원체 싫어하는 인간이니까.
나중에 윤서가 컸을 때를 감안해 내가 대신 좋은 엄마, 아빠 가면을 씌워본다. 언젠가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엄마는 바로 자기 엄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쁜 엄마라 손가락질한다 해도.”
—추천사에서

 

엄마 노릇하면서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책, 죄책감을 씻어주고 바람직한 모녀 관계, 아이와의 관계를 몸소 보여주는 책. 『엄마와 연애할 때』는 ‘엄마’이기 전에 ‘여자’, ‘여자’이기 전에 한 행복한 인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