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살아남아 내게 온 것들에 귀 기울이다”
한 미술평론가를 사로잡은 우리 골동품

 

  『앤티크 수집 미학』의 저자 박영택은 소문난 골동품 수집가다. 토기, 백자, 옹기, 서탁부터 떡살, 꼭두, 말방울, 민화까지. 그의 방과 아파트 베란다, 학교 연구실에는 온갖 골동품으로 가득하다. 인사동, 답십리, 장한평은 물론 중국, 일본 등지의 고미술상가를 직접 돌아다니며 저자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직접 모은 사물들이다.
7년 전 출간된 그의 책 『수집 미학』에선 일상에서 흔히 쓰는 사물을 소개했다면 이번엔 고미술품 수집기다. 그간 모은 골동품 수백여 점 가운데 가장 아끼는 60점을 추렸다. 미술평론가로서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해온 그의 특별한 안목은 『앤티크 수집 미학』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정적인 사물, 예를 들어 일상에서 수습한 온갖 기호학적 파편들에서 생명의 기미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수집의 출발이다. 나는 오랜 세월 살아남아 내게 온 것들의 피부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신중하게 귀 기울인다. 그것은 매우 긴장된 순간이다.
―「책을 내면서」에서

 

 

“골동품은 거대한 하나의 텍스트”
고미술품의 숨은 매력을 알아보다

 

저자 박영택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신라시대의 토기 잔과 조선 백자의 간결하지만 매혹적인 선에 감탄하고 무심한 듯 섬세한 벅수의 표정에 감동한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사물도 저자에겐 특별하다. 상처투성이인 전함지를 보며 온몸으로 밀고 나간 노동의 깊이를 헤아리고, 곱돌 사각 연초합의 아름답고도 장중한 검정빛을 알아본다.
현대미술평론가인 저자에게 골동품은 ‘조형을 보는 안목 훈련’의 대상이자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다. 그는 사물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몽블랑 문양의 옹기 뚜껑을 아크릴 액자에 넣어 걸어 두며 늘 바라보고, 단아한 서탁을 응시하며 어느 선비의 눈매를 연상한다. 어두워진 연구실에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새 모양의 등잔 거치대에 초를 켜두고 작은 새가 드리우는 그림자에서 기묘한 환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단순한 수집을 넘어 그것들을 “삶의 언저리에 힘껏 두르”며 “감각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몸통에는 가는 선들이 몸체를 따라 선회하듯 지나간다. 바람의 자취 같기도, 별자리의 이동 같기도 하다. 아니면 강물이나 바닷물의 흐름 같기도 하다. 도공들이 물레를 돌리면서 토기의 몸체를 다듬던 손길이 남긴 흔적이긴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선은 지극히 서정적인 자연의 한 장면을 꿈처럼 안긴다. 약간의 요철 효과가 매끄러운 토기의 피부를 긁고 지나간다. 언어로 지시할 수 없는 색채들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토기 표면 자체가 거대한 우주 같고 마당 같아서 그 안에 너무 많은 이미지와 색채가 선회한다. 이 벅찬 둥긂 안에 깃든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28~29쪽 「벅찬 둥긂_달항아리 토기」에서


나는 토기 잔에서 자주 이와 같은 인간의 지문을 발견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나 경이로워서 놀라곤 한다. 약 1200여 년 전의 흔적을 지금의 내가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 토기 잔을 만든 이의 극진한 공력과 놀라운 조형미를 가능하게 한 손끝의 힘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36쪽 「영혼의 전달자_새 머리 손잡이 잔」에서

 

 

“시간이 만든 오묘한 흔적”
생의 이력을 간직한 시간 위로 호명된 사물들

 

골동품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안에 새겨진 아득한 시간의 흔적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골동품을 접한다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저자는 『앤티크 수집 미학』을 “내가 수집하고 편애한 골동품에 대한 사적인 감상의 기록”이라고 했지만 이 책은 단순한 감상 그 이상이다. 각종 옹기들은 장류, 젓갈 등을 담는 한국의 저장 문화를, 꼭두와 동자승은 사후 세계를 바라보는 조상의 세계관을 알려준다. 또 매미 형상의 휴대용 먹물 통, 새 머리 토기 잔, 단아한 서탁 등은 실용성과 더불어 예술성까지 겸비한 우리 조상의 멋을 보여준다. 사물에 깃든 선조의 지혜, 맑고 섬세한 성정을 이 책의 글과 사진 속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 민속품이 죄다 볼 맛이 있다. 다 그것대로 이유가 있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예쁜 구석이 어딘가에는 하나라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하물며 사물이야 오죽할까? 더군다나 최하 백여 년은 더 된 것들인데 그 세월을 그냥 먹었겠나 싶다. 그 시간이 만든 오묘한 흔적이 어느 지점엔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경이롭게 문질러놓았다.
―174쪽 「서산대」에서