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추천도서

 

 

획기적인 다큐멘터리 <지식채널e>의 모든 것
김진혁 피디가 밝히는 프로그램의 탄생과 진화


 

EBS(한국교육방송)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은 <지식채널e>의 제작기가 출간됐다.
<지식채널e>는 2005년 9월 방영된 <1초> 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640여 편이 전파를 탔으며,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여운을 남기는 지식으로 시청자의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절실한 앎으로 느끼게 하는 <지식채널e>만의 색깔은, 홈페이지 ‘다시 보기’ 조회수 기록 갱신과 비슷한 형식의 UCC를 양산하며 ‘지식채널e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진혁 피디는 이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 연출한 피디로 2005년부터 2008년 8월까지 3년간 270여 편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주역으로, ‘<무비위크> 선정 창조적인 엔터테이너 50인’에 꼽히기도 했다.
『감성 지식의 탄생』은 ‘지식의 연출자’ 김진혁 피디가 끊임없는 실험을 거쳐 <지식채널e>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상세한 제작기 외에 화제작 뒷이야기, 음악감독과 작가들의 인터뷰, 미처 만들지 못한 편들의 시놉시스와 콘티, 「프로그램 제작 tip」도 수록해 프로그램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이 책은 <지식채널e>의 시청자를 위한 교양서일 뿐 아니라 피디 지망생, 1인 미디어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다.

 

 

<지식채널e>만의 창의성은 어디서 왔나
깨달음을 주는 지식을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하다

 

<지식채널e> 관련 강연회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애초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EBS 다큐멘터리를 요약한 ‘3분 미만의 짧은 프로그램’ 혹은 채널 인지도 제고를 위한 SB(station break, 토막광고) 정도로 기획됐다. 당시 김진혁 피디는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내용 면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다루고, 형식 면에서는 대중적 영상물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새로운 지식’이란 단순한 정보성 지식이 아니다. 가르치기보다 깨달음을 주는 지식, 마음을 움직이는 지식으로 제작진은 ‘깨달음’을 지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객관적 사실을 효과적인 구성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 형식 면에서도 파격을 시도했는데 현란한 화면 효과, 움직이는 자막, 강렬한 음악, 누아르 식 엔딩 등을 구사해 영상을 살아 숨 쉬게 했다. 김진혁 피디는 이런 시도가 무엇보다 ‘재미’를 의도한 결과라고 고백한다. ‘교육’ 방송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고 교육도 의미도 ‘재미’에서 출발하자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교육적이면 재미있기 어려운가? (…) 출발을 교육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기존에 즐겨 보던 각종 대중적 영상물들이 떠올랐다. 재미를 위주로 한 작품들—예를 들어 광고, 영화, 뮤직 비디오 같은 것들—말이다. 또 만약 ‘의미’만 담아낼 수 있다면, 재미를 줄 수 있는 영상 기법이나 구성 기법은 얼마든지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현란한 화면 효과, 무조건 움직이는 자막, 쉴 틈 없이 강렬하게 쏟아져 나오는 배경음악과 같은 형식, 그리고 궁금하게 만드는 티저 식 도입부, 반드시 반전이 있는 미드 식 후반부,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누아르 식 엔딩 등등……. 내가 기존에 너무나 해보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프로그램 제작에 쏟아부었다.
―8~9쪽, 「프롤로그」에서

 

이런 두 가지 방향 아래 자막, 음악, 편집 등 세부 요소를 조율해갔다.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임팩트 있는 핵심 문장(자막)을 궁리했고, 배경음악을 통해서는 영상을 넘어선 제3의 메시지를 암시하기도 했다.(지금까지도 <지식채널e>의 배경음악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가운데 이례적으로 음악게시판 ‘Song to self’를 따로 두고 있다.) 편집은 프로그램 제작에서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었다. <박지성> 편은 당시 박지성 선수의 이미지 자료가 부족했으나 자막에 화면처럼 움직임을 줘 역동적으로 표현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마지막 부분의 자막 처리는 편집자의 이런 의도를 가장 명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선 박지성 선수를 ‘티셔츠 판매원’ 운운하며 폄하하는 내용의 자막들은 화면 뒤로 사라지는 움직임을 준 반면, 박지성 선수가 각오를 밝힌 문장은 화면 앞으로 강하게 다가오며 커지게 했다. 비난에는 뒤로 물러나며 사라지는, 즉 ‘소멸’의 감정을 담아내고, 반대로 의지에는 뒤로 사라질 듯하다가 다시 앞으로 다가오는 ‘극복’의 감정을 담아낸 것이다. 심지어는 마지막 핵심 자막을 올려달라고 보냈던 가장 멋진 사진—박지성 선수의 뒷모습—에는 아무런 자막도 올리지 않는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내용의 핵심인 마지막 말을 보여주기 전에 기대감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55~56쪽, 「상상 그 이상의 편집」에서

 

다큐멘터리를 넘어 장르 자체를 확장하기도 했다. 드라마 장르가 피드백이 빠르다는 점, 사랑과 배신 등 다소 말랑한 감성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라인이 살아 있는 드라마를 선보인 것. 제작 여건의 한계로 자료 이미지에 기댈 수밖에 없었지만, 젊은 여성 시청자들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 또한 미국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형식을 빌려온 <거대 우주선 시대> 시리즈는 편마다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거대 우주선> 편은 <지식채널e>가 전달자의 역할에 그쳤던 근본적인 한계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었다. 논픽션을 통해 주장하는 우회로를 통하지 않고, 픽션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말하는 정공법으로 말이다. 그동안 장르적 한계로 하지 못했으나 제작진 나름대로 확신한 다양한 메시지들을 표현해낼 수 있었으니 (…). 앞으로는 나만이 아니라 작가들 역시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e야기 카테고리를 통해 맘껏 담아낼 것이었다.
―200쪽, 「<거대 우주선 시대>의 탄생」에서

 

이처럼 <지식채널e> 진화의 원동력은 내용적․형식적 실험이다. 내용 면에서는 ‘지식’이, 형식 면에서는 ‘다큐멘터리’라는 틀이 있지만 제작진은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감성을 수혈받고자 했다.


 

지식으로 소외에서 벗어난 한 피디의 성장담

우리에게 지식은 진정 무엇인가

 

김진혁 피디는 ‘지식’의 정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때로 지식은 불편한 것이고, 특정한 프레임이나 신화에 갇혀 있지 않은지 회의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에필로그」에 이르러 이렇게 고백한다. “많은 지식을 접하면서 난 내가 몰랐던 것, 안다고 생각했으나 실상 알지 못했던 것,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나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들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 <지식채널e> 시청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이 책은 묻는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 다큐멘터리를 탄생시킨 연출자, 김진혁 피디의 성장담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