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계층의 불평등을 넘어 

‘꿈의 오케스트라’, 뜨거운 10년의 기록 


영화 <스쿨오브락> <스윙걸즈> <코러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아이들이 주인공인 음악영화라는 점이다. 영화별로 캐릭터도, 주요 음악 장르도 제각각이지만 세 편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질풍노도 시기의 아이들이 음악활동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이다. 과연 음악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놀라운 일이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면 어떨까?  

『음악은 흐른다-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는 아동, 청소년의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온 음악교육 프로그램 ‘꿈의 오케스트라’(이하 ‘꿈오’) 10년의 역사를 담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ㆍ문화체육관광부ㆍ지역운영 단체 등 여러 기관의 협업을 통한 이 사업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클래식 음악의 권위를 깨고,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아이들에게 평등한 음악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2020년 현재 ‘꿈오’ 사업에는 전국 47개 거점, 2,900명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이들은 활발한 공연 활동으로 지역사회에 풍성한 음악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음악은 흐른다』는 그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온 음악감독ㆍ단원ㆍ학부모ㆍ강사 등 총 32인의 인터뷰를 수록해 ‘한국형 엘 시스테마’의 온전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첫 책이다. 헌신적인 음악감독과 거점기관의 코디네이터, 이들 덕분에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 음악가들, 또 그들에게 음악을 배우는 후세대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 곡의 합창처럼 어우러진 이 책은 음악이 차별 없이 흐를 때의 기적을 생생하게 전한다.


*엘 시스테마

1975년 베네수엘라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창립한 최초의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시초로 한, 전국 규모의 음악 교육 시스템. 전국 500개가량의 오케스트라에서 30만 명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배우고 있고,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사회 경제적 빈곤 계층이다. 한국에서도 이 사업을 벤치마크 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도로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진행해왔다.



아이들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우리는 미래를 연주합니다”


‘꿈오’는 엘 시스테마의 운영방식처럼 단원의 60퍼센트 이상을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등 이른바 소외계층의 아이들로 우선 선발한다. 전문 음악교육을 받은 이들에게도 오케스트라 활동은 쉽지 않을 텐데 ‘꿈오’의 아이들은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음악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꿈오’ 음악감독과 강사들이 다져온 철저히 합주 위주의 교육방식은 그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케스트라 활동 목적을 음악을 통한 도전의식과 협동심 함양 등 건강한 사회 구성원 양성에 두는 만큼, 강사들은 도제식 솔로이스트 훈련보다 합주로써 단원들에게 배움의 동기를 부여하고자 한다.


소위 도제식 교육 방식이 왜 문제인지, 왜 합주를 중심에 놓고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죠. 그 답은 아주 간단했어요. 도제식보다 합주로 하는 것이 하모니, 어울림, 앙상블이 필요한 오케스트라 음악에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기까지 한 거죠. 무엇보다 악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연주에 어려움이 닥쳐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함께 배우기 때문에, 모여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을 은연중 좇아가게 되는 거죠. 도제식으로는 악기를 배우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성취감도 느끼기 어려워서 중간에 쉽게 포기하게 되거든요.

-138쪽


이에 더해 요가나 명상, 게임 등을 접목한 풍성한 교수법의 개발은 아이들이 음악을 놀이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다. 무엇보다 돌봄 사각지대 놓인, ‘꿈오’가 유일한 ‘비빌 언덕’인 아이들에게 운영자들이 쏟는 깊은 관심과 애정은 이들이 자존감을 기르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바탕이 된다.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가능성을 찾은 아이들은 온 마음을 다해 음악에 몰두하고, ‘꿈오’는 단계별 도전 계기를 만들어줌으로써 이들의 활동무대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가능성이란 단순히 전문적인 연주자가 되는 것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 아무것도 안 될 거라는 자책에서 벗어나 ‘꿈오’라는 공동체, 사회적 보호망 안에서 제 역할을 찾아가는 ‘성장’이다. 저자의 말처럼 ‘꿈오’는 사람이 곧 목표이고 성과이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과 ‘불균형한 출발선’을 넘어서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꿈오의 아이들이 연주하는 것은 자신들, 나아가 공동체의 ‘미래’다.


아이들이 ‘꿈오’에 와서 보여주는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연주력이 느는 것만큼 집중력도 높아지고, 음악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이 아이들의 큰 변화였다. 아이들은 단순히 악기 하나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통해 하모니를 배웠고, 하모니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배려에서 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57~58쪽



‘꿈의 오케스트라’ 10년이면 동네도 변한다

더 나은 ‘꿈오’를 향하여


한국 사회 내 여타 영역이 그렇듯 음악활동 또한 교육도 연주회도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이는 학교, 공연장, 강사 등 음악교육의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텐데, ‘꿈오’는 이러한 서울 중심주의를 벗어나 각 지역에서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사례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꿈의 오케스트라 연천’의 경우, DMZ국제음악제나 군악대와 합동 공연을 열고, ‘꿈의 오케스트라 영주’는 지역 축제 공연뿐 아니라 국악연주단과의 협력 공연에도 적극적이다. 지역에 클래식 음악의 씨앗을 뿌리는 만큼 마을도 이들을 보듬는 데 적극적인데, 지역 기업들의 후원(연천)이나 택시 업체와의 협약을 통한 차량 운행(고창)이 한 예다. 또한 ‘꿈오’ 출신으로서 다시 ‘꿈오’ 강사로 돌아와 지역의 후배들을 양성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음악가로서 책임을 환기할 뿐 아니라, 단원들이 그곳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데도 큰 힘이 된다.


“지금 ‘꿈오’ 영주에서 저와 같이 활동하는 강사 분들 중에 세 분이, 제가 어렸을 때 활동한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선생님들이세요. 그때 저를 엄청 예뻐했다고들 그러세요. 감독님도 그렇고 선생님 세 분도 그렇고, 사제지간에서 이제는 동료로 지내는 거잖아요. 이런 관계 변화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에게도 이 얘기를 꼭 해줘요. 언젠가 너희들 중에서도 누군가가 나의 동료로 음악을 같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212~213쪽


지난 10년간 ‘꿈오’를 운영해온 다양한 주체들은 인터뷰를 통해 ‘꿈오’의 더 나은 운영을 위한 제안도 빠뜨리지 않는다. 강사의 고용안정을 통한 지속성 확보, 전문 연주자 육성을 위한 후원 프로그램 매칭, 자립화 단계에서 지자체 지원 제도화, 프로그램 운영의 자율성 확보 등 각각의 주제는 음악교육가, 예술행정 전문가들에게 숙제를 남긴다. 

『음악은 흐른다』는 음악교육을 통한 성장과 꿈꾸기, 사회통합이라는 마법의 현장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이는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음악이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스밀 때만이 가능한 변화였다.



추천사


음악은 흐른다. 음악은 흘러 감정을 타고 공감이 되어 퍼져 나간다. 이처럼 음악의 매력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음악이 주는 공감은 때때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주기도 하니까. 『음악은 흐른다 -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에는 나와 같이 음악을 사랑하고, 서로에게 든든하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꿈의 오케스트라’ 친구들을 향한 많은 이들의 애정이 느껴졌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아이들이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악기를 만나 음악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경험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꿈의 오케스트라’의 하모니가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흘렀으면 좋겠다. 그들과 함께 연주하는 날을 꿈꿔본다. 

_헨리(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